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gen Jan 13. 2024

아이야, 책을 읽거라.

셋째 손녀가(친손 외손 합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에 입학을 하면 손녀 셋이 중학교 3,2,1학년이다. 아래로는 초등학교 4,3,2학년이다. 서로들 만나는 걸 좋아해 주말이면 우리집에 모인다.

게을러서,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장난감들을 이제 다 처분한다. 작년부터 묵은 장난감들은 다 없애라는 며느리들의 조언이 있었고, 손주들도 허락을 했으나 버리지 못했다. 이웃에게 줄만큼 깨끗하지도 좋지도 않은, 별것도 아닌 장난감들이다. 손주들은 이제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 공동놀이로는 체스 바둑 장기를 두고, 각자들 스마트 폰에 빠져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킥보드를 타던 활동시간이 줄어들었다. 스마트 폰을 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림을 그리고, 이것저것 가위질과 색칠로 만들기를 하던 시간도 줄었다. 아이들에게 스마트 폰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금지시키는 것보다는 유용하게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낫다.

2년전에 중1, 초6,5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유럽여행을 할 때 스마트 폰이 큰 역할을 했다. 구글 맵으로 길을 찾고, 머무는 도시의 대중교통 노선과 시간표를 보고, 사전으로 낱말을 찾고, 번역기를 돌려 해석을 하는 일을 스마트 폰이 다 맡아서 해줬다. 너희들이 찾아보라는 말로 아이들에게 다 떠맡기니 아이들은 스마트 폰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척척 해냈다.

이동하는 중에도 아이들은 스마트 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여 곁눈질로 훔쳐보면 일러스트를 그리고, 곧 도착할 곳의 맛집을 찾고, 사전에서 영어 단어와 독일어 단어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스마트 폰의 긍정적인 면이다. 물론 게임도 한다. 게임하는 시간이 어느정도 길어진다싶으면 저희들이 먼저 “게임 해도 돼요?”하고 게임 시간 구걸을 한다. 아니, 시작할 때는 허락도 안 받았으면서…


성탄절 무렵 아이들과 함께 서점 나들이를 했다. 늙은 나는 오히려 종이책보다는 e-book을 더 많이 읽는다. 활자를 키워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종이책을 읽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종이책을 보는 것이 좋다는 것은 늙은이의 고루한 생각일지… ‘책이라는 물건’과의 접촉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표지가 자극하는 시각과 종이를 만지는 촉각도 책과 친해지는 방법중에 하나이다. 이미 반 세기가 지나버린 아침신문의 인쇄잉크 냄새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활판인쇄의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요철에 대한 촉감도 기억하고 있다. 요술방망이 같은 스마트 폰이 있어도 아이들이 책과 더 가깝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서점에서 젊은 부부가 아직 이야기의 내용도 이해하지 못할 아기를 안고 와서 그림책을 아기에게 보여주며 자상히 설명해주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런 시간이야말로 미래의 튼실한 설계도를 그리는 시간이 아닌가. 전혀 밑지지 않는 가장 확실한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서가를 둘러보다가 브런치 이웃이 출간한 책을 발견했다. 꽂혀있는 서가에서 책등만 보인다. 슬쩍 뽑아내어 평대 옆 자리를 비집고 눕혀놓았다. 정말 아무 노력도 없이 쉽게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 했다.

여섯 손주중에 오직 하나인 손자가(손녀 다섯) 독일어 공부책을 덥석 집어왔다. 이제 4학년에 올라간다. 깜짝 놀란 내가 “네가 이 책을 어떻게 읽어?”하고 물었다. “밑에 한글로 다 써 있어요.”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외국어 책 스타일이다. 독음이 우리글로 쓰여진 외국어 공부책은 외국어 공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려진 그림 속에 색칠하는 책도 싫다. 창의력을 발전시키지 않는다. 왜 독일어책을 골랐느냐 했더니 저는 방학 때 독일에 갈거라 미리 공부하려고 한단다. 지난 해에 누나들만 데리고 간 것이 못내 속상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4학년이 산 독일어 회화책

아이들은 지식이 풍부한 아이로 천재 소리를 듣기보다는 지혜롭고 창의력이 있는 아이로 자라야 한다. 배운 대로 외워서 정답을 맞추는 것보다는 답이 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다 생각해내는 아이로 자라야 한다. 아이를 이렇게 자라도록 키워주는 것이 바로 책의 힘이다.

