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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Oct 13. 2022

학교 대신 여행

웰니스 프로그램에서 보고 느낀 것

"웰니스 컬리지? 거기 뭐 사이비 종교 집단 같은 데 아니야?"


"엄마 여기 그런 데 아니야."


"엄마 촉이 딱 왔다. 엄마 촉 무시 못하는 거 알지?"


"어. 근데 여기 진짜 그런 데 아니야. 보건복지부에서 자격증도 나오는 곳이야."


그렇게 엄마와의 실랑이 끝에 결국 엄마를 (완전히) 설득시키지 못하고 찜찜한 기분을 남긴 채 나는 평창으로 향했다. 때는 2022년 10월 13일 목요일. 학교 수업이 6시간 연강으로 있는 가장 바쁜 날이었다. 요 근래 들어 날씨가 좋은 날이기도 했다. 그렇게 날이 좋아서 때가 적절해서 나는 학교에 가는 대신 잠시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그냥 여행은 아니다. 내가 이번에 강원도 평창에 가기로 한 까닭은 그곳이 총 5주차 '웰니스 전문가 양성과정'의 실습지였기 때문이다. 4주간 주말마다 집에 앉아서 9시간씩 웰니스 강의를 듣던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다. 드디어 대면실습이다! (야호!) 실은 이곳 관계자분들께 나는 매우 이상한 사람일테다. 웰니스 전문가가 되는데 딱히 관심도 없으면서 그저 나 힐링하고 쉬자고 학교를 빠지고 오는 대학생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나는 웰니스의 정확한 뜻도 뭔지 모르고 공기 맑고 자연과 함께하는 평창 용평리조트에 쉬러 온 사람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의도면 어떻고 저런 의도면 어떠랴. 나는 이번 웰니스 전문가 실습과정을 '여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진짜 출발하기 전날에는 마치 긴 소풍을 떠나는 아이처럼 마음이 설레고 짐을 싸면서도 내일은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싱글벙글이었다. 내가 줄 친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본다. 그리고 오늘 날짜에 맞춰 수정해서 읽어본다. '오늘 나는 학교를 빼먹었다.' 아, 읽기만 해도 가슴이 짜릿해지고 뭔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학교에서 벗어날 때 이토록 큰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낀다면 학교에서의 내 삶은 어땠던 걸까?


나는 아무래도 학교에 적응하기에는 조금 힘든 사람이지 싶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지만 학교라는 자극 앞에서 내 반응은 속수무책이다. 한 번은 수업 도중에 배가 너무 아프고 어지러워서 필기고 뭐고 뒤로 한 채로 교실을 뛰쳐나온적이 있다. 화장실에 가서 속에 있는 걸 비워내고 축축하게 젖은 이마를 손으로 닦았다. 문득 배가 아픈 게 신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라고 나한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 이대로 계속 지내면 다음은 응급실행일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뒤에 생략되어있는 듯했다. 


'배가 아프면 배가 아픈 거지 뭐. 그걸 왜 그렇게 오버해서 생각해.'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경우에 배가 아픈 건 정말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배아픔'으로 나타난 듯 했다. 그렇다는 게 느껴졌다. 그날 중요한 일정이 있거나(예를 들면 시험이라던지) 할 일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으면(특히 하기 싫은 일들이) 정신적 스트레스가 신체 반응으로 나타나는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그래서 도망치듯이 여행을 왔다. 잠시 숨통을 틜 곳이 필요해서. 이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계속 마주칠 사람들이 아니기에 오히려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오늘 저녁식사때 나눴던 이야기를 소개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순두부찌개를 먹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딱 내 앞에서 순두부찌개가 동떨어졌다. 그래서 다음 순두부찌개가 나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뒷사람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분의 나이는 서른셋이었다. 나보다 10살 많았지만 그렇게 큰 차이로 느껴지진 않았다. 우리는 명상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내가 배가 아파서 교실을 뛰쳐나온 경험을 대화 주제로 꺼냈고,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랑 똑같네요. 그럴 때 배가 아픈 건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라는 거 아시죠?"


"네. 그냥 배가 아픈 것 같진 않더라고요."


"그럴 땐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해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스스로를 속이기도 쉽잖아요."


"그렇죠."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는 그 분의 말을 듣자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사람이 100% 완전무결한 솔직함을 지닐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동안 내 감정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그럴듯한 감정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진 않았을까? 내 몸의 반응을 살피고 그곳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하는 것은 따뜻한 시선과 인내가 필요한데 그건 분명 쉽게 가질 수 있는 자질이 아니다. 가슴을 열고 귀를 열고 고요한 상태에서 자꾸만 들어야 한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해도 내 마음은 지금도 계속해서 뭔가를 말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느껴지는 손가락이 자판에 닿는 감각, 타닥타닥 타자소리, 열어둔 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 후텁지근한 방 안의 공기, 약간 졸리고 피곤한 눈... 이렇게 지금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내 몸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내 마음이 말하는 이야기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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