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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s Jan 23. 2021

Eyes on me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24살, 참 고민이 넘쳐날 나이이다. 지금까지 많은 복에 겨워 살았던 탓인지 남들은 22살에 온다는 일명 '대 2병'이 조금 늦게 찾아왔다. 이 병에 걸려 나타나는 증상을 대략적으로 요약해보자면, 내가 누구인지 의심하는 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옳은 것인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과연 생산적인 것인지, 앞으로 도대체 무엇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 것인지. 무엇 하나 뚜렷하게 정해진 것이 없어 사막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 먹먹해지는 그런 병. 틀에 갇혀 평생을 살아온 사람에게 갑작스레 자유가 주어지면, 그 사람이 평생을 갈구했던 그 자유라는 것은 어느새 눈 앞에 끝이 없는 공허함을 선사한다.


공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주변 사람들에게는 무언가를 개발하는 연구원이 되고 싶다며 말하곤 한다. 성능 좋은 배터리를 개발하는 사람이 되어서 더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어떤 공부를 할 것이며, 어디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겉으로는 모든 길이 정해진 것처럼 말한다.


그럼에도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리도 불안하기에 더더욱 겉으로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의심의 골은 깊어서 술을 한두 잔 하면 자연스레 신세 한탄을 하곤 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이제 와서 이런 질문을 하는 내가 참 답답하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도대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오랜만에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글은 자유의 망망대해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을 두서없이 정리한 나만의 태평양 횡단 지도 비슷한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다 앞에 서면 유독 생각이 깊어지곤 한다

요즘 세상은 참 빨리 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은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상상 속의 물건이었다. 해리포터가 마법을 쓰는 것과 걸어 다니면서 인터넷을 쓰는 것은 거의 같은 취급을 받았던 것 같다. '슬림 판다'라는 2G 슬라이드폰이 최신폰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휴대폰에서 인터넷이 1초 안에 켜지지 않으면 느리다며 한탄을 하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무료 영상통화를 하고 있고, 냉장고가 사람 말을 알아듣게 되었다. 컴퓨터는 바둑계를 완전히 정복했고 이세돌 9단이 거둔 단 한 번의 승리는 인류의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였다. 이어서 컴퓨터는 '스타크래프트'에서 다시 한번 인간에게 승리하며 정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인간보다 정확하고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음을 확인했다.('스타크래프트'는 바둑과는 다르게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알 수 없어 정보의 불확실성이 훨씬 크다.)


'AlphaGo'와 이세돌 9단의 대국, 2016년 3월

그때부터이다. '알파고'의 승리를 계기로 전 세계의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불이 붙었다. 모든 것의 기계화와 자동화.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스마트폰 보급이 이루어진 후 약 10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도대체 10년 뒤의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지난 2020년 10월 7일, 역사적인 K-POP 음원발표되었다. 가수 하연의 'Eyes on you'라는 곡이다. 이 노래는 싱그러운 맑은 날이 어울리는 멜로디와 가수 하연만의 순수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곡이다. 가만히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노래다. 그런데 이 노래는 어쩌면 흥미롭고 또 어떻게 보면 조금은 신선한 충격일 수 있는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EvoM(이봄)'이라는 이 노래의 작곡가가 그 주인공이다.


이봄은 사람이 아니다.


이 노래는 세계 최초로 AI가 제작에 참여해 발표한 K-POP 곡이다. GIST(광주과학기술원)의 안창욱 교수님을 필두로 2016년에 개발된 국내 최초 AI 작곡가 '이봄(EvoM)'은 Evolutionary Music의 앞글자를 따와 이름 지었다고 한다.


'Eyes on you'-하연,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사실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수학 공부를 하는 등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Eyes on you'라는 노래처럼 직접 경험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그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노래를 들어보면 아무리 들어봐도 기계가 작곡했을 것이라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멜로디는 일반 대중음악들과 견주어도 충분히 중독성이 있고,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다. 아직 이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어서 가서 들어보라. AI가 만든 음악에 즐거움을 느끼는 당신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AI 작곡가의 한계도 있다. 사람이 연주하기 쉬운 곡을 작성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아직은 정말 완성도 있는 노래를 완성하기 위해서 인간 작곡가, 가수의 이른바 '피처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멜로디의 신나는 흐름 정도는 자유롭게 만들 수 있으니, AI는 사람의 감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젠 창작의 영역도 더 이상 인공지능이 침범할 수 없는 인간만의 성역이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사람은 논리와 연산에서는 이미 컴퓨터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상상과 창작의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에 지분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그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뭐가 남는가?


