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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Feb 25. 2022

아무튼 밥

01.  내 영혼을 위한 콩나물국밥

01. 내 영혼을 위한 콩나물국밥



"죽기 전에 딱 한 가지 음식만 먹을 수 있으면 뭘 먹을 거야?" 


언젠가 친구 C가 장난 삼아 던진 질문에 내 옆에 앉아 있던 H도, S도 고민하느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망설이지 않고 외쳤다. 


"나는 콩나물국밥!"


 콩나물국밥이란 어떤 음식인가. 건어물의 시원함, 새우젓과 오징어의 감칠맛, 청양고추의 매콤함까지 맛의 삼위일체를 자랑하는 완벽한 국물. 그리고 그 국물을 가득 머금고 있는 토렴한 밥. 아삭아삭하게 익은 통통한 콩나물까지.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데 심지어 여기에 계란도 준다. 조미김을 잘게 부수어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담긴 수란 노른자 위에 솔솔 뿌린다. 그리고 봉긋한 노른자를 숟가락으로 톡 깨서 국밥 국물을 세네 숟가락 넣어 잘 섞은 뒤 먹으면 그 짭짭하면서 고소한 맛이란! 중간중간 오징어 젓갈과 무말랭이로 매콤하게 맛을 환기하면 완벽한 맛의 밸런스가 완성된다. 다른 음식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게 만드는, 내게 콩나물국밥이란 그런 음식이다. 


 빨간 국물이 펄펄 끓는 뚝배기에 계란을 무심하게 툭 까 넣어 걸쭉하고 구수하게 먹는 진한 끓이는 식 콩나물국밥. 맑은 국물, 적당한 온도, 계란은 수란으로 따로 주기 때문에 깔끔한 맛을 자랑하는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 콩나물이라는 기본 재료와 국밥이라는 같은 틀 속에서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야누스 같은 매력의 이 콩나물국밥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콩나물국밥을 처음 먹게 된 것은 24살 때인가 돈도 없고 시간도 없던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 한 돈을 쪼개 오랜 친구와 함께 국내 여행을 갔을 때였다. 요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내일로'라는 기차 패스를 팔았었다. 내일로 패스의 유효기간 동안 고속철을 제외한 일반 기차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패스이다. 일반 기차라 이동 시간이 오래 걸려서 고생은 하지만 그만큼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는 청년 맞춤형 패스였다. 우리는 각자 캐리어를 하나씩 들고 부산부터 시작해서 우리만의 청춘 여행을 즐겼다. 그 여행의 두 번째 목적지가 맛의 고장 전주였다. 비빔밥을 필두로 한옥마을의 길거리 음식 등 수많은 먹거리를 자랑하는 전주의 여러 대표 음식 중에서 콩나물국밥은 가장 평범해 보이던 음식이었다. 사실 콩나물국밥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고 나는 늘 집에서 엄마가 끓여주던 콩나물국을 상상했다. 정말 콩나물과 마늘, 파만으로 맛을 내는 가벼운 콩나물국만 먹어 본 나는 콩나물이 무슨 특별한 맛이 있다고 국밥이 그렇게 유명한가?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조금 무더웠던 6월. 전주에 처음 도착해서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선 날, 나의 그런 선입견이 아주 와장창 깨졌다. 전주 콩나물국밥집이라고 하면 단박에 그 이름이 튀어나오는 유명한 맛집에 가려고 스마트폰 지도에 '삼백집'을 넣어 검색했다. 아니 그런데 지도에서 가장 위에 뜬 '삼백집'이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신나는 마음으로 동네 구경을 천천히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우리를 반긴 것은 블로그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삼백집’ 간판이 아니라 색 바랜 파란 바탕에 흰색 궁서체로 ‘삼백집 식당’이라고 쓰여있는 낡은 간판이었다. 


