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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Jun 24. 2022

아무튼 밥

03.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이온데

03.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이온데


 우리 집은 과수원이다. 진짜 과수원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만큼 과일이 많다는 것이다. 당뇨가 있으셔서 거의 30년 가까이 철저히 식단 관리를 해오시는 엄마가 딱 한 가지 못 끊으시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과일이다. 아삭아삭 달콤한 사과, 입안 가득 시원하게 과즙이 퍼지는 배, 앉아서 까먹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귤, 여름에서 이제는 겨울의 상징이 된 새콤한 딸기같이 기본적인 과일은 물론이고 망고, 멜론, 파인애플, 리치, 망고스틴, 용과 등의 이국적인 과일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늘 집에 상비되어있다. 그중에서도 우리 엄마의 영원한 1등 과일은 가을에만 맛볼 수 있는 단감이다. 엄마의 취향은 존중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엄마가 왜 그렇게까지 단감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씹자마자 과즙이 팡팡 터지는 상큼한 오렌지나 귤도 아니고, 아삭하고 달콤한 사과도 아니고, 화려한 맛의 망고도 아니고. 내게 감은 그저 적당히 달고 적당히 사각거리는 적당한 과일일 뿐인데 말이다. 


 그러나 이 단감이 추위를 맞아 제 속살을 얼리고 터트리면 적당한 과일에서 곧 황홀한 과일로 변모한다. 홍시가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홍시는 정말 독특한 과일이다. 대부분의 과일은 과육을 먹거나 아니면 코코넛처럼 안에 있는 과즙을 마시는 형태인데 홍시는 과육도 아니고 과즙도 아닌 그 중간 형태로 먹는다. (언젠가 홍시 관련 내용에 홍시는 단감의 세포벽이 녹아 터져서 되는 것이라는 댓글을 단 이과생의 만행을 본 뒤부터 홍시가 조금 달리 보이긴 한다… 이과생들이란…) 


 홍시는 그대로 먹어도 맛있고, 얼려서 샤베트나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 먹으면 색다른 후식이 된다. 얼린 홍시도 좋지만 나는 잘 익은 홍시를 들고 조심조심 얇게 껍질을 벗긴 뒤 입에 가득 차게 한입 베어 물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젤리처럼 몰캉몰캉 씹히는 씨 부분을 먹을 때면 괜히 배시시 미소가 지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수많은 과일이 존재하지만 이렇게 즉각적이고 확실하게 네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과일은 홍시가 유일하다. 


<뉴질랜드는 대봉이 싸서 철이 되면 잔뜩 사다가 연시로 만들어 먹곤 했다. 잘 익을 때까지 설레면서 기다리는 기억이 감을 더 맛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홍시는 사실 연시가 대부분인데, 연시는 수확 후 인위적으로 후숙시키는 것이고 홍시는 수확하지 않고 가지에서 자연적으로 후숙시키는 것이다. 보통 농가에서는 감을 빠르게 후숙시키기 위해 즉 연시로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하는데, 그때 사용하는 가스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밝혀져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런 유해성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홍시가 연시보다 맛이 훨씬 더 좋다. 그러나 수확하지 않고 나무에 그대로 두면 새나 벌레, 악천후로 인해 피해 위험이 커 농가들 입장에서는 홍시보다는 연시를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10~11월에 수확한 감을 광주리에 한 아름 담아 윗목 같은 찬바람이 들어오는 곳에 놓아두곤 했다. 바구니에 또로로 둘러앉은 감들은 겨우내 찬바람을 맞아가면서 연시가 된다. 이때 연시를 만드는 감은 보통 잘 익어 이미 단맛이 나는 감이 아니라 떫은맛이 나는 땡감이다. 사실 어릴 적 시골 이모 댁에서 바구니에 다소곳이 담겨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감의 주황빛이 너무 탐스러워 아직 연시가 되려면 한참 먼 대봉감을 몰래 먹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 내가 먹어봐서 아는데 홍시나 연시가 되기 전 땡감은 정말 떫다. 어찌나 떫은지 혀가 아릿할 정도였다. 한 입 베어 물어 입에 넣자마자 표정이 일그러지고 혀를 내리누르는 기분 나쁜 맛에 입을 제대로 다물지도 못한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아는 홍시 맛과 다를 바 없겠지 하며 몰래 먹었던 초등학생은 그날 아주 인생의 떫은맛을 봤다. 그런 떫은 감들이 동장군을 만나 제 살을 얼리고 터트리며 한바탕 추위를 견디어 내면 기분 나쁘게 내리누르는 떫은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개운하고 깊은 단맛만 남는다.