이미 식상한 이야기지만, 아이에게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하지않았는가. "고기 잡는 법"을 바로 책이 가르쳐준다. 사람은 평생동안 모든 것을 다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책을 통하여 간접 경험을 풍부히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남보다 더 많은 지식과 간접경험을 쌓게되고, 직접 간접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인생을 좀더 지혜롭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 부를 지칭하는 풍요가 아니라 인생의 참 맛을 아는 멋진 풍요 말이다.

독서의 중요성, 특히 인생의 걸음마를 서툴게 막 떼기 시작한 어린이들의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호랑이가 담배피고 여우가 말을 하던 시절을 이야기해주고, 사람들끼리 뿐만 아니라 세상의 어떤 동식물들이나 무생물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사랑할 수 있는 심성, 하늘의 초승달을 따다 두레박 삼아 우물물을 길어올리는 창의성, 되고싶은 것은 무엇이나 다 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의 꿈을 꿀 수 있는 아이들, 내 손주들 뿐만 아이나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나기를 바란다.


졸업한 손녀는 독서인증서 1급을 받았다.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는 흔한 인증이다. 책만 읽으면. 다른 상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독서 1급 인증이 더 귀하게 여겨졌다. 스마트 폰에 빠져있는 손녀의 모습을 자주 보게된 요즘 이 인증서 한 장이 나의 걱정을 휘익 날려주었다.

책 속 이야기 나라에서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구름 너머 하늘 위로, 바다 밑의 용궁으로, 요정이 살고 있는 숲 속으로. 엄마가 가르치는 일들은 지시와 잔소리가 될지라도 스스로 읽은 책에 쓰여있는 말은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어른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별의 별 생각들을 아이들은 참 많이도 생각해낸다. 보라색 나무, 노란 하늘, 초록색 사람, 분홍색 바다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색깔과 모양들이 어린이의 눈에는 잘도 보인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명령조로 지시하고 대열의 선두에 설 수 있는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꿈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물론 성장에 따라 필요한 지식도 가르쳐야 한다.  다만 성적표에 필요한 지식 외에도 세상의 많은 경험을 책을 통하여 간접 경험하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책을 통하여 가슴 속에 뿌려진 씨앗은 부모형제에게서, 이웃에게서, 사회에서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으며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손주들이 아기 때 읽어주던 그림책에서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은 경험도 있다. 세상 때가 많이 묻은 나이에 가끔 아이의 마음을 되찾는 것은 아주 귀한 일 아닌가! 정화의 시간, 귀한 시간을 손주들이 내게 선물했다. 이제 손주들은 다 커서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읽는다. 내가 아이의 감성으로 돌아가는 기회도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우주의 시간표 대로, 저희들이 설계한 시간표 대로 걷고 뛰고 쉬면서 앞으로 나간다. 나는 자주 멈추며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길다. 먼 길을 걸어왔다. 다시 앞을 향해 선다. 짧은 길이다.

해마다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다. 앞으로 몇 번째 손주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아직은 책을 읽을 정도로 눈이 밝으니 손주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을 골라주는 일은 할 수 있다. 그 아이들의 미래 어느 시점까지 동행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할머니가 권하여 읽은 책의 어느 한 구절이라도 긴 인생길에 문득 생각이 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사랑하는 손주들, 스마트 폰과 미래의 어느 기기에 사로잡히드라도 책이 있을 때까지는 책을 읽기를 바란다. 늘 먼데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가꾸어 나가기를 기도한다.


작가의 이전글 자서전을 왜 쓰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