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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민 Apr 30. 2023

알뜰하게 살았다

욕심의 그릇


알뜰하게 살았다.


3월 한 달, 카드 2개 총 391,450원. 유난히 알뜰해서 기념으로 캡처를 해두었다.


어릴 적 언젠가 자유로운 음악인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욕심의 그릇을 한없이 줄였다. 미래에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미리 가늠하고, 받아들였으며, 그런 마음으로 늘 허영과 허례허식을 경계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나는 점점 할 일을 잃어갈 것이고, 같이 공부했던 내 또래의 사람들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은 삶의 방식부터 여가, 취미 생활까지 이제 공유되는 지점이 없어질 것이란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나는 도태되는 것이며 사실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은 것도 있는 법. 그 많은 것들을 잃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사는 것, 그 삶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미 20대에 생각했다.


나는 늘 생각한다. 얼마를 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며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이따금씩 허영과 허례허식의 과시욕이 꿈틀대며 마음을 어지럽히고 열등감을 불러올 때도, 그래서 가끔은 서글플 때도 있지만, 늘 어떻게 쓰며 살지 그 신념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많이 버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올바르게 쓰는 것은 온전히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욕심의 그릇이 작으면 조금만 채워져도 소소한 행복과 기쁨이 있다. 욕심의 그릇이 크면 한없이 채워 넣어도 늘 부족한 것 같아 행복도 기쁨도 그다지 누리지 못한다. 삶의 행복감은 바로 이 욕심의 그릇 크기에서 온다는 것을 언젠가 깨달았다. 주제와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의 그릇을 가지는 순간 삶의 불행은 시작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불행을 자기 스스로 키우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아등바등 살아간다. 나는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노라 언젠가 다짐했다.


나는 내 주제와 분수를 안다. 이 정도면 살만하니까 음악 하며 사는 거고, 이 정도면 할만하니까 음악 하며 사는 것이다. 없지도 않고, 있지도 않다. 나에겐 딱 이 정도면 적당하고, 더 바랄 것이 없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관심병과 인정욕구가 가득한 시기를 지나 언젠가는 다 잊혀져 살아는 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시기가 올 것임을 미리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슬픈 일이지만 슬프다고 일어나지 않는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내려놓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주제와 분수를 스스로 인정하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안빈낙도와 유유자적, 내 삶의 목표다. 숱한 허영과 허례허식의 유혹에도, 그래서 찾아오는 서글픔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럭저럭 잘 견디다가, 훗날 어찌 보면 초라하고 쓸쓸해 보일 나의 미래에서도, 가진 건 없어도 위엄을 잃지 않은 고목처럼 어디선가 소리 없이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한 해 한 해, 다가올 미래의 삶이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완전한 마음의 평온을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음악과 시간을 곁에 두고 욕심의 그릇을 잘 다스리며 알뜰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202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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