짖어봐 조지야
[그림책항해_작은위로] 점점 자라는 아이를 보면서 감사할 때도 많지만, 그와 동시에 불안감도 커진다. 품 안에 자식이란 말이 무색하게 아이는 매일 쑥쑥 자라며 부모가 모르는 자신만의 영역을 만든다. 생각이 자라고 자기주장도 강해지면서 한두 번씩 부모와 자웅을 겨루기도 하는데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때마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에 미치지 못해 불통不通을 넘어 단절이 될까 봐 조급하다. 딱 그 시기에 만난 그림책 <짖어봐 조지야>는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짖어봐 조지야>는 보림에서 출판된 지 무려 20년도 지난 책으로 표지도 20년 전 그대로다. 판형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지금도 구매할 수 있으니 효자상품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영문판으로도 인기가 많다. 영어 교재로도 쓰이는데 재미와 더불어 의성어를 습득할 수 있어서다. 20년 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교육의 측면 외에도 책이 품고 있는 은유와 환유가 통찰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조지는 개다. 엄마는 조지에게 개답게 짖는 법을 가르치는 중이다.
"짖어봐 조지야."
조지는 짖는다.
"야옹."
응? 첫 장면부터 의문이 가득하다. '아닌 개가 야옹이 웬 말이야.' 싶을 때 조지의 엄마는 '야옹'은 고양이가 내는 소리라며 다시 해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우리 조지는 씩씩하게 다시 답한다.
"꽥꽥."
참을 인忍도 삼세번인가. 엄마의 표정은 우리가 이를 악다물며 참을 때와 비슷하다. 엄마는 겨우겨우 화를 참으며, 그건 오리 소리라고 다시 짖어보라고 말한다. 조지는 다시 소리 낸다.
"꿀꿀."
맙소사. 동문서답도 이렇게 여러 번이면 과하다. 엄마는 결국 꾸역꾸역 한 번 더 묻고도 오답을 듣자, 의사에게 조지를 데려간다. 다음 장면은 충격이었다. 의사는 조지 입에 손을 쑤욱 넣고 차례로 동물들을 꺼내놓는다. 모든 동물을 꺼내놓고서야 비로로 "멍멍" 소리를 낸 우리의 주인공 조지. 한 편의 희극을 본 기분이다.
엄마와 조지의 이야기는 매일 우리와 아이가 겪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이 정도는 기본이라며 강요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고 아이는 자꾸 다른 것들이 궁금해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한다. 그때마다 '혹시 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관찰하고 판단하고 점검한다. 그러고는 남들과 다른 점이라도 있으면, 아니 남보다 못하다는 지점이 있다고 판단되면 전문가에게 달려간다.
진짜 의사일 수도 동네 돼지엄마일 수도 학원 선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조지는 언어천재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아이 안에 고양이, 오리, 돼지, 소 같은 동물들의 강점이 두루 담겨 있는 건 아닌가. 남과 다르다는 것,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모습이 티끌만큼이라도 보인다는 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과도 이어져 우리에게 불안이 된다.
조지 입에 손을 넣어 조지가 가진 가능성을 억지로 꺼내버리는 장면은 그냥 보면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뒤집어 다시 생각하면 아이의 보석일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잘라내어 버리는 것이다. 어느 장면 한 군데도 조지에게 왜 그런 소리를 내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아이의 의견은 배제된 채 진행되는 스토리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남긴다. 아이 안에 있는 본질을 역행하는 그것이 불필요하다고 누가 정의 내릴 것인지 반문하게 되는 지점이다.
아이를 믿어준다는 것. 남들과 다른 모습을 비교하지 않고 품고 기다려준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래도 부모니까, 내 아이의 가능성이 무한대라는 사실을 묵직한 입과 엉덩이로 증명해야 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