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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inante Oct 12. 2022

시월의 산책


시작 단계에서 자신감을 잃는 게
내게는 순리처럼 느껴진다.
전에 쓴 글이 잘 뽑혀 나왔던 건
아무 상관도 없다.
지난번에 쓴 글은 절대로
다음번 글을 대신 써주지 못한다.

- 존 맥피 <네 번째 원고>



10월의 째 주가 전해주는 을 기록해 둔다. 오늘 발견한 인상 깊은 글귀와 함께. 매일 무심히 지나치는 같은 풍경에도 어제와는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다. 다른 시선과 각도에서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에 피사체는 기다렸다는 듯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따가운 가을볕을 피할 수 있어 즐겨 거닐곤 하는 산책로의 오른편으로 기다랗게 방음벽이 설치되어 있는데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듯 보이는 해묵은 소나무가 듬성듬성 줄을 이루고 서있다. 허술한 터널처럼 보이는 소나무의 행렬이 오늘 달라 보였던 이유는 어딘가에서  날아든 작은 은행잎의 흐린 빛깔 덕분이었다. 잎사귀가 좀 더 활짝 뻗고 화사한 노랑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눈 씻고 찾아보아도 소나무로 빼곡히 둘러싸인 오솔길에서 내가 원하는 샛노란 은행잎을 찾을 수 없었다.


아쉬운 데로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가며 초점거리를 달리하자 작고 빛바랜 잎사귀가 형형색색의 빛깔을 말없이 내게 안내했다. 덕분에 가을의 빛을 기록하며 심심치 않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름을 알 수 없는 붉은 낙엽과 이맘때쯤이면 더욱 빛을 발하는 진홍의 꽃, 덜 여문 초록의 솔방울이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시월의 색이란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가까이 존재함에도 무심결에 지나쳤을 사람들이 있다. 살아오면서 숱하게 지나쳤을 맨드라미가 10월에 가장 진한 빛을 발하고 꽃말 또한 시들지 않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어느 바람결에 날아든 작은 나뭇잎이 내게 말해 주었듯 이웃님의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네 번째 원고는 현재의 고민을 정확히 대변해주고 있다.


무르익어가는 가을 네 번째 원고를 손에 들고 싶어지는 이유는 어휘력의 한계를 절감해서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아는 만큼만 표현이 가능하다. 지난번 글은 절대로 다음을 대신하지 못하고 새로운 어휘를 찾아야 하겠기에 가을엔 카메라 렌즈 대신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존 맥피의 <네 번째 원고> 비롯하여 - 책을 더 자주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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