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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Sep 15. 2022

시험기간인데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3

첫 번째 시험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내 몸은 잔뜩 각성되어 있었다. 온몸의 세포들이 앞으로 다가올 일을 예상해보기도 하고 걱정하며 불안해하기도 했다. 당장 내일 시험을 치더라도 나는 공부를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시험 전날이 되자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바로 '불안함'이었다. 왜 불안함이 시험 전날에 밀려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까. 이제껏 나라는 사람이 공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왔는지 되짚어본다면(애증관계이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공부와 성적이라는 녀석이 나의 정체성에서 그렇게 쉽게 떨어져 나갈 리가 없을 텐데. 


나는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이대로 아무런 수업자료도 보지 않고 시험을 보러 간다면, 지금부터 시험을 보는 그 순간까지 불안에 떨고 있을게 뻔했다. '아니, 시험기간인데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서요...' 맞다. 공부를 사실했다. 하지만 딱 시험 전날과 시험 당일에만 했다. 각 과목별 공부한 시간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5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불안으로 각성되어있었던 내 몸은 이루어야 할 목표가 생기자 새로운 방향으로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집중이 엄청 잘됐다. 수업 ppt의 글자 하나하나를 눈에 넣으려고 했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평소 시험기간에 내가 하던 일을 짧은 기간에 몰아서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어떤 시각에서 본다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번 시험공부는 평소의 시험공부와는 다르다는 것을. 먼저 시험의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목표는 '시험을 잘 봐서 학점을 잘 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제시간에 시험장에 도착해 할 수 있을 만큼만 시험을 보고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시험장에 학생으로서 존재하는 것. 이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시험을 보기가 두려워 아예 시험장에 가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시험기간을 거치며 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 인생에서 '학교'라는 것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대학생이기도 하지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찍기도 하는 사람이다. 요기(Yogi)이며 채식을 지향하고 다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 모든 '나' 중에서 '학교에서의 모범생 나'는 어마어마하게 커져서 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학교에서의 모범생 나'라는 정체성을 좋아하나? 딱히 그렇진 않다. 오히려 깨부수고 싶은 정체성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그에 따라 그 정체성이 더욱더 커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밟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학교는 그저 학교일뿐이다. 나는 학교에, 교수님께, 학교 공동체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었다. 대학교는 고등학교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교와 고등학교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또 불쑥 올라왔다. 그러나 나는 비장의 카드는 마지막까지 아껴두기로 했다. 이번에도 휴학하거나 자퇴하고 싶은 마음은 최최최최종까지 남겨두기로 했다. 대신, 시험공부를 하지 않은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학교에 큰 기대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학교는 그냥 학교일뿐이지. 학교와 나를 동일시하지 말자.'

'성적에 신경 쓰기보다 출석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학교 밖에서의 내 모습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자.'


사회의 '성공한 사람' 기준에서 본다면 나는 분명 실패자일 것이다. 아니 그냥 보통 사람들의 기준에서 봐도 나는 실패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학교를 출석을 위해 나가다니! 생산적이지 못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런 시기를 거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고 혼란스러운 시기가 찾아오면 먼저 나를 돌봐야 한다. 나에게 질문을 하고 들여다보고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렇게 질문을 해서 나온 대답이 '학교에 큰 비중을 두지 않겠어!'라면 그런 생각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놓아보기로 했다. 학교를, 교수님을, 강의를, 과제를 놓는다. 그렇다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면서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그 이상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 놓은 경험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놓아본 사람과 놓아보지 않은 사람은 다를 것이다. 나는 이번엔 놓는 쪽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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