 간판을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평균 이상은 한다는 전라도니까' 하고 용기를 내어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었다. 동네 주민들과 택시 기사 아저씨들로만 가득한 그곳은 유명한 맛집 "삼백집"과는 거리가 먼 허름한 동네 콩나물국밥집인 "삼백집 식당"이었다. 유명한 삼백집은 남부시장식의 깔끔한 국밥을 파는 곳이었으나 우리가 간 그 집은 빨간 양념을 넣어 끓이는 매콤하고 진한 끓이는 식 국밥을 파는 곳이었다. 그 당시 우리야 뭐 콩나물국밥의 키읔자도 모르는 상태였으므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일단 앉아 국밥 2개를 주문했다. 누가 봐도 여행객인 20대 초반 앳된 학생 둘이서 동네 사람들만 오는 기사식당에 온 것이 신기하셨는지 직원 아주머니는 어디서 왔냐고 친절히 말을 걸어주셨다. 그리고는 "학생들 모주는 먹어봤어? 전주 왔으면 모주는 먹고 가야지!" 하시며 정이 반, 판촉이 반씩 들어 있는 멘트를 호탕하게 날리시며 화려한 모주 영업을 펼치셨고 우리는 거기에 홀딱 넘어가 모주도 한 동이 시켰다. 한국의 패스트푸드라고 불리는 국밥답게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식탁에는 용암처럼 끓는 뚝배기가 두 개, 살얼음이 동동 뜬 시원한 모주가 한 동이 그리고 전라도답게 열 개쯤 되는 가짓수를 자랑하는 기본 반찬들이 화려하게 차려졌다. 콩나물국밥 6천 원 모주 한 동이에 4천 원. 이 가격에 이런 상이 가능하다니 최고였다! 


 어설프게나마 직원 아주머니가 가르쳐 주신대로 국밥을 그릇에 덜고 김을 솔솔 뿌려 입에 넣는 순간 '그저 매운 콩나물국 정도겠지'했던 나의 선입견은 와장창 깨어졌다. "와!" 리액션이 약하기로 소문난 내 입에서 정말 순수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 강렬하고 시원한 맛은 그 당시 술이라고는 치킨집에서 가끔 '맥사(맥주+칠성 사이다)'나 먹었던 알코올 초보였던 나조차 '소주를 시키는 맛은 이런 맛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물론 지금은 맥사는 그저 음료수일 뿐인 훌륭한 술쟁이가 되었습니다.)


풍하절이 코 앞에 다가왔던 더운 저녁,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입천장이 홀랑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콩나물국밥에 집중했다. 연거푸 국물을 들이키자 속부터 열기가 올라 시원한 것이 간절해지던 때 살얼음 낀 모주가 눈에 들어왔다. 표주박으로 휘휘 저은 뒤 연한 갈색의 걸쭉한 탁주를 잔에 따라 한 입 들이켰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술을 제일 즐기는 사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친구 W는 얼큰한 국물에 땀 흘리던 차에 입안을 가득 채우는 시원하고 달콤하고 입에 짝짝 붙는 모주의 맛에 "캬~ 이거지 이거야"를 외쳤으나, 나는 한 입을 마시자마자 밀려오는 강렬한 계피 냄새에 조용히 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계피가 싫어요 엉엉. 그러나 계피를 싫어하는 내 개인적인 취향을 차치하고 보면, 칼칼하니 뜨끈한 콩나물국밥에 시원하고 달달한데 계피 맛으로 개운하기까지 한 모주 한 입은 유사 이래 최고의 듀엣이라 할 수 있다. 역시 맛의 고장에서 사랑받는 조합이란! 


 그렇게 강렬한 인상으로 내 삶에 걸어 들어온 콩나물국밥은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일상에 치여 조금 잊혀지는가 싶더니, 몇 년이 지나 3,900원, 4,900원 등의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콩나물국밥 체인점들이 수도권에 광풍처럼 몰아닥쳤을 때 다시 내 인생의 메인 무대를 장악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신입 프리랜서로 사회에 뛰어든 나는 그저 좀 잘 먹고 잘살아보겠다고 '쓰리잡'을 뛰었고 하루에 3탕을 모두 뛰어야 하는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아침은 카페라테 한 잔으로 점심은 카페 샌드위치로 때우면서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오후에 여의도로 출근을 해 저녁 7시 반까지 일을 끝내고 독일어 수업을 하러 광화문으로 이동할 때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이러고 사나'하는 허탈감이 밀려오곤 했다. 


 그런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찰나의 허탈감들이 쌓여 자괴감으로 번질 때, 빠르고 저렴하게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었다는 든든함과 위로를 제공해준 것이 바로 콩나물국밥이었다. 어깨 위에 덕지덕지 붙은 피로와 자괴감을 짊어지고 콩나물국밥 집에 앉아 뜨뜻한 국물과 부드러운 계란을 먹고 있으면 전혀 닮지 않은 맛이었는데도 어쩐지 집밥이 생각났다. 뜨끈한 국물, 콩나물, 계란, 김, 김치, 오징어 젓갈. 모두 식탁에 자주 오르는 소박하고 친근한 재료들이어서 더 그렇기도 했고, 아침밥보다 잠이 좋아서 최대한 침대에서 버티다가 겨우 교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서는 나에게 엄마가 한 술이라도 뜨고 가라고 국에 밥을 말아 내밀곤 했던 고등학생 때의 아침 풍경이 생각나서 그렇기도 했다.


