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굴포천'이라고 하는 작은 냇물이 흐른다. 하천을 따라 기다란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서 팍팍한 도시 살림에 약간의 초록을 더해줄 수 있는 고마운 물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낮과 밤. 어느 때이든 사람들은 물가를 거닐었다. 어떤 이들은 산책로를 따라 걷고, 달리며, 누군가는 가만히 자리를 잡고 세월을 낚는다. 덕분에 우리 동네는 지친 마음을 털어낼 수 있는 여유로운 동네가 될 수 있었다.
가을
사실 굴포천의 첫인상은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 약 20년 전, 내가 이 동네로 처음 이사 왔을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이 검은 물길은 그저 도시 개발의 이면을 보여주는 냄새마저 고약한 흉물 그 자체였다. 그 당시 동네 아이들은 굴포천을 '똥 강'이라며 혐오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냄새가 너무나도 고약해 그 근처에만 가도 무언가 썩어 문드러진 냄새가 코를 찔러대니 차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갈 때엔 창문을 닫았고, 그 검은 물에 손이라도 닿으면 곧바로 발진이 일어날 것만 같은기분이 들었다.
오염된 물에 사는 물고기들은 그 물의 독성 때문에 등이 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과연 정말 그럴까 궁금할 때 굴포천은 그 꼽추가 된 붕어를 보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과학 실험시간에는 굴포천이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측정하는 실험이 정말 흔한 과제이기도 했으니, 동네 사람들에게 이 썩어빠진 물길이 도시 개발의 그릇된 표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굴포천이 깨끗해질 수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봄
그로부터 약 10년 후 구청에서 하천 정비사업을 시작했다. 어느 날은 굴삭기가 하천 바닥의 썩은 흙을 퍼내기도 했고, 수질정화 식물들이 물길을 따라 줄줄이 우거졌다. 그리고 한강까지 이어지는 무려 8km의 길쭉한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그 무렵 나는 고등학생이었으니, 집과 학원을 바삐 오가느라 굴포천에는 별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산책로에 이전에 없던 변화들이 있었으니 가끔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곳을 걸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그곳의 냄새는 여전히 내 기분을 나쁘게 할 뿐이었다. 환경 정화니 뭐니 하는 말들은 다 겉만 번지르르 한 거짓말, 세금 낭비 같았다. 이 물만큼은 절대로, 정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수년 뒤, 대학을 다니기 위해 잠시 동네를 떠났다.
한동안은 굴포천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그저 걸어 다니는 길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무엇인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런 기대감이 없었으니 어쩌면 보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군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집 앞의 강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물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흐르는 물이 보였다. 이젠 악취가 아닌 그저 물비린내 정도가 느껴졌다. 몇몇 동네 아이들은 신발 끝으로 수면을 툭툭 건드려보기도 한다. 저 멀리 백로인지 왜가리인지 모를 순백의 새 한 마리도 보였다. 어느덧 걷고 싶은 여유의 길이 되어 있었다.
문득 드는 우리 동네는 참 좋은 동네라는 생각. 저 아이들은 아마도 '똥 강'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