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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모리 Nov 18. 2022

토론토에서 5평 집 구하기

토마토- 토론토에서 맞이하는 토요일 아침


9월에 토론토에 온 건 멍청한 짓이었다.

11월이 돼서야 계약한 집에 입주할 수 있었다. 약 한 달 동안 여섯 곳의 임시숙소를 거쳤다.


캐나다는 주로 1일 단위로 계약, 입주를 하고

개강 시즌인 9월은 전 세계 학생들이 캐나다로 온다고 한다.


4월에 비자를 받았으면서 뭉개고 뭉개다 9월 28일에 캐나다로 입국한 나에게는 유감인 일이다.  

순간의 선택은 어긋남의 연속이다가도, 송곳처럼 튀어나온 행운에 기대기도 했다.


한국에서 홈스테이나 한인타운 민박을 구하는 쉬운 방법도 있었지만, 나는 오기를 부리는 사람이므로 쉬운 선택은 쉽게 제쳐뒀다. 캐나다 현지에 가는데, 현지 사람들과 살아야지. 도착하자마자 집을 구할 요령으로 한국에서 4일 에어비앤비를 구했다. 이것 역시 쉽지 않았다. 7~8월에 비행기 예약할 때만 봐도 저렴한 호스텔과 게스트 하우스가 많길래 '와 나중에 해야겠다'라고 미뤘다. 해야 할 일을 마지막까지 미루는 사람은 결과를 달게 받을 줄 알아야 한다.


1. 9월 28일 ~ 10월 1일 다운타운 근처 에어비앤비 370$


출국 날짜가 9월 28일이고, 14시간 비행이라 29일부터 예약했다.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시차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고 나도 그랬다. 친구가 알려주고 나서야 시차 때문에 28일에 출발해도 28일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숙소는 내가 토론토에서 지냈던 방 중 제일 좋았고, 여기서 제일 많이 울었다. 1일까지만 예약한 이유는 고작 4일 동안 집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깔린 결과이기도 하고, 비싸기도 해서이다.


위치는 Moss Park 주변인데 여기가 우범지역이란 것을 첫날부터 알 수 있었다. 홈리스, 네이키드 보이, 길거리에 널려있는 주사기와 대마 냄새. 계단이 좁고 가팔라서 캐리어는 1층 공용 옷장에 숨겨(?) 놓고 3층 방으로 조달하면서 살았다.


2. 10월 1일~ 10월 5일 Ossington 역 근처 에어비앤비 581$


저렴한 호스텔은 없고, 남녀 혼숙 게스트하우스도 1박에 7만 원 씩이고, 캡슐호텔은 큰 캐리어 보관이 안 돼서 선택지가 없었다. 4일 동안 집을 구하기에 실패했고, 다운타운을 조금 벗어나서 그나마 저렴한(하지만 가격을 보시라) 에어비앤비를 잡았다.


가는 길에 나이지리아에서 온 우버 아저씨와 집값과 타지 생활의 힘듬과, 영어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주먹 인사를 하고 내렸으나 연락은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임시숙소. 너무 추웠다.


크레이그리스트, 키지지,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 캐스모를 뒤져보다 St Clari West 역 근처 집 뷰잉을 잡았다. 가는 길에 내 신발이 예쁘다고 칭찬한 나이키 보이와 저녁에 자전거 타자고 약속을 잡고, 맥주를 마시고 지금은 손절했다. (냅다 키갈하려고 함) 스트릿 인연은 거르자는 교훈을 얻었다.


방은 마음에 쏙 들어서, 한국에서 송금한 돈이 들어오기로 한 날인 10월 4일 월요일에 입주하기로 했다. 에어비앤비는 하루 먼저 나간다고 취소 요청을 했고, 부분 환불을 받았다.


지난 글에 썼듯, 디파짓은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입주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다른 에어비앤비를 급하게 또 구해야 했다.

https://brunch.co.kr/@5-mori/46

돈은 10월 5일에 들어왔다. 에어비앤비를 취소하지 않고 여유 있게 5일에 입주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이전에 봤던 650$ 한인 아저씨가 운영하는 룸 셰어를 계약했다면? 모든 선택을 잘근잘근 곱씹으며 어딘가 많이 어긋났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지금 생각하면 꽤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위치가 너무 외각이었고, 주변 인프라가 이제 생각해보니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우가 못 먹은 신포도를 보는 것일 수도.