그렇게 콩나물국밥은 내 최후의 보루 같은 음식이 되었다.  술 먹을 때, 술 먹고 나서, 슬플 때, 서러울 때, 허탈할 때, 몸이 으슬으슬 추울 때, 감기에 걸렸을 때, 그냥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늘 콩나물국밥집으로 달려가 그 뜨겁고 든든한 것을 밀어 넣어 내 빈 속을 채웠다. 그것은 위장을 채우기 위한 행위였으나 사실은 아니었다. 내 마음속 텅 빈 무언가도 같이 채웠다. 그렇게 콩나물국밥은 ‘내 영혼을 위한 콩나물국밥’이 되었다.


사람들이 ‘소울 푸드’라고 부르는 음식들이 있다. 서양권에서는 몸이 안 좋거나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먹는 닭고기 수프 같은 음식들이 대표적인데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제목의 책도 있는 걸 보면 닭고기 수프에 진심인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은 왜 음식으로 위장의 허기가 아닌 영혼의 허기를 달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미식이 쾌락을 주는 행위인 동시에 정서적인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입맛이라는 것은 추억을 먹고 자란다. 단순히 '맛있다, 맛없다, 좋아한다, 싫어한다'의 문제를 떠나 그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 같이 먹은 사람들, 장소, 분위기, 사건 등등 여러 요소들이 누군가의 입맛을 결정해 나간다.


 "아 역시 맛있다. 입맛 없을 때는 고추장찌개가 제일이야 진짜."라든지 "엄마 김치가 최고지" 또는 "친구들이랑 없는 돈 쪼개서 먹던 학교 앞 떡볶이가 생각나"라든가 "스트레스받을 때는 다디단 카페 모카에 휘핑크림 잔뜩 올려서 먹어야지"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음식과 함께 정서적 지지를 받았던 기억들을 무의식 중에 떠올리고 그 음식들을 맛보면서 만족을 얻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쌓아 올린 취향이 자기에게만은 가장 옳은 것임을 재확신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도 내 마음에 공감해줄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나 인간 또는 인생에 허탈감이 밀려올 때, 아주 작디작은 자기 확신이라도 간절해질 때, 추억이 있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나선다. 바로 이런 자기 확신과 정서적 지지를 위해 사람에게는 오밀조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꾸린 온전한 한 끼를 즐기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천천히 좋아하는 것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식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나에 관한 나 스스로와의 대화이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스스로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즉각적인 방법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것들이 너에게만은 절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가는 자기 확신의 시간이다. 나에게는 콩나물국밥을 먹는 시간이 그랬다.


 콩나물국밥이 내 소울 푸드인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단 한 가지도 들어있지 않으니까. 매일매일 먹을 수 있는 일상적인 재료들이 내가 좋아하는 형태로 표현되어 있으니까. 어디서나 쉽고 싸게 먹을 수 있으니까. 만약 닭고기 수프나 굴라시 수프가 소울 푸드였다고 생각해보라. 물론 좋아하는 음식들이기는 하지만 사 먹으려고 치면 파는 곳이 많지 않아 부러 멀리 찾아가야 한다. 또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인 경우도 많아 쉽게 먹을 수 없어 위로가 필요한 그 순간에 짜증이나 서러움이 올라오겠지. 그래도 먹고 싶어서 재료를 사다가 손질해서 끓이다 보면 아마 치유받고 싶은 기분은 물러가고 지친 육체만 남게 될 것이 뻔하다. 물론 재료를 손질하고 오래오래 스튜 같은 것을 끓여 먹는 행위도 좋아하지만, 당장 배고파서 입에 뭐든 집어넣고 싶은데 칼질하고 있다 보면 손만 떨리고 성질만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동네에 맛있는 콩나물국밥집만 잘 알아두면 그저 앉아서 “사장님 콩나물국밥 하나요!” 만 외치면 7-8천 원에 빠르고 푸짐하고 행복하게 위장과 영혼의 허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다. 가격 대비 완전 노나는 장사가 아닌가.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내가 좋아하는 콩나물국밥집 하나가 문을 닫았다. 그 집이 사라진 것을 알고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제발 우리 동네 현대옥만큼은 망하지 않고 살아남아 오래오래 나와 함께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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