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이면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다. 작년 10월부터 원서를 쓰기 시작해서 12월 말에 지원서 넣는 일을 마치고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지원한 대학에서 입학 결과를 받았다. 학력고사 세대인 나는 딱 대학 하나를 골라서 단 하루의 시험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입시를 거쳤기 때문에 미국의 입시를 어쩌면 만만하게 보았다. 시험도 여러 번 볼 수 있고, 공부 이외의 다른 활동도 입시에 영향을 주고, 지원서도 여러 대학에 넣을 수 있고, 아이비 대학이 아니어도 졸업 후 여러 길이 있는데 뭐 그리 문제인가 싶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한국의 입시지옥과 온도차이가 있을 뿐, 미국 입시도 나름대로 치열했다. 딸은 고등학교 내내 꽤 즐겁고 꽤 열심히 살았는데, 대학입시 문턱 앞에 서니 그 모든 시간이 대학 입시 "준비" 시간으로 변하였고 입시사정관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활동이 되어 버렸다. 열정으로 보냈던 시간을 지루하고 지치는 준비라는 조명에서 보는 못마땅한 경험이었다.
과연 모든 것이 준비여야 할까? 이적의 노래 <준비>처럼 준비하다가 인생이 끝나면 어떡하려고. 나도 요즘 그림 그리는 사람의 정체성을 더 가지려고 준비하는 중이어서 이런 두려움이 문득문득 엄습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풀드 포크(Pulled Pork)를 만들다가 다른 생각이 들었다. 풀드 포크는 돼지목살 덩어리를 오랜 시간 익혀서 부드럽게 되면 바비큐 소스와 섞어서 잠깐 가열한 뒤 먹는 요리이다. 돼지고기를 맛있게 삶으려고 더치오븐에 각종 허브 향신재와 과일을 깔았다. 돼지고기를 얹으려다가 보니 냄비에 들어있는 재료가 예뻤다. 누린 내 대신 풍부하고 상큼한 향이 나는 풀드 포크를 만드는 건 아름다운 일이었다. 냄비 바닥에 깔린 양파, 타임, 로스마리, 월계수 잎, 사과, 오렌지가 완성된 요리에서는 보이지 않겠지만 준비가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거구나.
언제까지 준비만 해야 하는가 지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준비여서 더 아름답기도 하단다.
딸에게도, 나에게도 속삭이는 그림을 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