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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민 Jul 04. 2022

밴드명 변천사

‘비가 내리는 바다’에서 시작된 밴드명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10년 전 과거 ‘글루미블루’ 이야기가 나와서 오랜만에 생각 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TMI 비하인드 스토리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상의날개 활동 전의 프로젝트 팀명은 Detuned Radio 였다.


2005년~2006년 즈음 태봉이와 2인조로 했었는데 둘 다 90년대부터 Radiohead를 엄청 좋아했고 앞으로는 이제 그런 음악을 해보자고, Radiohead도 Talking Heads 밴드의 곡명에서 따온 팀명이니 우리도 Radiohead의 곡명에서 팀명을 따자고 해서 먼저 ‘Karma Police’로 정했었다.


당시 ‘밀림(Millim)’이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음악인들이 모여있는 사이트가 있었다. 음악을 몇 곡 올렸더니 연락이 와 거기에서 지원받아 싱글을 낸 적이 있는데 그때 Karma Police 라고 팀명을 딱 한 번 쓰고는 아무래도 너무 상징적인 곡명이니 부담스러워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Karma Police 곡에 있는 가사 중 인상적인 단어였던 ‘Detuned Radio’로 바꾸고는 4곡이 담긴 디지털 EP를 한 번 발매했다. (4곡 중 3곡은 이상의날개 이름으로 다시 발매.)


그런데 사실 그 Detuned Radio 프로젝트 팀을 하기 전에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짧게 활동했던 밴드 이름이 바로 G.LUE(글루) 였는데 그게 바로 이 ‘비가 내리는 바다’에서 출발한 밴드명이다. (한참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동명의 밴드가 있었더라.) 처음엔 Gloomy Sky and Blue Sea를 줄여서 만들었는데 나중엔 이게 Gloomy Blue가 되었고 글루미블루를 줄여서 ‘글루’라고 불렀다. 그리고 동명의 곡도 만들었다. (별로 마음에 드는 곡은 아니지만.)


밴드명 G.LUE 로 활동하며 홍대 앞 여기저기 오디션을 많이 보러 다녔고 작은 공연들도 종종 했었다. 오디션은 매번 떨어졌고, 실제로 허접하고 창피했던 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밴드 시절, 기억에 남는 순간은 동대문 두타 앞 야외무대에서 했던 ‘메탈리카 트리뷰트 공연’과 홍대 앞 클럽 ‘재머스’에서 했던 마지막 공연인데, 공교롭게도 마지막 공연의 마지막 곡이 ‘끝’이었다. 그렇게 2003년에 해체한 후 나는 이상의날개 밴드를 다시 시작하기까지 긴 음악 공부의 길로 접어들었다. (솔직히 다시는 밴드 생활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고 그래서 ‘프로젝트’ 팀으로만 곡 작업을 잠시 했던 것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정신 차리고 보니 세월이 이만큼 흘러 나는 이상의날개 밴드 활동을 하고 있고 그 허접하고 창피하던 시간을 지나 작은 성과도 몇 개 내었다. 그때는 지금 이런 음악을 하고 있을지는 물론 밴드 생활을 다시 할지 상상조차 못 했지만. (허접한 시절 탑밴드 시즌2에 나가 Karma Police을 괜히 또 뭐하러 불러서 창피를 당하고 쪽팔림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래도 그 덕에 한걸음 더 성장했다.)


그 당시 알고 지냈던 또래 뮤지션들이 다들 성과를 내며, 앨범도 내고, 핫뮤직에서 인터뷰도 하고, 홍대 앞에서 인기도 끌고 할 때 나는 늘 초라했고,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허접한 초보 락키즈 같아 늘 괴로웠다. 그래서 사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음악의 삶을 찾아가려고 밴드를 그만둔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여태껏 하고 있다.


가늘고 긴 음악인의 삶인 듯 하지만 그냥 오래 버티고, 견디는 것도 나의 재능의 일부이고 이것 또한 하나의 성과라는 생각으로 이렇게 저렇게 여태 해보고 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늘 이야기한다. 느려도, 정말 너무 느려도 그냥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그러다 보면 가끔씩 의미 있는 발자국들을 남기게 되므로. 느리면 어떤가. 목표를 갖고 꾸준히 걷다 보니 일단 여기까지 왔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제자들이나 후배들에게 조언할 때도 제일 강조하는 것들이고.


오랜만에 ‘글루미블루’를 보니 갑작스레 잊혔던 20여 년 전 옛 생각이 났다. 쓰다 보니 또 무지 길어졌다. 어차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TMI의 긴 글은 대부분은 패스할 것이고, 읽는 사람만 읽을 것이니 상관없지 뭐.


한 줄 요약.


“밴드명 변천사: G.LUE(Gloomy Blue) -> Karma Police -> Detuned Radio -> 이상의날개”


ps. 밴드명을 쉽게 읽히고 기억에도 잘 남는 한글로 짓게 된 주요한 계기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바로 직전의 팀명 Detuned Radio 때문이기도 하다. 발음을 어떻게 하는 거냐, 스펠링은 어떻게 되느냐, 무슨 뜻이냐. 매번 이런 질문을 받는 데다가 대부분 사람들이 좀처럼 기억을 하지 못하고 볼 때마다 물어봤다. 그래서 무조건 다음 밴드명은 한글로 기억하기 쉽게 읽기도 쉽게 하고자 했는데 어찌 보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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