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나 Apr 11. 2022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오늘도 정주행을 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


윤이나 작가의 스물네 편의 글을 읽으며 이야기를 향한 깊은 애정을 느낀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이 책은 ‘장르 불명 인터랙티브 옴니버스 에세이’라 말했지만, 아무나 그런 말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사실 어떤 글을 쓰느냐는 무엇에 대해 쓰는가 보다 그 무엇에 대해 얼마나 알고 얼마나 사유했는냐가 글의 함량을 가른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지극히 보편의 공감을 동시에 지니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아마도 이런 문장들이 그 설득의 이유인 듯하다.



‘넷플릭스의 <킹덤>이 이야기의 규모와 이미지 표현의 수위에서 자유를 얻었고 <인간수업>이 소재의 범위에서 자유를 얻었다면,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이경미 감독이 자유를 얻었다.’



우리가 ‘아, 소설이 원작인데 드라마로도 나왔구나’ 정도의 표피적인 생각에 머무른다면, 윤 작가는 그 너머의 것들을 한 실로 꿰는 통찰이 있다. 애호란 것은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지’ 싶은 지점이다.



무엇보다 작품들을 향한 깊은 애정과 관심, 꾸준한 덕질을 통해서 갖출 수 있는 그만의 시선은 이야기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가령 홈즈 시리즈 중에서 빅토리아 시대 여성 '홈즈'가 등장하는 <에놀라 홈즈> 편을 통해 소년과 소녀의 서사가 달라지는 이유에 대해 세심하게 풀어내며 이야기를 전하는 부분, <킹덤:아신전>을 통해서는 우리의 차별과 혐오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하게 하는 지점, 다큐멘터리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가족과 병, 그리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묵직하게 묻는 부분들은 작품에 유작가의 세계관이 더해져 우리에게 당도한다.



사실, 이미 그의 프롤로그에 홀딱 빠져 지극히 한쪽으로 쏠리는 후기를 남기게 될 거라 예상했다. 에세이 작가들을 향한 심드렁한 댓글들, 이를테면 ‘그냥 일기’, ‘그래서 어쩌라고’ 같은 댓글을 다는 키보드 워리어들에게 솔직담백하게 자신의 생각을 활자로 박아 낸 부분을 마주하고서다.


현실의 삶은 기승전결이 완벽하지도 않고, 구성이 훌륭하지도 않다.
울퉁불퉁한 구석이 많고, 도저히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는다.
결말이 어떨지는 그 누구도 알수 없다.
심지어 인생 전체를 본다면 지금이 몇 회쯤인지,
시즌으로 나눌 수는 있는지도 모호하다.
삶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사건이 시작하고 끝나는 경계조차도 희미하다.
에세이는 그 세계를 사는 사람이 쓴 이야기다.
픽션은 그 세계를 사는 사람이 만든 이야기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살면서 2020년 늦은여름부터 2022년을 시작하는 겨울까지
내 시간의 일부를 채워준 작품들을 통로로 나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썼다.
내가 고른 작품들에는 여성, 사회적 약자, 창작자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실도 픽션 만큼 뒤를 알 수 없는 세계가 아니던가.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 세계의 주인공이 우리라면 장르가 뭐가 중요하나.



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여러 인물들을 만난다. 그들의 삶과 선택들을 마주하면, 놀랍게도 나의 ‘삶’과 이어지기도 하는 경험을 새롭게 하는데, 바로 이 지점이 윤 작가나 이야기 애호가들이 OTT를 끊을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보는 내내 즐거웠다. 추천.

작가의 이전글 "나는 풀꽃이다" 풀꽃처럼 50년 시인의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