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휘리릭 다녀왔다. 나름 먼 길을 나서게 된 시작은 올해가 결혼 25주년인데 가까운 곳에서 하룻밤 자고 올까 하는 대화였다. 검색해 보니까 베이지역에서 낭만적 여행을 하기 좋은 곳으로 나파밸리가 나왔다. 나파는 포도밭이 드넓게 펼쳐진 와인 생산지이니까 분위기 내는 곳으로 인기가 높은 듯했다.
그런데 포도가 주렁주렁 달리는 계절이면 모를까, 와인에 대한 문외한들이 와이너리에서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내겠어? 그러면 차라리 구경거리라도 많은 라스베이거스를 가자. 앗, 항공료가 너무 비싸네. 이 돈이면 차라리 뉴욕을 가지. 그래, 뉴욕. 십 년 전 아들이 이곳에서 열두 살을 맞았지.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그 주에는 샌프란에서 라스베이거스(1.5시간 비행) 가는 항공료보다 뉴욕(6시간 비행)으로 가는 항공료가 쌌다. 그리하여 집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와이너리에서 하룻밤 자고 온다는 아이디어는 라스베이거스를 거쳐서 뉴욕까지 부풀어버렸다. 거리가 늘어나면서 여행 기간이 덩달아 길어지고 여행의 콘셉트도 결혼 기념 낭만 여행에서 늙은 배낭족 여행으로 바뀌었고 다시 딸까지 합류한 알뜰 가족여행으로 바뀌었다.
어떤 여행에서 만족을 얻는가는 철저히 주관적이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마다 왜 이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가 질문에서 출발하곤 한다. 우리가 원하는 여행은 부부가 함께한 그 애틋한 기억을 건져 올리는 여행, 가을이면 우리 품을 떠날 딸에게 도시의 삶을 보여주는 여행이었다. 또 지난번에 못내 아쉬웠던 MOMA와 센트럴파크 걷기도 해보고 싶었다.
일기예보가 계속 바뀌어서 계획을 촘촘히 세우기 어려웠다. 또 그날 아침에 눈떠서 내키지 않는데 발걸음을 옮기는 게 싫어서 여행 계획을 매우 느슨하게 세우는 편이기도 하다. 대신 가고 싶은 곳이 여행 기간 중에 문을 언제 여는지, 혹은 닫는지 정도는 알아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첼시 지역에 모여 있는 갤러리를 둘러보고 싶은데 갤러리는 대개 일요일과 월요일에 휴관이어서 우리는 토요일에 들러야 했다. 또 휘트니뮤지엄은 매월 세 번째 일요일이 무료 개관인데 미리 예약을 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대중교통의 경우 주말과 주중에 운행 시간이나 노선이 변하기도 한다. 뮤지컬도 뉴욕 브로드웨이 출연진이 좋으니까 뉴욕에 왔을 때 보기로 했다. 이 정도가 미리 세운 계획의 전부였다. 뉴왁 공항에서 맨해튼 들어갈 때 리프트(Lyft)로 이동하고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월스트릿까지 지하철을 탄 것만 빼고 모두 걷거나 버스를 이용했다. YouTube에서 Urban Caffeine이라는 유튜버의 비디오가 뉴욕 대중교통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뉴욕의 대중교통은 서울과 매우 비슷하고 편리했다. 작년부터 OMNY 시스템이 도입되어서 교통카드를 사지 않고도 신용카드나 휴대폰 결제수단으로 승차할 수 있었다. 버스는 지하철보다 훨씬 쾌적하고 창밖으로 거리를 볼 수 있는 점이 마음이 들었다. 또 공간이 좁아서 그런지 지하철보다 낯선 이들 간의 교류가 드문드문 일어나기도 했다.
배터리파크에서 이스트할렘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을 때였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셋이 모여 앉기 좋은 뒤쪽에 앉았는데 다른 노선보다 창밖으로 그라피티나 노후한 건물이 더 많이 보였다. 어느 정거장에서 덩치 큰 흑인 노인이 타서 우리 뒤에 앉았다. 우리 맞은편에는 곱슬머리 형제가 탔다. 형은 키가 큰 십 대 소년이고 동생은 초등학생쯤 되어 보였다. 우리 뒤에 앉은 흑인은 대각선에 있는 형제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베이스드럼 같은 목소리가 들리자 난 선입견이 충만한 동양인답게 몸이 긴장으로 반응했다. 처음에는 할렘 악센트가 짙은 영어인 듯하다가 곧 못 알아듣는 언어로 바뀌었다. 주로 노인이 형제에게 묻고 형제가 노인에게 답하는 식으로 대화는 몇 정거장을 지나도록 한참 이어졌다. 내 옆에 앉은 딸은 그들의 대화를 듣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그들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흔히 듣는 스페인어와는 악센트가 자뭇 다른 듯했다.
