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를 안고 울었을 때, 나는
과일을 깍았는지 뭘했는지 칼집자욱이 가득하고 칠은 벗겨진 오래되고 작은, 그 쟁반에 놓여진 멸치와 맥주.
엄마는 그 쟁반에 멸치와 맥주를 놓고 앉아 혼자 맥주를 마셨다. 내가 같이 마셔줄 수 있는 나이였다면 참 좋았으련만. 아니 그 멸치와 맥주의 맛을 아는 30대정도만 되었어도 좋았으련만. 나는 10대후반이었고 20대 초반이었다. 한참 또래 친구들과 놀고 싶어했고, 승부욕 많은 나는 공부도 잘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래 친구들과 모든 부분에서 비교하기 좋아할 나이였다. 아니 그것밖에 할줄 모르는 나이였다. 다른 집 엄마는 이런데저런데 우리엄마는왜 저러지... 그렇게 비교를 하면서도 마음한켠은 그런 비교를 하는 스스로가 너무 싫고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엄마는 늘 불쌍했다.
맥주를 마시던 엄마는 언젠가부터 혼자 울고 나에게 푸념하고 울고 그리고 나에게 안아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술냄새 나는 엄마는, 나를 안고 울었다. 나의 작은 어깨에 그녀의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하루종일 백반집 식당일을 하면서 몸에 베인 음식냄새, 가스냄새와 맥주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냄새가 싫었다. 화장품 냄새나던 예전의 엄마가 좋았는데, 어느새 엄마는 없고 불쌍한 엄마만 있었다. 엄마는 너무 서럽게 뜨거운 입김을 푹푹 풍기면서 울었다. 크게 목놓아 울지도 않고 억울함에 흐느끼던 엄마의 그 괴로움이 내 어깨에 아직 남아있다. 그땐 그 흐느낌이 그렇게 간지러워서 엄마를 떨어뜨려 놓았다. 그리고 그 냄새가 싫었다. 엄마 입에서 푹푹 뜨겁게 나오던 맥주와 멸치비린내가 섞인 그 내음이. 그 내음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이야...그때 더 꽉 안아줄걸. 더 오래 안아줄걸. 그랬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이 죄책감에 오래도 힘들게 살고 있다. 이 우울함은 언제 없어질까. 죽어야 끝나지 않을까.
지금은 엄마를 더 꼬옥 안아줄 수 있는데.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이제 엄마가 떠난지 20년이 되었다. 왜그렇게 빨리 갔을까. 정말이지. 엄마의 흐느낌을 알기엔 너무 어렸던 열여덟의 소녀, 스무살의 소녀, 스물세살의 딸이었어요. 그때 더 꽉 안아주지 못해 괴로워하며 살줄은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 멀어질 줄 알았던 그 순간이었다. 억세고 뻣뻣했던 엄마의 머릿결, 뇌수술을 몇번이나해서 움푹 패였던 엄마 왼쪽의 이마, 갈라진 오른쪽 검지의 손톱. 반지같은 것은 끼워져있지 않았던 손가락. 말랑말랑했던 엄마의 겨드랑이 살.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너무너무 그립고 보고싶다.
나도 엄마가 있었는데. 그냥 나는 엄마도 없는 원래 엄마도 없었던 것 같은 삶이 되었다.
엄마, 미안해
엄마가 내 어깨에 얼굴을 푹 묻고 울던 그 순간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 몰랐어. 미안해. 그리고 보고싶어요. 나는 엄마가 없고 나서 하루하루가 너무 지옥같아. 사는 것 같지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