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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Sep 16. 2023

분노의 이유를 헤아리며

헤아린 끝에 조금 이상한 결론에 다다랐어요

최근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 한동안 화병이라도 걸린 듯 가슴께가 묵직했다. 내 언행이 점점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친한 동료를 붙잡고서 어린아이 같은 하소연을 퍼붓기도 했다.


그것이 좋아 보이지 않으리란 걸 알기에 퇴근 후 하루를 되돌아보며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반성의 시간이 부질없게도, 마음과 태도가 도로 삐딱해졌다. 원래대로 돌아올 기미 없이 오래 지속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 나를 그리도 뜨겁게 불태우던 분노가 조금 사그라졌다. 뒤끝이 긴 인간이라 완전히는 아니다. 그래도 전보다 훨씬 상태가 나아졌다.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무작정 들판을 걷는 관습이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지칠 때까지 걷는다. 그리고 화가 풀린 지점에 지팡이로 표시를 하고, 걸어온 거리를 돌아보며 분노의 이유를 헤아린다고 한다.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 분노는 공멸이다.


대학생인 시절 이 문구를 접했다. SNS에서 떠돌아다니는 이미지로부터였다. 인상 깊었기에 핸드폰 갤러리에 저장해 두었고, 이번 일을 겪으면서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그들의 관습이 좋아 보여서 따라 했다. 비록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대신 늘 다니는 동네 길거리를 눈에 담을 뿐이고, 지칠 때까지 걷기보다 이미 지친 상태에서 터덜터덜 걷긴 했어도. 하여간 시간이 될 때마다 분노의 이유를 헤아리고 또 헤아렸다.


헤아리는 방식은 아래와 같다. 자문자답이다.


인터뷰어 : 왜 그렇게 화났나.

인터뷰이 (나) : 왜긴 왜야! A 때문이지.


인터뷰어 : A의 어떤 요소가 그리도 빡쳤는가.

인터뷰이 (나) : 물어 뭐 해! 그것도 빡치고, 저것도 빡치고. 아, 저번에 그 일도 빡치고!


인터뷰어 : 그 요소들로 인해 당신이 피해 입었는가?

인터뷰이 (나) : 당연하지!


인터뷰어 : 뭘 얼마나 입었는데? 구체적으로 몇 번이나? 그리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피해 입은 기간은 어떻게 되는데? 피해 규모는 어떻게 되고?

인터뷰이 (나) : 수치로 대려니 어렵네. 그러니까 우선 마음고생을 좀 했고... 혼란스러웠으며... 그리고....


인터뷰어 : 당신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또는 용납할 수는 없는 영억이었나?

인터뷰이 (나) : 아니, 절대까지는 아니지만....


인터뷰어 : 사람이 좀 너그러워질 수는 없는가?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건데.

인터뷰이 (나) : ....


인터뷰어 : 그나저나 나이가 어떻게 되지?

인터뷰이 (나) : ...먹을 대로 먹었는데요.


너무 헤아렸기 때문일까. 어느 순간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 참고로 인터뷰어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이성적인 인물로 설정해 두었다.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정장 복장의 인터뷰어가 감정을 배제한 여러 질문을 내게 던진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초반에만 호기롭게 답할 수 있었다. 뒤로 갈수록 나는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그래, 그렇게 빡칠 일은 아니었던 거 같아.’


결국 어느 날,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그날은 밤이었고, 내가 서 있는 거리는 평화로웠고, 여름의 열기가 더는 담겨있지 않은 바람이 등 뒤에서 쉴 새 없이 불고 있었다. 서늘하기까지 하는 바람이었다. 어쩐지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어 나를 깨우려는 듯했다. 그렇게 내 분노는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이 결론을 친구, 문에게 전했다.


“모르겠더라고. 그동안 왜 그렇게 화가 났나 싶어.”

“갑자기?”

“응, 갑자기.”

“그럼 더 화가 안 나는 거야?”

“응, 아마도. 내가 너그럽지 못했던 거 같아.”


나는 무슨 일이 있으면 문에게 통화를 걸어 털어놓곤 했다. 그래서 그녀는 분통에 찬 내 지난 시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문은 의아한 투로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근데 그 일은 누구라도 화낼 만한 일 아니야?”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

“그래도 기분 나쁘잖아.”

“내 나이가 이제 (곧이곧대로 기분 나쁜 티 내도 되는) 그 나이는 아니잖아.”

“(너랑 동갑인) 나로서도 좀 그렇던데, 그 일.”

“....”


뭐, 아무튼 괜찮아졌다니 다행이네. 문은 이런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통화를 끊고 나서 다시 생각에 잠겼다. 문이 내 넘쳐나는 분노에 공감해준 것 만으로 그날 밤에 내렸던 결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기로 했다.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다. 그건 다시 생각해봐도 맞다. 그런데 감정이 어떻게 늘 이성적일 수 있나. 감정의 대표적인 산물이라 할 수 있는 눈물과 웃음. 그것들은 늘 적절한 순간에 튀어나왔던가. 아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나와 정반대 타입인 인터뷰어를 떠올리면서까지 이유를 헤아리려 든 것은 이 분노가 실은 합당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죄책감이 들었던 것도 같다. 내가 뭐라이래, 라면서.


그런데 통화 이후 제대로 된 이유가 있든 없든 무엇이 대수겠냐 싶어졌다. 나이 먹을 대로 먹었어도다. 나는 명백히 A에 대해 짜증났고 열 받았다.


‘역시 그 일은 화가 날 만했어. 왜냐하면 화났으니까....


(언제 또 바뀔지 모르겠다만) 결론을 번복하고 말았다.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 분노는 공멸이라 했던가. 지금은 그거면 되지 않을까 싶다. 꼭 성찰로 이어질 필요도 없고, 그저 의미 없이 사라질 뿐이어도 상관없다. 감정이란 원래 제멋대로고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면 될 일이다.


어째 생산성 없는, 좀 이상한 결론에 다다랐지만 어쨌든 친구의 말대로 다행이다. 지금은 괜찮아졌으니. 별로 화가 안 난다. 아무래도 시간 가장 큰 약 같다. 어찌어찌 잠잠해졌다.


...근데 정말 잠잠해진 게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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