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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s Jun 09. 2021

자전거를 도둑맞다

추억을 도둑맞다

지난주 수요일이다. 1층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내 자전거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날이다. 쇠사슬로 굳게 묶어둔 자전거를 누군가 훔쳐갔다.


최근 들어서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학교 일이 바쁘기도 했고, 가까운 거리만을 걸어 다니니 그저 걸어 다니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자전거에는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유독 자전거가 잘 있는지 궁금해 세워두었던 자리에 슬쩍 눈길이 갔다. 그제야 자전거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간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러니. 아쉽지만 보내주기로 한다.


도대체 누가 이 삐걱거리는 고물 자전거를 훔쳐갔다는 말인가!


작년 9월, 당근 마켓에서 녀석을 처음 만났다. 단돈 5만 5천 원에 내 것이 된 자전거. 여름에 비를 많이 맞아서인지 온 몸은 녹슬고 삐걱거렸다. 밤늦게 점검도 제대로 안 하고 산 나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겨우겨우 자전거 방에서 때를 빼고 광을 내니 그나마 탈 수 있는 자전거가 되었다. 수리비가 자전거보다 더 비싸게 나온 것이 참 웃긴 상황이다. 이런 고물 자전거와 함께 부산을 다녀왔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나보고 미쳤다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저걸 타고 부산을 가냐고,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대단하지만 미련하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부산에만 도착하면 이 자전거를 고물상에 팔아치울 것이라 장난 삼아 말하곤 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고물 자전거이니 그 말은 완전한 농담은 아니었다. 부산에 도착에서 실제로 당근 마켓이나 고물상을 찾아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자전거는 미련한 주인을 따라 인천까지 돌아왔고, 서울의 자취방에도 따라왔다. 


그리고 어느 날 사라졌다.


사람은 생명체가 아닌 물건에 정을 주는 특이한 동물이다. 유독 정이 많이 붙어서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 있다. 나에겐 이 자전거가 그랬다.


나름 부산에 같이 가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함께 이룬 친구 같은 놈이었는데, 마지막이 이렇게 허무할 줄은 몰랐다. 참... 아쉽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낼 때부터 언젠간 보내줘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누가 훔쳐갔는지 알고 싶지 않아 CCTV를 찾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참... 아쉽다. 이야기보따리가 하나 사라진 셈이니.


훔친 사람은 그 자전거에 이런 사연이 묻어있다는 것을 모르겠지. 그저 원래 주인이 아쉽지 않게 열심히 타 줬으면 좋겠다. 633km의 흔적이 지워질 만큼 열심히 타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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