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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라쥬 Nov 23. 2020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결핍은 존재한다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천재적 필력을 가진 소설가이면서도 까칠한 듯 소탈한 매력을 가진 에세이 작가. 지금은 세계적 작가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신간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는 가족의 이야기를 극도의 신비주의로 남겨두던 그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쓴 사적인 이야기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마라톤을 좋아하고.

맥주를 좋아하고.

야구를 좋아하는 남자 사람.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보다는

가정에 충실한 것 같은 사람.


가벼운 농담을 즐기지만

스스로가 가볍고 싶지는 않은

늘 한 겹의 벽을 앞에 두고 소통하는 사람.


적. 당. 히.

여유롭게.

자만하지 않고.

강압적이지 않고.

편파적이지 않은.


처음부터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글에서 젊은이의 감성이 배어 나올 것 같은

블랙홀 같은 필체를 가진 작가.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간 수많은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성장배경이라거나 가족들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는 그다지 다룬 적이 없다. 그랬기에. 이번 '고양이를 버리다'를 통해 공유하는 아버지(무라카미 지아키)에 대한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면 누구나 솔깃해하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학시절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던 무라카미 하루키. 밝혀진 그의 성장배경으로나, 에세이에서 보이는 삶의 질에서나 별다른 어려움이나 고난은 느껴지지 않는데.. 그런 그에게 자녀가 없다는 사실은 내게 늘 조금의 의외로 다가왔었다. 물론 결혼한 모든 부부에게 자녀가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는 딩크족으로 살고 있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던 부모님 세대의 나이인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후세가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이유가 늘 나에게는 의문 투성이었을 뿐이다. 물론. '고양이를 버리다'를 완독해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전혀 다뤄지지 않은 주제이므로.. 다만,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중간중간 비치는 무라카미 부자간의 감정적 괴리감이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은 개인적인 추론이 가능하기는 했다.

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에서 자주 느껴지던 알 수 없는 공허함과 회색빛의 근간이 바로 '그의 어린 시절에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함에 있어 가장 처음으로 아버지를 택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에세이를 쓰면서 '고양이를 버리다'라고 제목을 정했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라는 부제를 달아서. 그래서일까. 나는 에세이집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으면서 내내 무라카미 지아키의 아들인 동시에 또 다른 고양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꾸만 오버랩되어 그려졌다.


물론. '고양이를 버리다'에 실린 삽화들이 모두 어린 하루키와 고양이의 그림으로만 꽉 채워져서는 아니다. 일전에 하루키의 다른 에세이집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확한 문구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이랬던 것 같다.


나는 카메라 앞에만 가면

나도 모르게 굳어버리기에

사진 찍는 걸 즐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나도

고양이만 함께 있다면

조금은 그럴듯한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고양이란, 그런 존재인 것이다. 늘 한 겹의 유리벽을 사방에 둘러치고 살고 있는 듯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러한 존재이자, 동료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의 고양이는, 아버지인 무라카미 지아키인 동시에 하루키 스스로를 상징하는 듯 보인다.


고양이를 버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가족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는 어린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로 가서 고양이를 버린 적이 있었는데,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 고양이가 자신들보다 먼저 집에 돌아와 있더라는.. 그러한 일화에서 출발된 에세이다.


교토의 절집에서 차남으로 태어난 에세이 속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버지. 그는 어린 시절 부모에 의해 다른 절의 동자승으로 보내어진 적이 있었고,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다시 본가로 되돌아와 부모의 품에서 성장한다. 이는 버려졌다가 다시 집으로 되돌아왔다는 점에서, 아버지와 자신이 고양이를 버렸던 사건과 동일시될 수 있다. 여기에서 버려진 것은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다.


에세이 속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특이점은 하루키가 기억하는 아버지와의 기억 대부분이 초등 저학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 시절까지 무라카미 부자간의 연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묶여있었던 듯 보인다. 그러나 이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는 또 하나는, 하루키의 학창 시절을 지나며 부자간에는 깊은 골이 만들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스스로도 '아버지와의 연을 끊고 지내다 아버지 지아키가 죽기 직전에서야 화해의 시간을 가졌고, 끊어졌던 부자의 연을 이었다.'라는 식으로 서술한 걸 보면, 그간 부자간의 골은 제법 깊었었나 보다. 어쨌든,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버지와의 대립으로 잠시 가족에게 버려졌다가 늦게나마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해보면, 이 또한 고양이를 버린 일화와 교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물론, 이번에 버려졌다 돌아온 것은 아들인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이지만.


에세이 속 내용을 토대로 추측건대, 하이쿠 짓기를 좋아하고 교토 제국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 입영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번번이 자신의 학업과 꿈을 접어야만 했던 그는 은연중에 자신의 이러한 억울한 감정과 생각들을 (어떤 방식이었건) 가족들에게 전파했던 듯하고, 그 과정에서 아들인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는 과도한 부담감과 트라우마 그리고 많은 스트레스가 작용했던 듯싶다. 아마도 이러한 영향이 그의 회색빛 소설들 속에서 주인공의 심리로 혹은 그들의 묘하고 신비로운 상황들로 재현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의 소설에서 유난히 죽음과 자살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모두 아버지와의 관계로부터 파생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에게 후세가 없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지는 않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회상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자,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에 대한 이야기. 글 속에 녹아든 조심스러운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족사를 통해 그와 그의 소설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은 높아진 듯한 느낌이랄까. 그의 소설 속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삶에 대한 짙은 허무감과 깊은 우울의 근원을 조금은 유추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준 책이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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