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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Jan 12. 2021

오줌이 마려워도 타코야끼는먹고 싶어

  출발부터 불안하긴 했다. 장갑에 목도리까지 칭칭 동여매고 나서자마자 쉬가 마렵다니, 집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믿고 싶었다. 너무 추웠고, 다시 학원으로 올라가 장갑이며 점퍼를 벗겨 화장실을 보내는 게 성가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뜩이나 급한데 큰 아이는 신발에 가시가 들어갔다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둘째는 쉬가 급해도 아파트 앞에 일주일마다 오는 타코야끼 아저씨는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아이 둘을 먼저 올려 보내고, 타코야끼를 사서 집에 갔더니 현관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하나는 울고, 하나는 잔소리를 해대는 모양새가, 중문을 열기 전에 이미 상황을 간파하고도 남았다.      



  엄마 잘못이다. 다시 3층 학원으로 올라가는 게 뭐 힘들어서, 점퍼를 벗기고 다시 입히는 게 뭐 귀찮다고. 아들아, 엄마가 잘못했다.   


   

  그런데 며칠 사이 화장실 사건이 또 터지고 말았다. 코로나로 학원이 다 문을 닫는 바람에 혼자 남겨진 조카를 당분간 돌봐주기로 한 참이다. 학원에 갔던 녀석이 화장실을 갔는데 휴지가 없었던 모양이다. 조카는 난감한 상황을 어찌어찌 해결하고 집에 왔지만 풀이 죽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좁은 화장실에서 어쩔 줄 몰라했을 아이와 학원에서의 불편했을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느꼈을 수치심, 사촌 동생들 앞에서의 부끄러움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여 일부러 더 크게 떠들어대기로 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오줌 싼 내 이야기서부터 소변을 참다가 방광이 터질 뻔했던 경험, 주위에서 보고 들은 온갖 화장실 에피소드를 줄줄줄 읊어대니 아이들은 웃겨 죽는다고 난리가 났다. 한바탕 낄낄대고 나서, 당부했다. 급한 순간을 만들지 않는 게 첫 번째야, 오죽하면 영어에 nature’s call이란 표현이 있겠니. 화장실에 가는 건 세상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부름이야. 언제든 어디서든 참지 말고 이야기해야 해. 그런데 친구가 실수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어. 그렇지만 절대로 놀려서는 안 돼. 상대방이 난감하고 민망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걸 공격하는 것만큼 비겁한 행동은 없어. 누가 알겠니, 다음은 너 일수도 있단다. 또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서 당황스러운 순간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목청껏 밖에 있는 사람을 불러도 좋아. 모두 이해하니까. 그게 부끄러우면 각자의 기지를 발휘해야 지 뭐. 속옷이나 안에 입은 반팔티를 내버리고 가도 아무 문제없잖아. 그렇지?   


  

  놀림거리가 되는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린 나는 그런 상황을 유독 못 견뎌했다. 그렇지만 사는 게 늘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 종종 바보 같은 실수에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은 찾아왔고, 그런 순간을 견디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비슷한 경험을 별 것 아닌 듯 웃음으로 털어버릴 수 있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래서 무안한 순간에 나와 달리 유연하게 대처했으면 하는 바람에, 아이들의 당황스러운 실수를 조용히 덮어주기보다는 일부러 더 크게 자주 이야기한다. 첫 번째에는 울기도 하고, 그만하라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같은 말이 반복될수록 격렬한 반응은 줄어들고 결국 나도 아이도 함께 웃게 된다. 그 방법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무뎌진다는 것이다. 반복 속에 민망함은 가라앉고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 그럴 수도 있는 일쯤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엄마 나름의 단련 훈련이 밖에서도 효과가 있으면 좋으련만.   


       

  내일은 일주일 만에 타코야끼 트럭이 오는 날이다. 타코야끼를 사들고 올라가는 길에 지난주에 오줌 싼 둘째 이야기를 꺼내 또 한바탕 웃어야겠다. 둘째는 조금 민망해하겠지만 지난 실수에 뻔뻔히 대처하는 법을 연습하게 될 것이고, 큰 아이와 조카에게도 다시 한번 상기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nature’s call에는 즉각 응답할 것. 참, 응답 전에는 반드시 휴지를 확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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