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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Sep 15. 2023

소중한 일상의 한시성

삶의 골짜기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움켜쥔 것은 일상이었다. 아침을 눈을 뜨면 옷을 갈아입고 긴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는다.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는다. 1층 부엌으로 내려가 달걀과 토스트에 커피를 곁들인 아침을 기계적으로 준비한다. 아이를 깨워서 아침을 먹이고 학교에 데려다준다. 남편까지 출근하고 나면 나 혼자 남은 집에서 아침 먹은 그릇을 치우고 쿠션을 털어 바로 놓고 이메일을 체크한다. 납품한 파일을 잘 받았다는 확인이나 새로운 일을 의뢰하는 이메일이 있으면 간략하게 답장을 보낸다. 아침 9시에는 2층으로 다시 올라가 침대를 공들여 정리하고 밤사이 늘어난 빨랫감을 들고 내려온다. 빨랫감은 늘 한가득이다.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시작 버튼을 누르고 건조기에서 마른빨래를 꺼내서 2층으로 가지고 올라간다. 빨래는 대개 저녁에 개지만 제사를 지낼 재단을 미리 준비해 두는 사람처럼 빨래바구니를 다소곳이 내려놓는다. 원래 빨래 개는 일은 가장 나중으로 미루는 일 중 하나였다. 식사 준비처럼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시한이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하고, 자잘한 빨래를 반복적으로 개는 행동이 지겹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이후 빨래 개는 일이 가족의 존재를 얼마나 일일이, 세심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인지 뼈저리게 배워버렸다. 이제는 음악을 들으며 빨래 개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그리고 오전에는 일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딸이 귀가하면 간식을 챙겨주고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 먹은 것을 치우면 하루가 얼추 마감된다.


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고지식하게 매달려서 지난 5년을 버텼고 이 일상은 나에게 계속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 될 거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급한 시점에, 시급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건 어쩌면 이런 일상을 깨뜨리기 두려워했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우울증에 대해 문외한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내내 나 자신이 우울과 자살충동과 싸웠으며,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했고 그 아이가 힘든 시간을 보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느낌이 사실일까 봐 무서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오래전 산후우울증에 대한 특집 기사를 맡은 적이 있다. 산후우울증에 대해 여러 연구를 발표한 모 정신병원의 교수님을 찾아갔다. 부드러운 분이었는데 우울증 약이 태아에게 해롭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님의 말투가 단호해졌다. "우울증은 치료하지 않으면 죽는 Terminal Disease입니다. 약을 써서 치료하지 않았을 때 위험이 크다면 C등급 약이라도 처방해야 합니다." 대학원 때 이상심리학 시간에 다룬 주요우울증 지식보다 더 마음에 깊이 박혔다. 그런데 왜 나는 아이를 방치했을까? 더구나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 치밀하게 준비했는데 나는 그때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거다. 내 인생에는 큰 행운도 없지만 큰 불행도 없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아니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던 거다. 감히 이런 불행을 내가 겪는다는 건 상상조차 못 했던 거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아들에게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몸이 눈에 띄게 여위였고, 가족이 같이 하던 하이킹이나 무비나이트에서 빠지려고 했다. 무엇보다 아들을 깨우러 방문을 열고 얼굴을 어루만져도 웃어주지 않고 신경질을 부렸다. 머릿속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려본다. 그 생기 없는 표정에 마음이 조여들었을 때 비상에 돌입하는 상상을 한다. 당장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병원에 입원시키는 상상을 한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치료를 마치고 웃는 얼굴로 퇴원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


지금 나의 일상은 힘겹게 회복된 듯 보이며, 다시 나에게 지금 주어진 모든 걸 소중히 여기면서 하루하루 산다. 성실한 남편, 에너지 넘치는 딸, 두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멀쩡한 집에서 하루 세끼를 차리고,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는 이 일상이 소중하다. 단, 나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버려야 때가 오면 주저 없이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다시 그런 일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지만 나의 일상은 신이 허락한 시간 동안만 누릴 수 있는 선물이며 언제라도 버려야 하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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