바로 감정이다. 직접 무언가를 경험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다. 레몬의 상큼한 맛과 향을 몸소 느끼며 눈을 질끈 감는 것이고, 아침 출근길의 갓 나온 빵 냄새에 이끌려 파리바게트로 발걸음을 돌리는 일이며, 길거리에서 문득 코 끝을 스치는 홍차 향 향수 냄새에서 옛날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며, 술 한 잔의 기분 좋은 어지러움을 즐기는 그런 일이다.


비어가는 술잔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가끔 이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결국 인간의 감각, 감정, 이성 같은 모든 것들이 신경세포와 화학 물질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기는 어떤 전기 신호일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인공지능이 이런 현상들을 잘 학습하기만 하면 인간의 감정조차 묘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웃는 모습과 높은 도파민 수치를 보고 그 사람이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중이라고 판단하는 식이다. 인간의 감각과 이성조차 이런 논리 앞에서 종종 부정당하곤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감정의 인식과 표현이 더 정확해지는 순간이 되면 인간과 기계의 차이가 너무나도 미묘해져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의견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내 몸의 어떠한 화학적 변화에 의해 일어난 감정일지라도 그것을 직접 느끼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AI가 나의 세로토닌 수치를 보고 내가 행복의 감정을 경험하는 중이라 판단할 수는 있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더 발전해 스스로 어떤 경험을 통해 자신 내부의 전기 신호에 변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면 아마도 그 로봇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또는 슬프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로봇이 실제로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로봇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언어적 장난일 뿐이다. 로봇은 그저 자신의 세로토닌 수치가 증가하는 현상을 정확히 감지해 '행복'이라는 인간의 언어를 통해 표현한 것일 뿐, 그 감정을 직접 느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개발한 것은 인공지능이지, '인공영혼'이 아니다. 작곡가는 '이봄'이었지만, 결국 그 노래를 듣고 느끼는 것은 인간 감정의 역할이다.


행복이라는 감정과 이를 감지하는 지능은 엄연히 다르다

람의 감정은 그것과는 다르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몰라도 맛있는 음식에 절로 미소를 짓고, 호르몬의 존재조차 모르던 시절, 에덴동산에서 금지된 열매를 먹고 추방당한 때에도 인간은 부끄러움과 절망느꼈다. 하지만 로봇은 학습이 없으면 그런 감정을 결코 인식조차 할 수가 없다. '세로토닌 수치가 증가하면 행복한 것이다.'라고 가르쳐야만 비로소 그렇게 결괏값을 출력할 수 있게 된다. 태초부터 존재하던 감정과 학습을 통해 얻은 지식은 정말로 다르다.


그러니 우리는 다가오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자신의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몸으로 직접 일하는 방식은 머지않아 사라질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감정은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크고 튼튼한 우주선을 만들어 쏘아 올렸어도 결국 '파피용 호'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행복, 사랑, 슬픔, 연민과 같은 인간의 감정이지 않은가?


고소한 빵 냄새가 좋다

그러니 나는 내 영혼이 하는 말에 귀를 쫑긋 기울이기로 했다. 바깥세상이 아닌 자신에게 눈을 돌려 감정의 변화에 정말로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10년 후에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가끔은 약속이 없어도 집에서 좋아하는 향수를 뿌려보고, 일기장 하나를 책장에서 꺼내보고는 부끄러워하는 일. 아직은 서툰 솜씨이지만 직접 반죽한 빵이 오븐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것을  시간 내내 지켜보며 그 냄새를 맡는 고소한 행복. 더 인간적인 관점의 세상살이. 그렇게 흘러가고 싶다.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나의 작지만 큰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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