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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May 13. 2020

얼굴이 부어올랐다

01

배드민턴을 치러갔다.

엄마 아빠, 내 아들과 함께. 친정동네에는 제대로 된 배드민턴장이 있다. 단단한 바닥에 고운 빨간 흙이 깔려있고 시설관리도 제대로 다 되어있으며 바구니에는 쓰다 만 배드민턴 공이 꽉 차 있는 곳이다. 그리고 배드민턴을 전투적으로 치는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이 상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공이 어찌나 빠른지 내리쳐지는 소리에 귀가 뻥 뚫릴 정도.


아빠는 엄마와 나는 아이와 배드민턴을 치고 싶었지만 코트가 하나 남아있었다. 우리 코트 옆에는 아이와 아빠가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고 나머지 코트에는 전투 회원들이 꽉 차있었다. 아들은 고작 일곱 살쯤 밖에 되지 않은 때여서 배드민턴을 잘은 치지 못했다. 하지만 또래가 그렇듯 매우 의욕적이었다.

우리는 일단 한 코트를 넷이 썼다. 곧 우리 옆 코트가 비었다. 아들과 그곳으로 자리를 옮기려는데 전투 회원 아줌마가 달려왔다.

"여기는 쓰시면 안 돼요!"

"왜요?"

"어..... 그게, 여기는 회원들이 쓰도록 되어있어요."

"네? 아까 친 분들은 회원 아니잖아요. 여기 동네 시민들 쓰는 곳인데요?"

"아..... 그게 그러니까 한 코트만 시민이 쓰는 거예요."

말투로 봐서 그런 법칙은 그분이 방금 만든 거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나머지 회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 통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

어정쩡한 답을 하다가 따져볼까 하는 맘이 들렸는데 엄마가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억울한 마음을 품고 다시 배드민턴을 쳤다.

아들이 맘대로 쳐지질 않으니 의욕이 사라졌는지 아니면 코트를 나눠 쓰려니 답답한지 우리 코트를 조금 벗어났다.

"어!!!!! 어! 너 여기 돌아다니면 안 돼!!!"

일곱 살 아이에게 배드민턴을 치는 아저씨가 소리를 질렀다. 아들이 아저씨가 앉아 쉬는 의자 쪽을 지나간 것이었다.


부글부글 퓽 팡! 화산이 폭발했다. 텃새도 모자라 약자에게 소리를 지르다니!

내 표정을 보고 엄마가 또 나를 잡아끌었다.

엄마 아빠가 계시니 참을 수밖에......

저쪽은 배드민턴 공을 총알처럼 발사하는 무적의 클럽 회원이 열명은 넘으니 내가 참을 수밖에......


나는 용암이 흘러넘치는 화산에 물을 부었다. 그리고 배드민턴을 치고 나오는 길.

그 회원들 중 몇이 차를 타고 떠나는 걸 봤다. 번호판을 보니 이 동네 차가..... 아니었다!


그럴 수 있다. 다른 지역 사람이 차만 빌려줬나? 그럴 수는 있지만 또다시 화산 폭발이...... 이미 떠나버린 클럽 회원들을 보며 계속 나는 찬물을 부어야 했다. 그날 저녁에 뭘 먹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


아침에 눈을 뜨자 팔뚝에 두드러기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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