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날이다. <동행> 날이기도 하다. 왼손이 모르게 하고 싶지만 어르신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참고로 <동행>은 성당 빈첸시오회 소속으로 독거 어르신 반찬나눔 봉사단체다. 네 분 어르신 모두 배울 점이 많았지만 특히 두 분이...
(A 어르신)
들어가자마자 봉투 2만원을 꺼내 주셨다. 매달 받기만 해서 어쩌냐고, 미안해서 어쩌냐고 몸을 들썩이셨다. 매달 2만원이라도 보텔 테니 더 어려운 사람에게 쓰란다. "내가 한 달에 29만원 받는데 2만원 밖에 주지 못해 너무 낯간지럽다"며 연신 허리를 굽실대셨다.
할머니 몸은 바람 불면 쓰러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에도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위암수술 후부터 어지럼이 심해 땅에 파고드는 느낌이 자주 있다고 했다. 그런 몸으로 한 번에 세 시간씩 한 달에 열 번을 백화점 전철역 근처에 나가 담배꽁초 등 쓰레기를 줍는다. 월급의 7% 수준을 기부 하면서 미안하고 죄스럽다는 어르신, 오히려 내 얼굴이 화끈거려 혼났다.
(B 어르신)
아흔 넘으신 어르신, 여전히 일을 하셨다. 우리가 방문하던 시간에도 나가려던 참이었다. 어릴 적 월비를 못 내 초등학교 1학년까지만 나왔단다. 아버지는 이름 쓸 줄 알면 그걸로 됐다며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머니 혼자 오빠 둘과 자신을 키우다 입 하나라도 줄이려고 열 아홉 살 때 시집 보냈단다. 자신보다 열 살 더 많은 남편, 얼굴 하나 보고 결혼해 평생 먹여 살리고 올초에 돌아가셨단다.
그녀는 못 배웠어도 아들 둘은 대학 나와 두산그룹 등 번듯한 직장 다닌다며 미소를 띄우셨다. 사진을 가리키며 그아이가 돌일 때 어린 걸 떼어 놓고 선릉에서 포장마차를 했다. 하도 단속이 심해 벽 밑에 세워 둔 리어카도 보이지 않았단다. 신문배달과 우유배달도 했다. 수레를 끌다 넘어져 우유가 모조리 맨홀에 빠진 경우도 있었다.
(좌) 집안 어르신인 아부지가 만드신 동지 팥죽 (우) 방문한 댁 어르신들이 주신 음료
어르신들께 동지 팥죽과 반찬(6찬)을 드렸다. 새벽부터 반찬 만들어 주신 성모회에도 감사하다. 성탄절 기념 선물도 드렸다. 김부각 세트, 대추차, 크리스마스롤케익. 어르신들께는 보다 더 값진 선물을 받았다. 살아오신 인생과 하루하루 사시는 삶. 빛나는 인생 선물. 말씀도 청산유수인데 글씨로 적을 수가 없어 감히 대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어르신들께 한글 가르치기, 그림책 읽고 글쓰기 등 기획안을 나누었다. 2025년 초고령 사회를 맞아 나의 쓰임이 있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동지 날, <동행>에 동행 하며 고령화 생각 '동지'를 만났다. 기쁘다 구주가 벌써 오신 느낌. 그나저나 마음 좋으신 분들은 피부도 좋고 모두 동안이었다. 젊어지는 샘물이자, 심신 치료제는 그저 '봉사'다. 왼손이 다 알아버렸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