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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Dec 13. 2023

자서전을 왜 쓰지?

자서전과 회고록의  사전적 정의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살펴본다.

자서전 - 『문학』 작자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스스로 짓거나, 남에게 구술하여 쓰게 한 전기. 
회고록 -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적은 기록.

자서전이나 회고록이나 다 같은 글인데 굳이 다른 면을 찾자면 자서전은 "남에게 구술하여" 쓰기도 하는 것이고, 회고록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적는 글이니 본인의 기록이라고 이해된다. 물론 주인공을 잘 알고있는 지인이 회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이나 결국은 같은 의미아닌가.


요즘은 출판기념회의 계절이다. 아예 홍수사태라고 할 지경이다. 정치가들은 어쩜 그리도 글을 잘 쓰는가? 정치를 하려면 우선 책부터 쓰고 볼 일인가.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알리고,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표출하는 것이 책만한 것이 없나보다. 영상시대에, IT시대에 굳이 종이책을 찍어내고, 참석자들은 아주 후한 책값을 내고 책을 가져간다. 서가에 모셔둘 책이 될지, 틈틈이 손에 잡고 정독할 책이 될지 모를 일이다. 정치가들이 출간한 책이 모두 본인이 밤새워가며 썼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까? 아마도 대필이 많을 것이다. 자신의 전기도 남에게 쓰라고 하고, 자신의 회고도 남에게 쓰라고 하겠지, 이런 생각은 순진하지 못한 나만의 생각일지. 만약 본인이 완전히 다 쓴 책이라면 나는 그분들을 작가로서 존경한다. 


모 출판사 회장과 만남 중에 '자서전'이 화제에 올랐다. 그 분은 옆지기에게 '회고록'을 쓰라고 권했다. 본인은 자서전을 열심히 구해 읽는다는 것이다. 자서전을 읽으며 인생의 많은 길을 알게되고 배울 점이 많다고 한다. 위인전을 읽는 것과 같은 의미일까?

"누가 남의 자서전을 돈주고 사서 읽어요? 일기책에나 쓸 이야기를?" 내가 말했다.

그분도 우리와 같은 또래로 나이 70 넘긴 분이다. 자서전에 한 시대가 녹아있으니 그것이 역사적 기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서전이 서점에 진열되고 판매되는 시간은 짧기 때문에 그분은 헌책방을 돌며 오래전에 출판된 자서전을 구해서 읽는다는 것이다. 가끔 개인의 일기장에서 00년도에 짜장면이 60원이었다는 기록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다. 고속도로 개통 이전에 서울서 부산까지 가려면 꼬박 하루가 걸렸다는 이야기도 개인의 일기장에서 발견된다. 한 주부의 개인 가계부가 물가의 변화에 대한 훌륭한 기록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개인 기록이 역사가 되는 경우이다. 


북아트 작품 <여자의 일생>

자서전은 대부분 자비출판하여 지인들에게 돌리는 책으로 알고있는 '순진하지 못한' 내가 자서전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70년대 경제개발 시대를 숨가쁘게 허덕이며 맨발로 뛰어온 우리 나이의 성공신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성공신화를 뒷받침하는 실패를 자랑스럽게 노출하기도 한다. "책으로 쓰면 수십권"이 될 것이라는 파란만장한 '여자의 일생'이 있을 것이다. 아직도 운명의 그늘진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한 여인도 있고, 햇빛 아래로 걸어나온 여자의 회고록도 있을 것이다. 갖은 고생을 다 한 사연을 숨기지 않고 다 쏟아낼 수 있는 용기는 적든 크든 성공쪽에 서있는 사람들 아닐까? 나는 이런 역경을 딛고 지금 이 자리에 서있다는 외침일 수도 있다. 하소연하고 싶은 것이다. 네가 먹는 열매는 말이지 다 내가 밑거름을 줬기 때문이라고 설득시키고 싶은 것이다. 자서전이 저절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공감을 끌어내려고 강요하기도 한다. 


45년 동안 출판사를 이끌어온 그분의 회고록에는 내가 아는(동갑네이니 함께 겪은) 시대상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그분이 옆지기에게 회고록을 쓰라고 권하는 이유도 아마 회고록이 역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짊어져야 할 시대의 등짐이 있기 마련이다. 한 개인이 그 등짐을 어떻게 짊어지고 걸어왔는가를 기록하라는 뜻일 게다. 우리 나이가 일생을 회고할 시기가 된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북아트 작품 일기장 묶음


