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시간 영어 소리 채우기
세상의 모든 일의 이치를 깨친 것은 아니지만 이 나이가 되면 몇 가지 정도는 그 이치를 알게 된다. 그중 하나는 "거저 되는 것은 없다."이다. 너무도 당연해서 좀 싱거운 이 말을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 영어를,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듣고 말할 수 있는 영어를 시작하기로 했으니 이제부터는 시간과 노력과의 싸움이다.
영어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을 때, 나는 요령을 담은 세상 모든 말들과 책들을 멀리 했다.
그저 내가 아는 방법, 내가 나의 아이들이나 나의 학생들에게 했던 그 방법을 내게도 적용하기로 했다.
물론 한참 언어 습득의 뇌가 말랑말랑 살아있는 아이들과 돌처럼 굳어버린 나의 뇌가 같을 수는 없다.
영어의 문법을 배우고 단어를 우리말로 해석해 가며 암기를 했던 시절이 최소 8년이라 이제 막 0에서 시작하는 아이들과는 또 다를 것이다. 하지만 기본을 채우는 것은 같으리라 생각했다. 더욱이 그동안의 영어 학습법으로는 원어민과의 첫 만남에서 한마디도 못하는 참패를 경험했는데 다시 그 방법을 쓸 이유는 없었다.
새롭게 도전하는 나의 영어의 시작은 너무도 당연하게 영어 귀 뚫기, 바로 무차별 막무가내 영화 보기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귀가 열려야 (뚫려야) 입도 열린다. 역시나 이 것이 나의 새로운 영어 시작의 절대적인 모토가 됐다.
다행인 것은 나는 예나 지금이나 영화광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영화 사랑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말의 명화나 명화 극장을 매주 빼놓지 않고 본 것 같다. 대학생이 돼서 자유롭게 영화관을 드나들 수 있게 됐을 때는 개봉하는 외화는 거의 다 볼 정도로 영화관을 들락 거렸다.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내 인생에 최고의 여유 있는 시기였다. 아직 아이가 없는 전업주부라 시간이 정말 많았었다. 당시는 동네마다 체인점 같은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이 있었는데 그중 "으뜸과 버금"을 매일 들락 거렸다. 영화를 좋아했고 <스크린>이나 <씨네 21> 같은 영화잡지를 읽는 것도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영화를 무자막으로 보았더라면 아마도 귀가 반쯤은 열렸을 것인데 그때는 영화 자체를 즐긴 것이지 영어 귀를 여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으므로 그런 생각은 아예 머릿속에 없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그 당시엔 누구도 영어를 영화 보기로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어를 영화나 영상을 통해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그러고도 한참 후에 조금씩 생겨났고 요즘은 거의 트렌드가 돼서 영어공부를 위한 영화 보기는 두말하면 잔소리처럼 여겨지게 됐다.
이렇게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영화를 자막 없이 보며 영어소리를 채우는 것은 뭔가 거저먹는 느낌이 들었다.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시간만 투자하면 언젠가는 영어귀가 어느 정도는 뚫릴 것이라 기대했다. 우주에는 공짜 점심이 없으니 시간투자는 얼마든지 하겠노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영화 보기의 세계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