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토론토에서 맞이하는 토요일 아침
디노는 나를 보자마자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너 진짜 맞아? 페이스톡에서 보던 얼굴이 정확히 3개월 만에 내 앞에 있었다. 12월 25일 뉴욕 파파이스에서 서로를 보자마자 한달음에 얼싸안았다. 한편으로는 고작 3개월이다. 우리는 9살 때 만나서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고 다른 대학, 다른 지역에서 안부를 물었다. 학업과 일에 치일 땐 1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했다. 이 역사에 비하면 3개월은 짧다.
한국을 떠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토론토, 캐나다에 놀러 오라고 인사치레로 말했으나 기대하진 않았다. 언제 밥 한번 먹자 수준의 농도였다. 너무 멀고, 캐나다는 특별한 연휴를 보내기에는 따분한 곳임을 나도 알고 다 안다. 9월 25일 디노는 잘 다녀오라며 내가 갈 테니까 보자고 했고, 12월 25일에 정말 왔다. 마침 디노의 언니도 뉴욕으로 새 출발을 한 참이라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뉴욕에서 보냈다.
토론토에서 뉴욕은 1시간 30분. 한국에서 뉴욕은 14시간. 디노는 이민용 캐리어 두 개와 기내용 캐리어 하나, 백팩을 메고 왔다. 이민용 캐리어는 언니의 물건이다. 한인마트와 로컬 마트를 가서 같이 장을 보고, 차돌된장찌개를 끓여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가져온 햇반과 식자재를 정리하고, 호박을 다듬고, 김치를 썰어두고, 제육볶음을 하며 명란파스타를 만들었다. 와인 두병을 비우고 다음날 아침 걱정을 하는 디노를 말리고 싶었다. 아침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우리는 뉴욕을 걷고 구경하고 먹고 마셨다. 이 일과 이후에는 끊임없이 사부작거리는 디노가 있었다.
첫날 크리스마스 저녁은 디노의 언니가 근사한 스테이크 하우스를 예약해 뒀다. 모든 것은 일정에 맞게 착착 진행됐다. 나는 디노가 가져온 옷을 입었다. SOHO 거리를 갈 땐 디노가 가져온 롱부츠를 신었다. 디노는 잘 어울린다며 두 개 다 나를 줘버렸다. 캐나다에선 그런 거 못 사지, 다 새 거야 너 해.
언니 옷에 묻은 블루베리 크림치즈를 닦아주는 디노를 보며 나는 물었다. 그렇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면 넌 어떡하려고 그래. 너는 초등학생 때도 놀이터에서 한참 놀다가도 언니가 집에 있다고 하면 같이 밥 먹을 거라고 집에 갔잖아. 디노는 말했다. 밑동이 있으면 다시 자라나. 나는 더 못해줘서 미안해.
흠 하나 없는 이 애틋함이 나는 처음 본 물건처럼, 처음 와본 뉴욕처럼 신기했다. 어떻게 다뤄야 될지도 모르겠고, 감히 망치고 싶지 않아 조심스러웠다. 다만 이 전심전력이 너를 해칠까 염려됐지만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순수한 애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기우였다.
뉴욕은 빠르게 지나갔다. 아무것도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했고, 도시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새로웠다. 디노는 울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울었고, 나는 정말 울지 않았다. 나와 디노와 디노의 언니는 가족처럼, 연인처럼 시간을 보냈다. 25일부터 29일까지는 허투루가 없었다.
디노는 한국으로, 나는 토론토로 돌아왔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 우습게도 집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3개월 만에 토론토가 고향이 됐다. 그리고 문득 토론토가 아주 따분했다. 토론토의 단순한 지하철 노선이, 타임스퀘어에 한참 못 미치는 이튼센터가, 멈춰있는 옛날 건물이, 걸어서 30분이면 다 돌아보는 다운타운이, 인터넷도 전화도 안 터지는 지하철이, 차가운 계절이, 사랑하는 것들이 없는 토론토가.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은 여전히 한국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연말이 한참 시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