깨달았다. 자서전이 단순히 일기장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옆지기가 회고록을 쓴다면 어떤 내용일까를 골똘히 생각해봤다. 이것 참 귀한 시간이다. 함께 수십년을 보낸 옆지기의 일생을 샅샅이 살펴본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성격이 안맞아서, 그의 가족에 대한 그의 짐을 왜 내가 함께 져야하나 이런 억울함, 내 가정보다 공동체를 더 사랑하는 그의 삶이 버거워서, 개인의 이득보다는 나라의 이익 편에 서는 의로운 사업가 정신 때문에, 나의 좁디좁은 소견은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았었다. 고집이 얼마나 쎈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를 떠나지 못하고 아직도 곁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 자신도 신기한 사람이다. 가장으로, 남편으로, 애인으로 별 매력없는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한 것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한다. 부부가 함께 살면서 서로 인간적인 존경심이 없다면 쉽게 갈라설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불만은 내 감정의 불만일 뿐이지, 그의 인격이 저질스러워서 도저히 곁에 머물 수 없는 지경이라 불만인 것은 아니다. 다만 내 품에 넘쳐난 그의 사상과 행동들이 나에게 벅찬 것일 뿐, 그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아직도 곁에 서있다.

동기간의 우애가 돈독한 것이 얼마나 배우자에게 힘든 일인지는 몸으로 겪지만, 동기간에 우애를 가져야 함은 인간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옆집 사람이라면 존경스거운데 내 남자는 불편하다. 효자 아들과 함께 사는 것이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얼마나 속상할 때가 많은지는 체험하지만, 인간은 당연히 효자여야 한다. 아들이 효자인 것은 좋지만 남편이 효자인 것은 힘들다.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나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때 내몫을 포기하는 것은 참 억울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선택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비난하며 지내는가.

형제가 많은 것도, 집이 가난한 것도, 키가 작은 것도, 눈딱지가 고약한 것도 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당당히 우리 엄마를 설득시키던 그의 말처럼, 그가 우애좋고 효자이고 이기심없고 올바른 사회인인 것이 나쁜 인간은 아니니 나는 아직 그의 곁에 있다. 함께 살기가 힘들 뿐, 왜 곁을 떠나고싶은지를 이해시킬 수는 없다. 그저 작고 좁고 옹색한 내 가슴을 넓히고 키우면 될 것을!


자서전이, 회고록이 개인의 일기장일 뿐이라면 굳이 애쓰고 기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안에 공동체의 시대가 들어앉아 독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미시사가 거대서사와 만나는 접점이 있어야 독자들의 공감대를 얻을 것이다. 사회의 거대서사가 수레바퀴라면 개인의 미시사는 수레바퀴 안의 살 한개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함께 굴러가는 역사와 개인사.

옆지기의 삶에 커다란 획을 그어본다. 어디 어디서 잠깐 머물러 기록으로 남기면 좋을 지 생각해본다. 벌써 짚이는 몇 군데가 있다. 삶은 이벤트가 아니지만, 시인의 말처럼 소풍나온 인생의 한나절을 기록해봄도 괜찮을 것 같다. 만약에 그가 회고록을 쓰게 된다면 그가 잊고 있었던 기억 몇 조각을 꺼내어 덧붙여주고 싶다. 부끄러워서 이 대목은 빼야겠다고 하는 곳에서는 "괜찮아, 자랑스러워, 빼지 마, 그냥 써, 써."하고 응원할 것이다. 그는 회고록을 쓸 것인가? 답은 벌써 들었다. 자랑할 게 하나도 없어서 쓸 게 없다고.

그리고 그가 한 마디 덧붙였다.

"나는 평생 '을'의 입장으로 사업을 해왔지만 비굴하지는 않았어."

나는 속엣말을 웅얼거린다.

"그래, 만약에 당신이 '갑질'하는 남자라면 난 벌써 떠났을 거야. 비굴하지 않고 당당한 '을'이니까 아직 곁에 남아있는 거야."

결혼식 사진부터 가족들 사진 필름 보관 .




대화중에 재미있었던 한 대목을 소개한다. 7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 군대에 간 이야기이다. 그분이 회고록에 쓰지는 않은 것같다.

"나, 군대생활 참 멋지게 했어, 하하하"

"요주의 인물" 딱지를 붙이고 전방 어딘가 산 꼭대기에 배치되었단다. 얼어죽을 것 같은 봄 가을 겨울을 보내야 하는 산 꼭대기에. 식량과 보급품을 가지러 산아래로 내려가고 올라가는데 하루가 걸리는 곳이었다고 한다. 물론 걸어서. 유배지같은 그곳에서 얻은 자유! 높은 사람들이 절대로 방문하는 일이 없다. 산 꼭대기까지 올라올 높은 사람은 없다고. 통신이 오면 '어- 어- 어- ' 몇마디 하다가 "잘 안들립니다."하고 끊어버린다. 면도도 않고 수염을 길게 기른 채 지냈다고 한다. 적군이 침입하는 상황이 아니면 세상 편한 곳이었다고(전화위복?). 70년대 초반의 이야기이다. 지금이야 산꼭대기이든 땅속이든 물속이든 어디라도 다 높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통신도 옆에서 말하듯 선명하지만 말이다. 


꼰대들, 나이 70 넘은 우리 셋은 전형적인 꼰대 마인드로 "라떼" 이야기를 쏟아놓으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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