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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s Jan 18. 2021

 끌림

 사람이 좋다는 것

요즘 나는 이병률 작가님의 여행 산문집에 푹 빠져 있다.  솔직 담백한 그만의 문체가 편안했고,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끔은 가슴이 메어지는 사랑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도 같아 행복했다.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한 사이이지만 나도 모르게 '병률이 형'이라고 친근하게 불러보고 싶은 충동이 드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병률 작가님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된 건 군대에 있을 때였다. 우리 부대에는 컨테이너 박스 하나에 꾸며놓은 자그마한 도서관이 있었다. 꽤나 좋은 책들이 많아서 군생활의 권태로움을 달래기에는 그만한 공간도 없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종잇장들 중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이 바로 이병률 작가님의 '내 옆에 있는 사람'이었다. 워낙 여행을 좋아했던 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디 한 구석에 엉덩이를 오랫동안 붙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게 그의 여행 산문집은 모래 속 사금 같은 존재였다.


원래 책이란 것은 손도 대지 않았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글을 써봐야겠다며 노트에 이것저것 나름의 감상적인 이야기를 써내리기 시작했. 여행을 다닐 적 추억에 젖어도 보고, 일기처럼 그날 나누었던 말의 흔적을 남겨보기도 하고, 부끄럽지만 학창 시절의 짝사랑 이야기도 짧게나마 적어보았다. 적어놓고 보니 참 혼자서도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을 순서대로 적어 내려가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가 실수처럼 그 길로 접어들었다. 스무 살, 카메라의 묘한 생김새와 암실 이론에 끌려 중고 카메라 Cannon AE-1을 샀고 그 후로 간혹 사진적인 삶을 산다.
사람 속에 있는 것, 그 사람의 냄새를 참지 못하여 자주 먼 길을 떠나며 오래지 않아 돌아와 사람 속에 있다. 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진실이 존재하므로 달라지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

이병률, '끌림'


그의 글들은 여행기의 범주 밖 어딘가에 있다고 느껴진다. 단순히 어딘가에서 무엇을 보고, 견문을 넓히고, 즐겁게 먹고 마시는 그런 표면적인 여행이 아니다. 그 대신 지나가던 골목길에 우연히 마주친 이름 모를 한 연인의 설렘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두는 것, 우연히 들른 이발소에서 맡은 향비누의 추억을 그대로 책장에 옮겨두는 것, 사과밭의 한 할아버지를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기억하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향기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이다. 정이 넘치는 사람인지라 한 편으로는 설레고 다른 한 편으론 쓸쓸하다. 그래서 그의 글은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묻어난다.


사실 요즘은 그런 냄새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당장 옆집에 누가 사는지 이웃끼리 인사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칙칙한 세상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서로를 적으로 몰아서 죽이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생각한다. 어제 이사를 온 이웃이 가져온 떡조차 문전박대하는 것이 한 미덕이 되어버린 지독히도 병든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전역을 하고 읽어보아도 그의 글은 여전히 좋다. 하얗게 눈이 오는 날 어느 연인이 골목길에 몰래 만들어둔 자그마한 눈사람과 마주치는 설렘이다. 그의 글에서는 여전히 사람의 정감 있는 향기를 느낄 수 있어 좋다. 이렇게만 살 수 있었으면 한다.


언젠가 그가 운영한다는 카페에 가보고 싶다. 같이 커피도 한 잔 하고 술도 한 잔 해보고 싶다. 노트와 펜만으로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어떤 이끌림을 자아낼 수 있는 신기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 어쩌면 글로써 만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기도 한다. 오늘도 그저 멀리서 '병률이 형'하고 한 번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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