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이별도 했다 재회도 한 옛날 이야기 소환.
이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잠을 자면서도 아니 꿈을 꾸면서도 생각을 한다.
일단 '아, 이거 꿈이로구나!' 그 다음엔 '근데 뭐 이런 꿈이 다 있지?' '내일 일어나면 이게 다 생각이 날까?' '그러지 말고 어디다 적어놔야 하나?' 등등인데...
그러니 애써 7시간 이상을 침대 위에 누워 있어도, 결과적으론 누더기 같은 잠을 잔다고 밖엔 볼 수 없다.
꿈을 꾸다 중간에 깨기라도 하면 그 뒤론 통 잠들기도 어려워, 수면은 질과 양 모두에서 그냥 꽝인데...
가슴 철렁한(?) 꿈을 꾼 간밤이 그랬다.
꿈에서 나는 남편과 연애 중이었다.
그런데 뭔가의 이유로 우리는 다퉜고, 그 뒤론 연락도 끊겼다.
먼저 토라졌던 건 나다. 사소하지만, 그러나 사람에 따라선 심각할 수도 있는 문제로 나는 마음이 상했고, 그걸 그에게 어필하느라 먼저 쌩하니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부재중 전화가 서너 개쯤은 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열어본 핸드폰엔 아무 알림도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그에게선 연락이 오질 않았는데...
꿈이 이렇다 보니, 언급을 안할 수가 없는 게 과거 우리의 이별 해프닝이다. 어쩌면 실제 우리가 겪었던 그 일이 베이스가 돼, 간밤 꿈을 꾼 건지도 모르겠다.
현실 연애 기간에 우리는 이것과 비스무리하게 다투고 헤어질 뻔한 적이 있다.
연애 초반, 그의 퇴근 무렵에 코엑스에서 만나 영화를 보기로 했던 어느 날이다.
전에도 말했듯, 나는 남편을 만나 모태솔로에서 갓 탈출한 당시 서른 후반의 여자. 나에겐 언제라도 연애에 뛰어들 마음가짐과 몸뚱이는 있었지만, 데이트에 적합한 옷이나 제대로 된 화장품 같은 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다보니 그가 근무 중인 시간엔 나도 집에서 열심히 원고 작업을 하는 것처럼 쇼를 했지만, 실상은 데이트에 입고 나갈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느라 하루 종일 진땀을 빼곤 했다.
벌이가 풍족했더라면 데이트 때마다 옷을 사거나 메이크업을 받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보니 제한된 풀 안에서 이 옷 저 옷을 돌려 입느라 여간 애를 쓴 게 아니다.
그리고 그 날은 샬랄라 풍의 원피스도 몸에 딱 붙는 니트도 다 돌려 입을대로 돌려 입어 바닥이 난 상태. 나름분위기를 바꿔 본답시고, 캐쥬얼한 반바지에 루즈한 셔츠 차림으로 톰보이 스타일을 시도했던 날인데. 착장에 맞춰 살짝 옆으로 돌려 헐렁하게 묶은 헤어스타일은 내 나름의 킥!
그런데 퇴근 직후 영화 시간에 맞춰 헐레벌떡 뛰어온 그는 만나자마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그냥 나왔나봐?"
처음에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그저 멍했다.
"아니 머리도 산발이고, 옷도 좀 편해 보여서."
산발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썼는지 안썼는지는 사실 확실치 않다. 그런데 뉘앙스는 딱 "산발" 였다.
순간 나는 당황, 그리고 이내 섭섭함이 밀려와 찔끔 눈물까지 날 뻔했는데...
"어... 일하다 급히 나오느라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후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영화 대신 그의 말이 맴돌아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갔다.
그러다 영화가 끝날 쯤엔 결국 혼자 이렇게 결론을 냈는데...
'아, 이 남자는 별로 나를 안좋아하는구나.'
