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대소
친정에 전화를 했다.
자식 문제로 속이 터질 때면 친정에 전화를 한다.
언제나 내 인생이 제일 뜨거운 줄로 알고 사는지라
공감해주고 응원해주는 엄마가 필요했다.
그런데 아빠가 받았다.
'엄마 피곤해서 자네. 수다하려고? 나중에 해.'
아빠는 의례 하는 잘 먹고 운동해라는 말로 통화를 마치려고 했다.
난 다급하게 아빠를 불렀다. 아빠와의 수다는 어색하지만 너무 뜨거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
'아빠, 할 말 있어. 애가 너무 말을 안 들어서 걱정이야. 글쎄 걔가.......'
아빠는 내 에피소드를 듣고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잘 교육해봐. 알려줘야지.'
'잔소리를 싫어해. 아빠, 아빠는 할머니 말 잘 들었어?'
아빠는 또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듣고 말고 가 어딨어. 아빠는 눈뜨면 학교 가고 할머니는 내내 밭일하시다가 저녁밥 먹을 때나 만나는데.'
'밥 먹을 때 할머니가 잔소리 안 했어? 뭐 골고루 먹으라든가, 잘 먹으라든가.'
아빠는 내 질문마다 웃음을 터트렸다.
'잔소리가 왜 필요해. 다들 배고파서 먹느라 바쁘지.'
'그렇구나. 배가 안고플 수도 있잖아.'
'그런 게 어딨어. 하루 종일 토끼풀 따고 온 동네 돌아다니고 돼지 먹이고 토끼 먹이고 하면 잘 먹지 말 라그래도 잘 먹지.'
'먹이 주라고 할머니가 시켰어?'
'시키긴 왜 시켜. 당연히 우리 일이니까 하는 거지. 우리 집 동물들 밥은 우리가 챙겨야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바쁘시니까. 공부도 알아서 했지. 할머니는 잘했다는 말 말고는 별로 말씀도 없으셨어.'
이런 엄친아가 내 아빠였다니.
이상하게 맘이 편해졌다.
아빠는 아빠 얘기는 요즘엔 안 통하는 얘기라며 요즘은 참 애들 키우기 힘들겠다고 적당히 잔소리도 하고 또 놔두기도 해 보라는 누구나 다 아는 말로 얘기를 끝냈다.
그런데 그 누구나 아는 말을 마음으로 이해하니 참 다른말처럼 새롭게 느껴졌다.
아빠와의 전화통화로 남은 것은
부지런히 열심히가 다였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마흔 넘은 딸의 뚱딴지같은 질문에 터지는 아빠의 박장대소
아빠의 시원한 웃음소리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부지런함이 뜨거운 나를 확 식혀주었다.
종종 엄마가 아니라 아빠에게 전화해서 질문을 해야겠다.
어린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