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 티셔츠 작업 노트]
알바생 티셔츠를 디자인할 때, 그 목적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고민했던 지점이 있다.
1) 흘깃 봐도 나 당근 알바생이야!가 목적인지
: 당시 유행하던 "I ♡ __" 를 디자인에 적용했다. 레퍼런스로 꽤나 감각적인 카페들의 티셔츠 굿즈를 살펴보며 폰트를 구경했는데- 산세리프는 쁘띠한 느낌을, 세리프는 쿨한 느낌을 주는 것 같더이다. 1)의 최종 버전은 아무래도 내 취향인 세리프체를 사용해 캐주얼하면서도 빈티지한 느낌을 내려고 (아주 노력)했다. 다시 만들어본다면 정석 산세리프체를 사용해 3cm*3cm 정도로 티셔츠 앞면 상단에 프린트해보고 싶다.
2) 당근이라는 브랜드를 첫 눈에 알아채진 못하더라도, 당근이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내는 게 우선인지
: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어떻게 풀어내는 게 효과적일까... 감각적인 타이포그래피 없이 줄글을 길게 적어내면 진부할 것 같고, 자칫하면 유니폼이라는 정체성을 잃을 것 같은... 뭐가 좋을까를 계속 고민하던 중 동화책의 레이아웃을 떠올렸다. 그림 옆에 글상자를 붙여 동화책의 한 페이지처럼 풀어보는 건 어떨까. "당신 근처의" 커뮤니티를 어떻게 그려내야할까 고민했는데, 친구가 GPS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Sometimes, we just want to know that we're helping out a friend, a neighbour, or those newlyweds that just moved in down the hall.
We want to feel like we're doing something good. And doing good, together.
문구는 당근의 미국 홈페이지 karrot에서 빌려왔다. 그 많은 글 중 왜 이 부분을 골랐냐고 묻는다면, 그냥 너무 좋아서. 마음이 두근두근 거려서. 한국의 "정"을 잘 그리고 있는 문장에서 한국에서 시작한 기업이라는 게 느껴지고 + 당근이 추구하는 당근 근처의 좋은 이웃, 좋은 커뮤니티를 잘 담고있는 명료한 은유. (디자인의 한계를 느껴) 최종적으로 2)안은 사용되지 않아 사진 속 수준에 멈추어 있지만, 좀 더 발전시킨다면 이런저런 당근 디자인에 활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나. 일러에 익숙해지고 디자인 감각을 기를 필요가 있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 결국 상징적인 게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1안을 선택하여 I love karrot 티셔츠 선발.
- 사실 1)과 2)를 모두 충족시키길 바랐으나 실력 부족으로 인하여...
- 이 당근 티셔츠를 태국에서 만난 반가운 한국인에게 나누어주고 싶어 여러장 챙겨갔으나, 너무나 로컬스러운 여행을 했기 때문인지 아무도 만나지 못해... 캐리어에 넣어 고대로 가져왔다는 슬픈 이야기...
방콕 알바생으로 선발되었다는 기쁨을 짧게 누린 뒤, 나는 다시 무기력함에 허덕였다. 인생에 갑작스런 큰 변화가 찾아오면 기분이 환기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여행의 시작에 기쁨이 가득하길 바랐는데. 찾을 땐 그렇게 목 놓아 불러도 나타나지 않더니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적응력이 하필 최대로 발휘되어, 당근 알바생으로 선발되었다는 이 설렘에 나는 억울할만큼 곧 익숙해졌다. 또 참 찌질하게도, 나는 자주 엎어져 울었다. 기쁨이 적어서, 행복이 적어서. 어디서 기원했는지 알 수 없는 바다같은 슬픔은 아무리 눈물로 비워내도 도통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실컷 슬퍼해내서 이 우울함을 떨쳐버리자!! 외치며 중경삼림을 틀고 마라샹궈를 먹으며 의지적으로 눈물을 뚝뚝 흘렸을테지만, 그러한 종류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는 최소 수준의 능동성이 전제해야 가능했다.
엄마의 도움으로 겨우 캐리어를 챙겼고, 엄마의 걱정과 응원에 기대어 공항 리무진에 올랐다. 한시간 쯤 지났을까, 멀미가 시작됐다. 멀미가 뭔지 모르는 인간인 나는 지금껏 여러 운송수단에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글도 쓰던 인간이었는데. 두통까지 몰려오니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단단히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서 스스로 세운 유일한 약속 하나가 순간순간의 기분을 가감없이 적어보자는 것이었는데, 이런. 내가 버스에서 할 수 있던 건 꿀잠에 푹 빠지길 기원하는 것 뿐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후에는 울렁거림이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이럴 땐 높은 확률로 탄산을 벌컥벌컥 마시면 미식거림이 완화되었기에 이 경험적 치료를 시도했다. 스프라이트를 꾸역꾸역 반 정도 마셨을까, 몽롱했던 정신이 서서히 맑아진다. 2000원의 스프라이트가 날 구원했다.
무엇을 먹을까나 한참 고민하다 들어간 우동집. 원래 계획은 게이트를 통과한 뒤 왓챠로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보다 허기가 느껴질 때 즈음 쌀국수를 먹는 것이었으나 이 100ml 남짓의 스프라이트를 버릴 수 없어 무산됐다. 탄산의 효력을 한 번 정도는 더 빌려야 할 것 같았다. 출국 전 순두부찌개를 먹는 것이 국룰이지만 지하 1층 식당은 늘 번잡하기 때문에, 또 순두부가 나의 배변활동을 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칼차단하고자... 그러니까 우동은 나름 철저한 고민과 분석의 결과다.