결론이 이런데 밥이 넘어갈리 있나. 영화가 끝난 직후 밥을 먹으러 가다말고 나는 결국 먼저 집에 가겠다며, 쌩하니 돌아와버렸다.
그런데 내가 가버리고 없는데도, 그에게선 연락이 오질 않았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영문도 모른 채 홀로 남겨진 그도 꽤나 황당했겠다 싶지만, 당시엔 방귀 뀐 놈이 성 낸다고, 가해자인 그가 피해자인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다 결국엔 또,
'아, 이 남자는 진짜 나를 안좋아하는구나. 이렇게 끝나고 상관이 없다는 거지? 지금?"
내멋대로 생각해버렸는데...
그런데 나는 그렇게 끝낼 수가 없었다. 기적처럼 시작됐던 연애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는 일. 결국 자정이 넘어 내가 먼저 그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뭐가 섭섭했는지를 줄줄이 토로하면 그가 나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할 줄 알았는데,
"... 늦었다. 자고 내일 얘기하자."
'자라고?' '이래놓고 자라고???'
밤을 꼬박 새운 나는 다음 날에도 그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는,
"... 업무 중이라. 퇴근하고 통화하자."
"... 회식 중이야. 끝나고 전화할게."
결국 말 한 마디 제대로 섞어보지 못하고 이별을 당한(?) 나. 홀로 이별 여행을 떠났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선, 상을 차리면 밥을 먹어야 하고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야한다는 게 고역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아무 데나 가자 싶어, 해가 뜨자마자 무작정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는데...
내가 탄 고속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 마지막 휴게소 쯤에서,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여타 그 어떤 말도 없었지만, 이걸 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현웃이 "풉" 터졌다. 나는 사진 한 장으로 그가 나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생각했고, 아니나다를까 곧이어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는데...
"어디야?"
"전주 가려고."
"전주는 왜? 먹방 여행 가?"
실제로 그와 통화 직후 지옥에서 살아돌아온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전주에 도착해 피순대와 초코파이를 맛보며 오랜만에 즐거운 혼여의 시간을 보냈다. 하루 아침에 지옥이 천국이 되고, 출발할 땐 이별 여행지였던 전주가 돌아올 땐 먹방 여행지가 된 셈인데...
이때 이별 해프닝을 겪으며 내가 다시 한 번 결심한 건 <결혼>이다. 이토록 사소한 오해에도 헤어질 수 있는 게 연애라면, 하루빨리 그와 결혼해 헤어질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결혼을 해도 헤어질 이유는 수없이 많겠지만, 최소한 사소한 오해나 엇갈림으론 헤어질 수 없는 게 결혼이니 믿을 건 그것밖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꿈 속에서 그와 연락이 닿질 않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먼저 토라진 건 나지만, 헤어지게 될까봐 먼저 전전긍긍한 것도 나. 심지어 그에게서 연락이 안오는 것도 모자라, 내 핸드폰 속 그의 연락처는 지워지고 없었다. 그리고 핸드폰에 저장해 둔 것만 믿고 머릿 속에 번호를 저장해 두지 않은 나는 그의 핸드폰 번호를 떠올리지 못해, 점점 더 애가 닳고 있었는데...
그러다 번뜩 잠에서 깼다.
가슴이 철렁하고 등에서 땀이 다 날 정도로 핸드폰번호를 되새김질 하다 잠에서 깬 나는 눈을 뜨자마자 고개를 돌려 옆을 봤다.
옆에 누운 남편이 얕은 코를 골며 곤하게 자고 있었다. 그 순간 속으로 나는,
'휴. 이 남자랑 결혼해서 정말 다행이다.'
'꿈에서처럼 핸드폰 번호를 몰라 이 남자를 다시 못볼 일은 없겠지.'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 숨이 나왔다.
그리고 자고 일어난 남편에게 이 꿈 이야기를 했는데,
"이야. 토보이 너 나 되게 좋아하는구나!?”
남편도 내심 뿌듯한 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