버스에서 내린 뒤 딸이 얘기해 준 바에 따르면 형제는 쿠바에서 온 아이들이라고 했다. 노인도 흑인이지만 쿠바 출신이다. 동생에게 버스 타는 법을 가르치는 중이냐고 노인이 형에게 물으면서 대화가 시작되었고 형은 동생에게 농구도 가르친다면서 대화가 이어졌다. 딸도 자세한 내용은 알아듣지 못했다. 단, 형이 나어린 동생을 챙기고 돌보는 모습이나 허름한 노인이 젊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젊은이가 성실하게 답을 해주는 모습이 딸에게는 생소하고도 인상적이었다. 딸이 아는 한, 아이들을 챙기는 것은 언제나 맏이가 아닌 부모의 일이며, 낯선 사람이 말을 걸 때, 특히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말을 걸 때는 일단 경계의 눈빛으로 답을 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뉴욕은 우리 가족이 사는 베이지역과는 여러 모로 다른 세상이었다. 뉴욕은, 다른 차가 끼어들거나 앞의 차가 조금이라고 늦게 출발하는 걸 봐줄 여유가 없는 곳이며, 베이글을 입에 물고 빠른 걸음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조잡한 기념품을 길거리에 펼쳐놓고 바람을 맞으며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버스에서 엿들은 낯선 쿠바인들의 대화는 이 복잡하고 숨 막히는 도시에서 무너지지 않은 삶을 보게 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이들은 사람들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법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피할 일만은 아니다.
갤러리와 미술관은 기억과 이야기의 낚싯밥 같은 거였다. 그림에서는 대개 나의 삶의 일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그림을 보고 서로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
뉴욕에서 삼일 지내는 동안 첫날 첼시마켓에서 아침을 먹고 갤러리를 다섯 곳 정도 돌며 요즘 뜨는 컨템퍼러리 미술품들과 갤러리 컬렉션들을 감상하고 밤에는 뮤지컬 MJ를 봤고, 다음 날 휘트니뮤지엄에서 다양한 화풍의 미국 근대 미술과 1970년대 초기 AI가 그린 작품과 허드슨 강변 풍경을 감상하고, 그리니치를 걷고, 월스트리트를 걸어서 9/11 메모리얼파크를 지나 배터리 파크까지 갔다가 미드타운으로 돌아와 트램을 타고 루스벨트 아일랜드를 찍고 파크에버뉴를 걸어보고 타임스퀘어로 돌아와 호텔에서 와인을 마셨고, 마지막 날에는 버스를 타고 구겐하임뮤지엄까지 가서 (표 구매하지 않고) 건축물 내부를 구경하고 센트럴파크 안을 걸어서 내려와 MOMA로 가서 1880년대부터 현대 미술까지 관람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Andrew Wyeth의 크리스티나의 월드를 볼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나만의 여행 팁이라면, 나는 여행할 때 맛집을 찾지 않는다. 아침은 호텔 내 뷔페나 전날 밤에 미리 사다 놓은 빵으로 하고, 점심은 주로 그날 방문하는 미술관 안에 있는 식당에서 한다. 휘트니뮤지엄 1층에 있는 FRENCHETTE BAKERY와 MOMA의 Cafe 2 모두 만족스러웠다. 기념품은 언제나 냉장고 자석과 엽서이다. 짐도 간소하다. 세 명이 백팩 두 개와 크로스백 하나가 전부였지만 빠뜨리거나 부족한 것은 전혀 없었다. 결혼 25주년 여행은 매우 우리답고 간소하고 풍부했다.
왼쪽: 호텔에서 본 야경, 가운데: 구겐하임 내부, 오른쪽: 갤러리 중 한 곳.
왼쪽: AI(Harold Cohen's Aaron)가 그린 그림(Whitney Museum), 가운데: 센트럴파크에서 본 맨해튼, 오른쪽: 루스벨트아일랜드에서 맨해튼으로 돌아오는 트램에서 촬영($2.9 대중교통 요금으로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