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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민 Sep 19. 2022

시간이 오래 지난 제자들의 흔적


옛 학교 자료들을 정리하다 시간이 오래 지난 친근한 자료들을 발견했다.


클래스 수업을 하던 시절에는 학생들이 많으니 초기에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 학생들을 더 잘 알고 싶던 마음에 시작했던 것들. 아마도 내 클래스 수업을 들었던 제자 친구들은 다 한 번씩은 써봤을 것들.


그때 우스갯소리처럼 나중에 너희들 유명해지고 잘 되면 내가 이거 잘 보관해두었다가 너희들이 이런 어린 시절이 있었다고 알려주겠다고 했었는데. 길게 쓰고 싶으면 길게 쓰고, 짧게 쓰고 싶으면 짧게 쓰고, 안 쓰고 싶으면 안 써도 된다고 했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고 얘기도 했었는데.


지나고 나니 오히려 나에게 모두 추억이 되었다.


특히 인연과 정이 더 깊었던 친구들, 늘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이쁘고 멋지고 아름다웠던 친구들은 학기가 끝나도 이런 흔적들을 버릴 수가 없어서 내내 잘 보관하고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이제 인연이 닿지 않고, 어떤 친구들은 아직도 이렇게 (감사하게도) 인연이 닿고 있는데. 어느덧 그 꼬맹이 친구들이 20대 후반, 30대가 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음악인으로 또 사회인으로 멋지게 성장해서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름 큰 보람을 느낀다. (그만큼 내가 더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조금 슬프지만.)



당시 학생들은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만나는 레슨, 클래스 학생들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음악도 다 들어보고 싶어서 기말곡 평가 방식을 바꾸자고 학교에 건의했던 기억이 난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음악을 들어야 했지만, 학생들은 평가받는 자리에서 괜히 불편했겠지만, 다양한 학생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나와 직접적인 연이 닿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곡과 학생들도 찾아볼 수 있었고.


학교에서 쓰던 ‘기말 제출곡 설명서’ 양식도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며 새삼 느낀 점인데, 푸릇푸릇하고 초롱초롱한 젊고 멋진 친구들과의 만남과 인연을 여전히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함을 느낀다. 음악 생활을 하며 만나는 팬 분들도 친구처럼 너무 반갑고 감사한데, 우리 제자들도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또 이어져서, 이렇게 친구처럼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한다.


가끔은 다 내려놓고, 그만두고 귀촌해서 조금 벌고 조금 쓰며 간간이 내 음악 창작 생활만 하며 사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러면 푸릇푸릇한 어린 새싹 친구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아직 내려놓지 못했다. 타의로 내려놓게 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이제는 자기소개서도, 과제도 쓰지 않지만, 이 학교도 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행히도 또 다른 곳에서 매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언젠가는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날이 오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열심히 내 것을 다 빼서 내어줘야지.


오늘도 어디선가 제자 친구들은 힘내서 음악을 하고 있을 테고, 또 현재는 음악을 하지 않더라도 힘내서 자기 일을 하고 있을 테고 (멋진 친구들!), 또 누군가는 힘이 들어 눈물짓고, 뭔가 잘 되지 않아 좌절하고, 잠이 오지 않아 여전히 밤을 지새우고 있겠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어느 학교에서, 어떻게 만났건 모두들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음악을 하던, 음악을 하지 않던, 각자에게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저 가이드로서 곁에서 함께 걷는 나의 삶 또한.


2022.09.19.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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