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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례온 Feb 09. 2023

나는 당신과 관련된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당신을 평생 용서하지도, 인정하지도, 이해하지도 않을 거라고 굳게 다짐해놓고서는 며칠 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쉽게 마음이 풀려버린다. 나도 당신이 늙고 나면 괜히 후회할까 봐, 그래서 미래의 내가 죄책감에 시달릴까 봐. 아니 어쩌면, 사랑받던 관성에 못 이겨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던 그때 그 습관 그대로 당신을 향한 무조건적인 애정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내 눈치를 보는 당신이 안쓰럽다. 패악을 부리는 사람이 나인 것도 알고, 넓은 마음을 가지지 못한 것도 나인데 왜 당신이 가장 작아보이는 걸까. 엄마이고 부모라는 이유는 자식의 이런 지랄맞은 행동을 다 받아줘야 하는 거라면, 나는 평생 부모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당신이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세상에 아무 잘못 없이 깨끗하고 선하게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당신의 변화를, 아니 변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 변덕 덕분에 누린 것도 있지만,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마음만큼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건 없다. 날 싫어하던 사람이 날 좋아하게 되는 것은 의심스러우며, 날 좋아하던 사람이 나로부터 등돌리는 것은 날 주저앉게 만든다. 한결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좋고, 그 다음으로는 나를 한결같이 싫어하는 사람이 나으며, 매번 이유도 알려주지도 않고 마음을 뒤바꾸는 사람이 최악이다.


나는 당신을 안다. 당신은 나를 한결같이 사랑한다. 그런 마음으로 나를 낳았음을 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키웠다는 것도 안다. 그런 마음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희생들을 보고 들으며 커왔으니까.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늘 행동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때로는 정말 '마음 같지 않을 때'도 있는 거니까. 그런데 그게 하필 내가 가장 힘든 순간이었던 거고, 가장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했던 거다. "그런 것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지금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그저 화만 났을 때보다도, 실망스러웠을 때보다도, 배신감에 휩싸여 당신을 원망하게 될 때, 나는 제일 힘들다.


왜냐면 당신은 미워하기엔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람이고, 사랑하기엔 지나치게 변덕스러운 사람이다. 마음놓고 사랑하기엔 매번 달라지는 당신을 담기엔, 나는 변화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럴 때마다 당신을 단 한 순간도 미워해보지도 원망해보지도 않았을 누군가를 떠올린다. 아니, 그런 찰나가 있더라도 그보다 훨씬 큰 사랑으로 당신을 끌어안아줄 능력을 갖고 있었던 그 사람.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걸까?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당신과 함께 해서? 아니면 단순히 그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서? 아니면, 당신 안에서 변하지 않았던 무언가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당신 마음 속에서 나를 향한 마음들 중에서 변하지 않았을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분명히 있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마음. 생각만 해도 나를 울컥하게 하는 그 마음. 누군가는 그걸 모성애라고 했고 당신을 그걸 헌신이라고 했다. 나는 함부로 이름 붙이지도 못해서 그 마음을 묘사해보지도 못했다.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내고, 기다리고, 키워내는 데 얼마나 많은 감정과 시간과 노동이 필요한지 감히 계산해볼 수도 없다. 내가 부모가 되어야만 가늠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변치 않는 마음을 믿고, 당신이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주길 기다려보고 싶어지는 밤이다. 내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나는 정말 영원히 이렇게 악순환에 빠져드는 것일까.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왜 그런 일까지 당하고도 여전히 마음을 못 버리냐'고 말하지만, 그건 아마 당신으로부터 사랑받아본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살을 떼어서 나라는 존재를 빚은 사람을 지워버리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모르는 내 습관들과 나는 볼 수 없는 수많은 표정들까지도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 머리카락 한 올 한 올부터 손가락 발가락 하나 하나 사랑받는 기분은, 아무나 느낄 수 있는 것도 누구나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 기분을 안다. 어쩌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것을 다시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당신에게 매달리게 만든다.


가끔은 나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당신을 미워하기도 했다. 차라리 감싸줄 만한 명분 하나 없을 만큼 쓰레기같은 사람이었으면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았을 텐데. 당신은 왜 그렇게도 나를 애지중지 아껴줘서, 당신을 미워하는 게 마치 자해하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껴지게 만든 걸까.


나도 이제 나를 모르겠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잊어버리는 것도, 당신과 관련된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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