한 시간 단위로 세세하게 세운 계획을 수행해내는 여행 말고 집 앞 거닐듯 단출한 몸으로 마음 내키는 곳으로 산책하듯 여행하는 게 계획이라면 계획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종류의 편견이든 만들고 싶지 않아 방콕 브이로그 두 세 편을 보는 것 말고는 아무런 사전 조사를 하지 않고 비행기에 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J 인간인 나. 탑승시간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아 원래 이런 인간인 것을 어쩌겠어, 어쩔 수 없게 못말리는 계획형 인간이라는 데 항복하고 여행책을 다운받으며 쫄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렇다기엔 꽤나 빈곤한 서가이지만.
그렇게 나혼자 비행 시작. 오롯이 혼자라는 감각이 또렷해진 순간은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졌을 때,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시작됐다. 창가좌석이나 복도좌석을 늘 나에게 내어주는 대신 불편한 가운데 자리를 자처한 엄마 덕분에 나는 늘 내 자리가 아닌 양옆의 구역을 편안하게 침범해왔다. 어깨 기대기나 다리 마사지, 온도 조절 등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누리며 지금까지 비즈니스같은 이코노미를 누려왔던 나…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에 둘러싸여버렸다. 헤드셋을 끼고 눈을 감아야지.
숙면에 빠지기 전 하나 더 말하자면, 내 모든 비행의 시작은 항공성 중이염 약을 때리면서 시작된다. 초등학생 시절 유독 오른쪽귀에 중이염을 자주 앓던 나는, 일년에 한 번은 이비인후과에 가서 배액을 받곤 했는데… 그 때부터 이퀄라이징이 잘 되지 않았고, 대학생 때 줄이어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오른쪽 청력이 불편할 정도로 떨어져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22살 독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오른쪽 귀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통증을 경험했는데… 그 때 이후로 비행에 대한 긴장감과 약간의 거부감을 갖기 시작했다. (아니 왜 병원 안갔지?) 그리고 올해 초 리스본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았는데 이 증상이 항공성 중이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치료는 항히스타민제 스테로이드 항생제 등등 온갖 염증과 관련된 요소는 모두 차단하여 귀 내부가 조금이라도 부어있을만한 여지를 제거해버리는 것. 아 지금까지 사족이 길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아침 저녁약에는 항히스타민제가 있어서 이 약을 먹고 조금만 기다리면 졸린 느낌이 몸을 타고 올라오는데,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그대로 꿀잠이라는 것.
강렬한 난기류를 만나버렸다. 비행기 복도를 제 집 마당처럼 자유롭게 횡단하며 장난치던 열 명 남짓의 중학생 승객들도 긴장했는지 굳은 표정이었다. 기내는 대체적으로 적막이 흘렀지만, 중간에 툭 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움직임에는 아! 하는 짧은 비명이 곳곳에서 나기도 했다.
호텔까지는 공항철도를 탄 후 MRT나 BTS로 환승하여 찾아갈 계획이었으나, 첫 날이고 벌써 10시가 넘었으니까. 공항 택시를 타는 사치를 부려보기로 했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아리역 근처로, 대부분 한국인 여행객이 머무는 호텔이 위치한 아속역과는 거리가 꽤나 있는 곳. 미터 택시로 가격이 꽤나 나올 것 같기도 하고, 하이웨이를 탄다면 도로 이용료까지 추가로 내게 되었을 때 꽤나 거금이 나갈 것 같아 기사님과 먼저 택시 요금을 정하기로 했다. 기사님께서 부르신 600밧은 예상한 가격보다 비싸 영어로 흥정을 시도하였지만, 기사님과 영어로 소통이 되지 않아 눈물 살짝 닦으며 택시에 올랐다. (이후에 방콕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600밧 정도면 살짝 비싸긴 해도 괜찮은 가격이라고!)
택시를 타고 뻥 뚫린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600밧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창밖 풍경을 좇는다.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택시에 앉아 태국이 진하게 느껴지는 화려하고 거대한 전광판들을 통과해내며 혜성특급을 연상했다면 너무 오버하는 걸까? 새로운 세계로의 탐험을 알리는 화려하고 웅장한 인트로였다.
그럼 그렇지. 내 여행은 매끄럽지 않다. 호텔 근처에 왔는데, 기사님 네비가 먹통이 됐다. 이제 호텔 거의 다 도착했으니까 내리라는 늬앙스로 말하시는 것 같아 밖을 보았더니 너무나 암흑이었다. 화려한 바디랭귀지로 호텔까지 안내한 후, 긴장이 풀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침대에 누웠다. 인생 첫 (나혼자) 해외여행은 이륙에 성공하고 순항 고도 진입 중. 오랜만에 스스로 기특해 웃음이 났다. 커튼을 열어보니 바와 수영장이 보였다. 내일은 수영을 해야지, 내일은 저 바에 앉아 방콕의 밤을 즐겨봐야지. 내일이 기다려지는 게 얼마만이었더라. 오늘 아침까지도 느꼈던 우울은 어느새 먼 과거에만 느꼈던 감정인 것처럼 낯설어졌다. 우울은 머나먼 기억이 됐다.
내일은 푹 자고 일어나야지. 내일은 타이티를 꼭 마셔봐야지. 내일은 꼭 수영을 해야지. 내일은 꼭 바에 앉아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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