3. 10월 4일 ~ 10월 6일 Eglinton West 근처 에어비앤비 175$


가는 길에 우버 드라이버가 또 친구 하자고 했으나 연락은 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집만 찾아봤다. 오싱턴역 근처 뷰잉 약속을 잡고, 드디어 계약했다. 집주인은 42명이 연락했는데, 나로 정했다고 생색을 냈다. 월에 900$ 받을 거면서.. 문제는 지금 세입자가 살고 있고, 11월 1일이 입주일이었다. 그전에 이사 가능하면 얘기해 주겠다고 했으나 역시나 확실하진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보증금도 보냈고, 계약도 끝냈기 때문에 마음은 한결 편했다. 임시숙소 말고 민박이나 단기 숙소 위주로 한인 커뮤니티 캐스모를 뒤졌고 다행히 딱 맞는 조건을 찾았다. 캔싱턴 마켓 근처 에어비앤비를 10월 10일부터 28일까지 1박에 5만 원에 룸 셰어 하는 조건이었다.


4. 10월 6일 ~ 10월 10일 캔싱턴 마켓 근처 Unviersity Apartment 349.88$


구글 별점 2점에 달하는 디스커스팅 호텔이다. 돈도 마음도 너무 닳아버렸다.

옆 방 여자는 하루 종일 소리 지르고, 복도에선 대마 냄새가 났다. 침대 시트는 들춰보고 싶지 않았다.

숙소에 있기 싫어서 거의 밖으로 다니려고 했고, 인종차별도 당했다. 여러모로 안 좋은 기운이 가득한 곳이었다.


5. 10월 10일 ~ 10월 29일 단기 룸 셰어 95만 원


캐스모에서 봤던 룸 셰어 숙소에 입주했다. 짐을 풀며 '이제 살았다' 고 느꼈다. 액땜은 여기까지 라거나, 고난을 극복한 클리셰 결말처럼 소소한 행운이 주변에 널려 있었다.


플랫 메이트는 한국에서 연수 온 의사였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남자였다. 이성과 룸 셰어는 유교문화에 맞지 않는 정서이나 여기는 캐나다이고, 나는 최선을 다해 내가 무해한 인간이라는 것을 어필했다.

다행히도 흔쾌히 받아 주셨다.

위치도, 난방도, 집 컨디션, 플랫 메이트도 모든 게 완벽한 집이었다.

떠나기가 아쉬울 정도고 사실 지금도 여기서 살고 싶다.


주거가 안정되니까 이곳저곳 많이 다녔고, 밋업을 통해 좋은 친구들도 만났다. 체크아웃 전날 플랫 메이트와 저녁을 먹으며 이것저것 도움과 선물도 받았다. 문제는 29일 체크아웃이고 이사는 11월 1일이라는 것이었다. 또 2일이 비어서 막막했는데, 밋업에서 만난 친구가 다른 친구가 도와줄 수 있다며 연결해줬다.


6. 10월 29일 ~ 31일 카우치서핑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았다. 당연히 숙박비를 낼 생각이었는데, 질색 팔색 하며 그냥 오라고 했다. 흔한 일이라는데 나는 전혀 흔하지 않은 환대에 어안이 벙벙했다.

카우치 서핑이란 것을 처음 알았다. 여행객을 위해 무료로 자신의 카우치(소파)를 내주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인류애는 소파에서 나온다.


마침 핼러윈 시즌이어서, 친구 집은 파티 준비에 한창이었다. 토론토 다운타운 이튼 센터로 코스튬과 파티 용품을 사러 같이 가서 긴 대화를 나누며 파티 준비를 도왔다. "여기서는 아무도 신경 안 써, 너는 뭐든 새로 시작할 수 있어. 누구도 직업으로 차별하지 않아." 따뜻한 응원과 함께 아침 7시까지 춤추고 술 먹는 핼러윈 홈파티를 경험했다.



7. 10월 31일~ 지금 월 900$


돈 낭비 오지게 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어서, 이걸 정리하면 계좌와 멘탈이 상처받을 것 같아 미루고 미뤘다. 모아둔 돈을 대부분 임시숙소와 삽질로 까먹었다. 선명한 한심함과 자괴를 어떻게든 정당화하는 중이다.


월 900$ 주제에 무옵션 방이어서 가구를 모조리 사야했다.

시차를 지적해준 친구가 캐나다에 거주하는 선배를 연결해줘서 옷장과 책상과 서랍을 거저 얻었다. 픽업도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침대와 의자도 발품을 팔아 중고로 저렴하게 샀다. 차곡차곡 적립한 도움을 어떻게든 갚아야지.


다시 5평 집이다.

화장실과 주방은 다른 플랫 메이트와 공유하고, 월세는 서울보다 훨씬 비싸지만 또 5평이다. 다른 워홀러 브이로그나 블로그 보면 2,3주안에 금방 집 구하던데, 비교하면 끝도 없다. 삽질도 경험이라고 믿는다.


하루하루 일상은 지루할 정도로 서울과 동일하다가도, 문득 여기가 토론토라는 순간을 즐기고 있다.

알바에 목메는 나를 마뜩잖아하는 나는 진작에 사라졌다. 정착만큼이나 취준도 지독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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