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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Sep 08. 2023

회오리바람을 보며

며칠 전 사납게 더운 오후였다. 거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데 가느다란 회오리바람이 집 앞을 지났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후덥지근한 나른한 고요함 속에 이 작은 바람의 이동은 선명하게 보였다. 바람이 지나는 길에 있는 흙먼지와 나뭇가지는 느닷없이 바람에 빨려 올라가서 나선형 기둥을 만들었다.


순간 내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죽음이었다. 세상이 고요할 때 누군가의 세상을 통째로 삼키면서 돌아다니는 죽음. 누군가의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을 때 그저 고요하기만 한 세상. 바람에 휩싸인 자들의 세상만 거꾸로 뒤집힐 뿐이다. 아들의 장례식 날도 눈부시게 맑았다. 어떻게 내 아들이 떠난 세상이 이렇게 고요하고 맑을 수 있는지 그것조차 분했는데. 아들의 죽음을 맞기 전 나는 대학 친구를, 참 좋은 사람인 가까운 지인을 잃었다. 그 해 아들 학교에서는 세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끊으려 했고 아들은 성공한 두 아이 중 하나였다. 마치 죽음이 다니는 길에 그냥 서있다가 꼼짝 못 하고 당한 것 같았다.


집 앞을 지난 회오리바람은 잠시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골목은 언제나 그렇듯 무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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