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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Dec 18. 2023

베르크손이 말한 직관이란?

실재와의 직접적인 일치와 공감


"All through the history of philosophy time and space have been placed on the same level and treated as things of a kind; the procedure has been to study space, to determine its nature and function, and then to apply to time the conclusions thus reached."

- p.12 -


"Because a Schelling, a Schopenhauer and others have already called upon intuition, because they have more or less set up intuition in opposition to intelligence, one might think that I was using the same method. But of course, their intuition was an immediate search for the eternal! Whereas, on the contrary, for me it was a question, above all, of finding true duration."

- p.33 -


 베르크손은 직관을 통해 실재와의 직접적인 일치와 공감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베르크손이 말한 직관은 칸트의 ‘감성적 직관’도 아니고, 셸링이나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처럼 시간으로부터 빠져나온 직관도 아니다. 이러한 직관에 대한 정의들은 대체로 시간을 공간화 하면서 발생한 잘못된 정의들이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둘 다 감성적 직관의 '형식'으로 간주했다는 점에서, 셸링이나 쇼펜하우어는 진정한 시간을 알지 못하고 이미 지성화 되어서 공간화된 시간으로부터 빠져나가려는 불필요하면서도 불가능한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 모두 시간을 공간화 했다는 오류를 저질렀다.


"There is, however, a fundamental meaning: to think intuitively is to think in duration."

- p.37 -


"The intuition we refer to then bears above all upon internal duration. It grasps a succession which is not juxtaposition, a growth from within, the uninterrupted prolongation of the past into a present which is already blending into the future. It is the direct vision of the mind by the mind,--nothing intervening, no refraction through the prism, one of whose facets is space and another, language. Instead of states contiguous to states, which become words in juxtaposition to words, we have here the indivisible and therefore substantial continuity of the flow of the inner life. Intuition, then, signifies first of all consciousness, but immediate consciousness, a vision which is scarcely distinguishable from the object seen, a knowledge which is contact and even coincidence."

- p.34 -


 그렇다면 베르크손이 말하는 직관이란 무엇인가? 아닌 게 아니라, “직관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지속 속에서 사유하는 것이다.” 첫 문장에서 말했다시피 베르크손의 직관은 “실재와의 직접적인 일치”인데, 그에게 있어서는 지속이 곧 실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속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진정한 운동 그 자체다. 즉, 매순간 시간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들을 창조하기에 우리의 감각이나 지성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운동 그 자체가 지속이자 진정한 실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실재를 인식하는 직관은 무엇보다도 먼저 내적 지속(internal duration)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내적 지속이야말로 단순히 분절된 순간의 합이 아니라, 불가분적이며 끊임없이 흐르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적 지속에 대한 직관은 정신이 정신을 직접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삶의 불가분적이면서도 실체적인 연속성과 일치하는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내적 지속에 대한 직관을 통해 의식 일반, 무의식, 타인의 의식, 생명, 물질까지도 직접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기하학적 정신에 있어서 그 원리는 명확하지만 보통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쪽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면, 원리를 충분히 알 수 있을것이다. 극단적으로 부정확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인간의 눈에서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하리만큼 큰 원리에 대해 그릇된 추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파스칼, 『팡세』, 최현 · 이정림역, 범우사, 11쪽 -


"Intuition will be communicated only by the intelligence. It is more than idea; nevertheless in order to be transmitted, it will have to use ideas as a conveyance. It will prefer, however, to have recourse to the most concrete ideas, but those which still retain an outer fringe of images."

- p.47 -


"If one were constantly to speak an abstract, socalled "scientific" language, one would be giving of mind only its imitation by matter, for abstract ideas have been drawn from the external world and always imply a spatial representation: and yet one would think one had  analyzed mind. Abstract ideas alone would, therefore, in such a case, be inviting us to imagine mind on the model of matter and to think it by transposition, that is, in the exact meaning of the word, by metaphor."

- pp.47-48 -


 그런데 직관으로부터 나온 관념은 우리의 사유 능력 수준과는 별개로 보통 불분명하게 시작한다. 그것은 두 종류의 명확함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성의 명확함과 직관의 명확함이다. 지성적 이해는 새로운 것을 보더라도 기존의 요소들을 그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것만을 추상해내어 재배치하는 과정이기에 비교적 명확하다. 이는 파스칼이 말한 ‘기하학적 정신’과 대응된다. 반면에 직관적 이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창조적인 운동과의 일치를 요구하기 때문에 비교적 어려우며 불분명하게 시작하기 마련이다. 이는 파스칼이 말한 '섬세한 정신'과 대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실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하학적 정신'으로부터 [떠나서] '섬세한 정신'에 호소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성과 직관이 서로 이분법적으로 대립한다고만 볼 수는 없다. 직관을 통해 깨달은 바를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면 지성을 통해 풀어내야 하며, 결국엔 관념에 올라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직관이 파악한 바를 드러낼 경우에는 추상적 관념보다는 은유적인 표현, 즉 매개적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매순간 새로이 창조되는 실재를 기존의 정지된 추상적 관념으로 공간화하여 파악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해서 지성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결국 은유와 매개적 이미지는 지성과 직관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완전한 정의는 이루어진 실재에나 적용되므로, 항상 실현 중인 지속의 실재는 본질적으로 정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 자체 형언 불가능한 직관의 대상을 굳이 표현하자면, 개념보다는 이미지가 더 낫다. 물론 이미지 역시 완벽한 수단은 아니며 어느 하나만 사용될 때는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

- 김혜성. (2019). 베르크손에서 지성과 직관 -이분법을 넘어서-. 인문학연구, 40, 41. -


"따라서 베르크손은 ‘직관 없는 지성’보다 멀리 나아가기 위해 이미지에 호소하는 만큼 ‘지성 없는 직관’을 넘어서기 위해 개념에 의존한다. 이 점을 놓치면 이미지에 대한 그의 강조를 지나치게 과장하게 된다. 실제로 베르크손은 지성의 한계 뿐만 아니라 예술적 직관의 한계도 지적하였다."

- 김혜성. (2019). 베르크손에서 지성과 직관 -이분법을 넘어서-. 인문학연구, 40, 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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