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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Oct 29. 2022

잘하고 싶은 거예요 그렇게 보이고 싶은 거예요?

2달 만에 본가인 창원에 내려갔다. 시험기간이 끝나면 ‘창원’이라는 두 글자가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이 솟아오르듯이 내 마음속에 두둥실 떠오르곤 한다. 이런, 창원 가야 할 쿨타임이 또 찼다는 뜻이다.


이번 중간고사는 마음을 내려놓고 공부하려고 애썼지만 ‘시험기간인데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글에 쓴 것처럼 쉽게 내려놓기가 되지는 않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왕 공부를 할 거면 좀 더 시험에서 잘하고 싶고 그래서 좋은 점수를 얻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왜 이해가 안 되냐며 짜증도 내고 답답한 마음에 울기도 했다. 완벽주의가 심한 나는 그렇게 한 손에 채찍을 들고 나를 상대로 마음껏 휘둘렀다.


20문제 중에 1문제를 틀리면(이건 객관적인 사실) 맞춘 19개의 문제보다 틀린 1개의 문제에 집중하는 게 나였다(이건 나의 판단). 19개를 맞추기 위해서 새벽 늦게까지 공부하던 나의 노력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나는 왜 1개를 틀렸냐며 나무랐다. 그리고 이런 나의 사고 과정이 건강하진 않을지라도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원래 부정적인 면에 더 집중하니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거니까.


시험지와의 전쟁보다는 스스로와의 전쟁에 가까웠던 중간고사가 끝나고 내려온 창원은 평화로웠다. 다른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 창원에는 엄마가 있었고, 서울에선 늘 들리던 붕붕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며(!) 물들어가는 단풍잎을 관찰할 수 있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창원에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인 ‘문호’도 있었다. 문호는 서점이면서 카페이기도 하지만 문호의 가장 큰 정체성을 꼽자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성장을 돕는 곳. 그곳에는 한때 내게 상담을 해주시던 보경 선생님이 계신다.


오랜만에 내려온 창원에서 문호를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은 어떤 이끌림이 있어서였을까? 문호가 여전히 그곳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알고 싶었고 그 안에서 보경 선생님은 또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704번 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애틋한 마음이 밀려오기도 했다.


8월쯤에 만나고 다시 만난 보경 선생님은 몇 달 만에 만났지만 어색함 없이 나를 반겨주셨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말에 ‘잘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내고는 있어요’라는 어정쩡하지만 사실인 말로 답했다. 학교생활은 어떤지 묻는 말에 자연스레 중간고사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나의 웃지 못할 중간고사 사건을 말씀드렸다.


저는 완벽주의가 심해서 중간고사 기간에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보경 선생님은 어쩐지 통달한 표정으로 내 얼굴 옆쪽을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나도 예전에 완벽주의가 심했어.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쉽게 내가 만든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하고. 근데 최근에 한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보경아, 너는 잘하고 싶은 거니,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거니?”


속으로 둘의 차이가 뭘까 생각해보고 있었다.


“잘하고 싶으면 네가 한 걸 보여주고 피드백받고 고치면 돼. 근데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은 그게 안 된다. 그리고 네 기준에 완벽하다고 생각해서 가져온 것들이 내 기준에선 완벽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냥 해.”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잘하고 싶은 사람보단 그렇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잘하고 싶었다면 애초에 공부하는 것 자체도 조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았을까? 사실 성적이 안 나오면 속상하기만 하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만약 네가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이라면 네가 완벽주의라는 벽으로 너를 가두고 있는 거야. 그냥 하면 되는 건데 나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는 거지. 사람마다 완벽의 기준은 어차피 다 다르니까 나는 네가 즐겁게 그냥 했으면 좋겠어.”


그게 끝이었고 그것이 내 고민에 대한 답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나는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나에게 마음껏 채찍을 휘둘러도 된다고. 근데 내가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그렇게까지 가혹할 필요가 있었을까? 기껏해야 ‘보이기 위한’ 노력인데? 중요한 건 이런 모습도 내 모습이라는 걸 알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채찍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빼기로 했다. 채찍은 잠시 옆에 던져놔도 좋을 것 같다. 그 대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야지. 그들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야지. ‘보이는 나’보다 ‘있는 나’에 더 신경 써야지.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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