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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Jun 03. 2020

엄마 김치는 맛없어

할머니 김치 내놔

"엄마 김치는 맛이 없어. 할머니 김치 맛이 안나."

나는 엄마가 반지르르하게 국물을 뿌리고, 정갈하게 잘라 한껏 멋 부려 접시에 담아놓은 김치를 밀어버리고 다 먹고 양념 쬐금 남은 할머니 김치통을 찾아 국물을 찍어먹으며 투정을 했다.

할머니 김치는 다 맛이 있었다. 깍두기 건, 갓김치 건, 파김치 건, 배추김치 건...... 엄마 김치에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맛이 안 났다. 맹숭맹숭하고 탁 쏘지도 않았으며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꿈꿈 한 맛이 나질 않았다. 쌀밥 하고 딱 맞아떨어지는 맛.

내가 김치 타박을 하면 엄마는 이렇게 응수했다.

"야, 할머니는 눈도 잘 안 보이고 얼마나 지저분하게 김치를 담그는지 알어? 그런 줄도 모르고. 맛없으면 먹지 마."

엄마는 김치를 탁 치워버리고 입을 내밀었다.


그때는 할머니가 얼마나 지저분하게 김장을 하는지 말해줬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맛이 이겼다. 왜 엄마 김치에서는 그런 맛이 안 날까? 엄마한테 물어봐도 알 수 없었고 한창 공부할 때라 머리는 공부하는 데 말고는 쓸 줄을 몰랐으니 전주 할머니 댁에 쫓아가 김장 담그는 걸 눈으로 봐 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 시절 할머니가 담가놓은 김치는 누가 한통을 더 차지하느냐의 눈치싸움이었다. 큰 딸인 엄마는 며느리들에게 밀리고 동생들에게 밀려 예의를 지키며 손사래를 치다가 조금 받아오는 정도였는데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나는 할머니 김치통이 비어갈 쯤만 되면 김치 투정을 부렸다.

엄마는 슬쩍 할머니 김치라며 엄마가 담근 김치를 내놔보기도 했지만 나는 귀신같이 알고 그 김치는 '안' 먹었다. 다른 식구들은 이 김치 저 김치 안 가리고 잘 먹는데 너는 참 웃긴다며 나도 타박을 받았었다.


시간이 흘러 이런저런 대소사를 치르고 할머니 김치는 더 귀해졌다. 나는 맛없는 엄마 김치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할머니 간장, 고추장은 가끔 먹었던 기억이 있다. 역시나 어디서도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그런 맛이었다. 엄마는 시집간 나에게 할머니 댁에서 가져온 간장을 나 먹으라며 챙겨주었다.


아이가 생기고 여전히 완전한 독립이라 할 수는 없지만 엄마 집을 방문하는 횟수가 줄어들 즈음 엄마는 아빠와 함께 태양초를 사서 말리고, 젓갈 만들 새우를 사러 인천을 가고, 소금을 사 간수를 몇 년씩 빼두고, 이배추, 저배추를 사서 맛보며 김장을 준비했다.

글로는 몇 줄이나 횟수로는 오 년이 넘을 것 같다. 엄마가 아빠가 매년 고추 말리던 기억이 선하다.

지붕도 마당도 없는 아파트에서 경비아저씨에게 부탁하여 옥상을 며칠 빌려 고추를 말렸는데 꼭 그때만 되면 비가 쏟아졌으니 비오기 전에 모아 집에 널어두고 선풍기를 돌리기도 했었다. 어쩌다 찾아간 친정집 바닥이 빨간 고추로 꽉 차 있으면 조그만 내 아들은 그 풍경이 재밌기만 해서 그 사이를 이리저리 기우뚱거리며 비집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준비해 엄마와 아빠가 함께 담근 김치는 꿀맛이었다. 내 예민한 혀는 할머니 김치 맛이 무엇이었는지 잊었고 나의 중추신경은 할머니 김치를 아련함으로 저장해 두고 엄마 김치는 새로운 절대 김치 맛으로 저장했다.


내 아이가 김장에 방해가 되지 않을 즈음 나도 김장에 몇 번 참여했다. 엄마가 몇 개월간 온정성을 다해 공수한 재료를 모두 쌓아놓고 하루 종일 앉아 썰고 씻고 자르고 버무렸다. 허리가 이대로 굳겠다 싶을 때쯤 완성되어 먹은 김치는 꿀맛 이상이었다.

엄마가 몇 년의 노하우로 고른 아삭한 배추에서 적당히 나오는 소금 맛과 직접 말려 방앗간에서 빻아 결이 고르지 않은 빨간 고추맛, 싱싱한 젓갈의 꿈꿈 한 맛이 어우러지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나와 내 가족이 함께 웃고 떠들며 땀 흘린 시간까지 들어갔으니 맛도 일품이었겠지만 거기에 더해진 그 무엇은 아무리 족집게로 끄집어 찾아내어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수 없는 비밀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맛난 김치 맛으로 이야기가 끝나면 좋으련만 시간이 흘러 나도 엄마에게서 독립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엄마가 버겁고 힘들고 엄마라는 존재에 불신과 회의가 드는 힘든 시절이었다. 내 아이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코로나는 더 큰 미꾸라지가 되어 이리저리 판을 치고 아빠가 계획한 일이 허무러 지고 남편은 고독이 일상이 되는 시간이 되어 엄마와 크게 한판 싸운 나는 친정에 발을 끊기로 결심했다. 나도 스스로 해보자. 엄마에게 기대지 말자며 일 약속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줄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엄마 김치가 다 떨어졌다. 남편이 마트에서 파는 김치를 사 왔다. 아들이 몇 개 집어 먹고는 "이런 맛이 있어?" 하며 자기 밥그릇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인스턴트의 맛은 며칠 못 갔다.


"엄마, 할머니 김치 없어? 왜 없어? 할머니 보고 갖다 달라고 해."

내 결연한 결심의 배경이나 내 속은 전혀 모를 아들이 할머니 김치를 찾았다.

"엄마, 할머니 김치!"

"그냥 이거 먹어. 맛있다며!"

"맛없어. 할머니 집에 가자."

"할머니도 김치 다 먹었대. 겨울에 담글 거야."

나는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해댔다.

"그래? 아, 나는 김치 없인 못 사는데~!"

아들은 능청을 떨며 한 끼가 멀다 하고 김치 노래를 불러댔고 이대로 무너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던 나는 결국 이를 악물고 흰 깃발을 나부끼며 친정에 갔다.

할머니 김치냉장고를 확인한 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 할머니 김치 아직 많대!!!"




내가 어릴 적 먹었던 외할머니 김치는 아마도 삶의 맛이지 않았을까. 인생의 맛, 딸과 끊을 수 없는 고리, 연결되어온 뿌리, 내 삶의 해답, 내가 가야 하는 길, 그런 것들이 뒤섞인 맛, 어디서도 줄 수 없고 살 수 없는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나의 맛을, 문제집에 얼굴을 박느라 인생 쓴맛은 하나도 못 느껴본 고딩 철부지가, 제 새끼밖에 몰랐던 엄마 철부지가 느꼈고, 느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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