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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문 Jul 27. 2022

배낭 하나 들쳐 매고 갑자기 떠난 울릉도

울릉도 백패킹 #1

'시간 많으면 여행이나 가!'

나도 그러고 싶었다. 오히려 바쁜 회사 생활 동안 많은 여행을 다녔던 나는 백수로 지내는 이 기간 동안에 여행을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해서 무엇인가 잡히지 않는 마음이 나의 발목을 붙잡았고 이리저리 머리만 싸매다 여행다운 여행을 못 가게 되었다. 시간이 없을 때에는 시간만 생기면 어디던 떠다닐 것만 같더니.. 참 아이러니하다.


결국 배낭 하나 들쳐 매고 집 밖으로 나서게 되었다. '이왕 가는 거 후회 없는 곳으로 가자!'라고 생각을 하니 바로 해외여행이 떠올랐지만 더 즉흥으로, 더 빨리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곳은 울릉도. 아무 때나 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쉽게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나의 여행 DNA를 다시 끌어올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배낭에 이것저것 백패킹 장비들을 집어넣고 집을 나선다.


화요일 아침 강릉에서 울릉도로 출발하는 배편이 있음을 확인하고 출발했다. 사실 새벽에 일어나 강릉으로 출발해도 됐지만 조금 더 미루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또 떠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일단 강릉으로 출발했다.


아무도 없는 아침의 안목해변

밤늦게 도착한 강릉에 위치한 한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기로 한다. 찜질방이란 곳을 정말 오랜만에 와보기도 하고, 여기서 마지막으로 자본 것은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이었다. 그렇게 쪽잠을 자고 일어나 새벽같이 안목항이 위치한 안목해변으로 향했다.


안목해변은 꽤 많이 와보았다. 하지만 새벽 아무도 없는 해변을 거닐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일출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 일찍 온 것이긴 한데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문득 생각이  난다. '오늘 배 뜰 수 있을까?' '멀미.. 괜찮을까?'


거짓말처럼 맑은 울릉도 저동항

멀미를 심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좌우 앞뒤로 흔들리는 배 때문에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버티기만 했던 3시간이었다. 그래도 감사한 점은 아무 일도 없이 잘 도착했다는 점이다. 강릉에서 날씨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지만 울릉도의 날씨는 정말 좋았다. 날씨 덕에 텐션이 극으로 올라갔고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길거리에서 주전부리를 판매하시는 아주머니들과 인사도 하며 여행 텐션을 끌어올린다.


여행 내내 함께 하게 될 갈매기

항구에는 갈매기가 정말 많았다. 그동안 여행을 다녀봐도 갈매기는 많이 볼 수 없었는데 그동안 못 본 갈매기를 한 번에 몰아서 보는 기분이었다. 너무 많이 봐서 사실 여행 끝날 때 즈음에는 사실 좀 질리더라.


울릉도 여행을 반겨주는 갈매기들

갈매기들을 계속 보다 보니 어느덧 벌써 친해진 기분이다. 갈매기들에게 다가가면 나를 슬쩍 흘겨보는데 경계심이 강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나도 예전과는 달리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 사이에서 경계심이 강해진다. 아무 조건 없이 즐기고 사랑했던 지난날들의 순수함은 이제 많이 사라진 듯하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가오면 경계하고 슬쩍 피하도 한다. 뭐 아마 자연스러운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돌 부딪히는 소리

울릉도의 해변은 모래가 아닌 돌들로 이루어져 있다. 파도가 들어왔다 나갈 때마다 돌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다다다닥' 거리는 소리를 한참 듣고 있으면 멍하니 생각에 잠기게 된다. '아 바다로 여행을 온 거구나' 문득 실감이 났다.


나의 발이 되어준 스쿠터

유명한 맛집에서 따개비밥을 먹고 스쿠터를 빌리기로 한다. 워낙 무계획 여행으로 온 거였고 백패킹이 목적이어서 걸어 다닐 생각이었지만 울릉도를 여러 번 와본 형의 추천으로 스쿠터를 빌리게 되었다. 그리고 안 빌렸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울릉도를 이틀에 걸쳐 다 돌아보기로 하고 빌린 스쿠터 여행은 낭만 지수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기에 충분했고 '청춘', '낭만' 등의 단어를 되뇌며 행복한 순간을 만끽했다.


거북바위

많이 백패커들이 찾는 거북바위를 찾았다. 이곳은 '천연 수영장'으로 불리며 많은 이들이 수영과 스노클링을 즐기러 왔다. 특히 과거 이곳은 텐트를 쳐놓고 야영을 즐기던 일들이 많았으나 현재는 낙석에 위한 위험으로 야영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에도 몇몇 분들은 이곳에서 텐트를 쳐놓고 있었다. 다른 부분들은 차치하더라도 캠퍼들의 안전을 위해서 금지된 곳인데, 여전히 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YOLO의 뜻이 점점 변질되어 가는 것 같다.


천연 수영장

많은 이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촬영이 목적이었고 워낙 짠내 나는 바다수영을 싫어한다는 핑계로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사실 혼자 바다에 들어가서 논듯 무슨 재미겠냐 싶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아무 생각 없이 바다에 뛰어들고 피부가 검게 타들어갈 때까지 놀았던 그때가 그립다.


신기한 지형들

울릉도는 아직까지 오염되지 않은 곳이라 한다. 2025년에 공항이 열린다던데 그전에 온 것이 다행이랄까.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자연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나중에 공항이 열리면 한번 더 오고 싶다.


학포 해변

울릉도에서 가장 유명한 학포 해변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이곳 야영장에서 야영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사람들이 붐비는 곳보다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유명한 곳은 이유가 있는 법. 이곳의 파도는 햇빛에 부딪히고 있었고 내 눈에는 금빛으로 담기게 되었다. 역광으로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과 해가 지는 광경이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보였다.


현포 해변

학포 해변과 야영장을 뒤로하고 예정 박지였던 현포에 도착하였다. 처음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붐비고 시끄러운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서 조금 실망했는데, 해가 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물놀이하던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점점 한적한 분위기가 되었다. 남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텐트를 피칭하고 해 가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내가 백패킹을 다니는 이유 중 8할을 차지하는 순간이다.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은 도대체 질리지가 않는다.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일까, 해가 지며 또 다른 해가 뜨기를 바라는 기대감일까.. 여러 가지 몽글몽글한 감정들이 마음에 담기게 되면 역시 여행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떠나기 전에는 귀찮음과 조금의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막상 자연으로 나와 자연의 위대함을 바라보면 나 스스로 본연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이래서 여행을 그만둘 수 없다.


낭만

한적한 바닷가에 집 지어놓고, 근처 마트에 가서 장을 봐 온 후, 샤워와 빨래를 동시에 해놓고 '대충 마르겠지'며 텐트 위에 던져놓고, 노을 지는 것을 보며 라면을 끓여 먹는 이 밤을 도대체 언제까지 '낭만'이라 부르며 즐길 수 있을까? 이 젊음이 영영 떠나갈까 벌써 아쉽다.


마무리

출발부터 감사한 일들 뿐이었던 울릉도에서의 첫날이 마무리된다. 여전히 많은 걱정들과 고뇌들을 안고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다 잊고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다. 열심히 움직이고, 여행하고, 즐길 수 있는 이 순간들을 다시 한번 감사로 고백하며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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