 떫은맛은 일시적으로 혀에 있는 부드럽고 끈끈한 막이 오그라들면서 느껴지는 느낌으로 삽미(澁味)라고도 한다. 간단히 말하면 혀가 마비되는 느낌으로 맛이 아니라 감각의 일종이다. 음식에서 이 떫은맛을 주로 내는 성분에는 타닌이 있는데, 포도 껍질에 많아서 포도를 숙성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풍미를 내어 와인의 맛을 묵직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낸다.  재밌는 것은 이 타닌이 소금과 만나면 단맛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 과학적인 사실을 하나도 몰랐을 시절부터 지혜롭게 떫은 감을 소금에 절여 먹곤 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다시 우리 엄마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날 때부터 몸이 약해 어릴 적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었다. 입도 짧아 삐쩍 말랐었는데 늦여름에는 더위를 먹기도 하고 몸도 지쳐 더 먹지 않곤 하셨다. 그런 엄마를 조금이라도 더 먹이시려고 외할아버지가 손수 마당 감나무에서 익기에는 아직 먼 푸른 감을 따서 껍질을 벗기고 소금에 절여 엄마에게 간식으로 주시곤 하셨다. 엄마가 단감을 제일 좋아하시는 이유는 아마도 이 추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생을 맛으로 표현한다면, 내 인생에는 유독 떫은맛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크고 작은 떫은맛들이 줄을 이었는데, 조숙할 수밖에 없던 환경에서 자랐던 터라 일찍부터 또래는 하지 않을 걱정과 불안을 짊어지고 구역구역 살아내곤 했다. 그렇게 20대 중반이었던 2013년 11월 1일 오전 10시 45분, 나는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떫은맛을 맞이하게 된다. 평소와 다름없던 오전 시간이 악몽으로 변했다. 나는 손을 벌벌 떨면서 집 전화를 집어 들었다. 아직도 그날의 서늘한 공기, 언니를 들쳐멨던 아빠의 모습, 전화기에 1과 9 버튼이 어디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더듬거렸던 내 손가락,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이 안 나 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신고내용을 더듬거리며 한참을 말하던 내 모습, 실제로는 5-10분이었지만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의 억겁 같았던 시간이 생생하다. 그 날 내 언니는 30대 초반에 평생 짊어져야 할 장애를 가지게 됐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이제는 본인이 잘 적응해 알아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도로 위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는 119구급차를 보면 침대 하나에 사람 두셋이 겨우 앉는 작은 공간에 앉아 언니의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나 가슴이 철렁하곤 한다.


  인생에서 어떤 부분을 도려낼 수 있다고, 없는 일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때를 고를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 당시에도 그런 일은 불가능했기에 우리 가족은 그저 그 시간을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인생이 아리도록 떫었고 시리도록 서러웠다. 인생을 조각으로 나눈다면 그 시절의 조각은 온통 떫은맛만 나는 새파란 땡감 같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조각을 뚝 떼어다 아프게 박힌 두꺼운 껍질을 깎아 정성껏 소금에 절여 달콤하게 만들어 줄 외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으므로, 나와 우리 가족은 그저 찬바람을 다 맞고 거기 서서 버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달아지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바구니 속 감처럼 둥글게 앉아 서로의 어깨를 맞닿고 구역구역 찬바람을 맞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 떫은맛에 마음이 마비된 채로 지옥 같은 시간을 버텼다. 


 그때 가장 많이 했던 생각 중의 하나는 "왜 하필 우리야? 나는 이런 일이 없어도 충분히 남들보다 힘든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였던 것 같다.  물론 모두가 다 다른 천성과 환경을 타고났기 때문에 모두 각자 겪는 일이 가장 힘든 법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 고난과 힘듦의 정도가 남들보다 더 무거운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사람이 싫었다. 세상이 싫었다. 모든 게 다 너무 지긋지긋했다. 자려고 누워서 이대로 눈 감고 잠이 든 채로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그렇게 무작정 견디고 견뎌서 지난 줄도 모르게 긴 겨울이 다 지났을 때, 나는 웬만한 것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더 잘 공감하게 되었다.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알게 되었다. 구역구역 살아가는 인생도 어쨌든 살만한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혹한의 찬바람이 내 속의 여린 것들을 하나하나 터트려 눅진한 단맛이 나게 만들었다. 떫은 인생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은 혀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는 미풍 같은 설탕이 아니라 찬바람과 소금 같은 것들임을 그때 알았다.


  인생의 시간은 결국 지구의 시간과 같아서 겨울은 언제나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그 혹한의 추위도 언젠가는 다시 찾아오겠지. 첫 번째 한파에서는 그 시간을 견디면 무엇이 오는지 알 수 없어 괴로웠지만, 이제는 안다. 그 후에 어떤 것이 올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홍시처럼, 약해지고 물러져도 버티다 보면 언젠가 달콤한 맛이 나겠지. 입에 넣은 순간, 떫고 아린 맛은 모두 사라지고 깊은 단맛만 남겠지.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겠지 하는 것들을. 그래서 인생을 내리누르는 무게가 너무 무거울 때 나는 홍시를 생각한다. 그 빨갛고 탐스러운, 입안 가득 부드럽고 달콤한 나의 인생을 생각한다. 



*이 글은 제2회 오뚜기 푸드 에세이 수상작입니다.

물론 입상만 했고, 오뚜기 홈페이지에는 게재되지 않았다는 후문이... 

제출작은 글자 수 제한이 있어 많은 부분을 처내고 다듬어 보내서 이 글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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