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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대학, 빨래, 그리고 미지의 서울처럼

by 김연경

따뜻한 콧김이 느껴지는 콧소리, 살짝 꼬부라져 한쪽 눈을 가린 킹받는 앞머리, 쉴 새 없이 혀로 촉촉하게 적시는 앵두 같진 않은 입술. 수년 전 유튜브 속 지하세계를 넘어 지상세계까지 뛰쳐 올라온 피식대학 <B대면 데이트>의 최준이다.


최준은 생김새대로 축축하게, 푹푹 찌는 한국 여름처럼 고온다습하게 내 일상을 휘감았다. 당시 나는 커리어에 1년이 넘는 공백기를 가진, 가진 돈은 거의 다 까먹은 채 가족에게 기생하는 처지였다. 주요 일상은 누워있기. 가족 모두가 잠든 밤이면 옵션이 추가된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누워있기.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은 고사하고, 당장 오늘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던 그때. 피식대학의 알고리즘이 나의 일상에 찾아왔다.


처음에는 불쾌했다. 진.심.으.로. 보다 보니 최준만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비염 때문에 코를 부산스럽게 수시로 만지는 중고차 딜러 차진석, 호시탐탐 내 마음보다는 내 지갑을 노리는 것 같은 다단계 아닌 휴먼네트워크마케팅 회사 직원 방재호, 표현은 허스키한 목소리만큼 거칠지만 마음만은 여리고 순수한 연하남 래퍼 임플란티드 키드, 그리고 메기로 등장한 메기 같은 재벌 3세 이호창까지. 세상에, 이들과 소개팅을 하는 콘셉트라니. 너무나도 불쾌하고 싫었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의 배꼽 냄새 같은 매력에 빠져버린 것이다. 안 봐야지 해놓고 자꾸 영상을 클릭했다. 어느 새부터는 나도 모르게 다음 영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내 마음을 사기 위해(?) 던지는 다정하고 따뜻한 말이 때로는 응원과 위로로 느껴지기도 하면서.


그 기묘한 감정의 공존 속, 내 일상에 변화가 일어났다. 한껏 축 처져 있던 얼굴 근육을 비집고 그야말로 ‘피식’ 웃음이 나곤 하더니, 어느 날은 얼굴 근육이 찢어질 정도로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눈치 보며 하는 집안일 외에는 딱히 할 거 없던 일상이었는데, 그들이 다른 채널에서 라이브 하는 스케줄이 있는 날이면 그걸 기다리며 챙겨보곤 했다. (어느 정도냐면, 아침 7시 라이브까지 챙겨봤다.) 그렇게 피식, 마음의 숨구멍이 트인 걸까? 늘 누워있던 나는 가끔 앉기도 했고, 때로는 두 다리에 힘을 줘 서서 걸었다. 기운을 차리고 다시 구직 활동을 시작했고,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종종 마음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질 때가 있다.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이 캄캄하고, 깨어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저히 혼자의 힘으로는 재기가 불가능할 때, 돌아보면 그때마다 나의 손을 잡고 일으켜준 건 콘텐츠이고, 이야기였다.


6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 집 기둥인 엄마가 흔들리면서 우리 가족 전체가 위태로웠을 때도 그랬다. 기분전환을 위해 엄마를 모시고 뮤지컬 <빨래>를 봤는데, 제목처럼 엄마의 아픔과 고단함이 깨끗이 씻겨나갔다. 거짓말처럼 그날을 기점으로 우리 가족은 다시 단단해질 수 있었다. 엄마의 표현대로라면, 박수 치고 즐기면서 그곳에 온갖 근심 걱정을 다 두고 온 기분이라고.


최근에는 드라마 <미지의 서울>이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남들 다 하는 사회생활, 왜 나는 이렇게 힘들까. 또다시 백수가 된 처지에 맨날 도망치고 회피만 하냐고 스스로 다그치던 때였다. 그런 나를 향해 드라마는 말했다. "암만 모양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려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단순히 도망치고 쉬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사실은 살고 싶었던 내 마음을 돌아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일어났다.


이렇게 콘텐츠와 이야기를 통해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난 것처럼, 나도 고개 숙인 누군가에게 실낱같은 위로와 용기를 건넬 글과 이야기를 쓰고 싶다. 우리 주변의 웃음, 기쁨, 공감을 가지고 옆에 가만히 있어주면서, 희망이 없는 게 아니라 잠시 캄캄해서 안 보일 뿐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답답한 마음에 ‘피식’ 숨구멍을 내주고, 얼룩진 마음을 ‘빨래’해주기도 하면서 ‘미지’의 현실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 그게 바로 내가 브런치에서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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