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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모리 Jan 30. 2023

캐나다에서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

토마토 - 토론토에서 맞이하는 토요일 아침 


How are you?


가끔은 동시에 말해서 대답할 타이밍을 놓친다. 머쓱하게 good..을 흘린다. 토론토에서 하루 중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단연 How are you. 이제는 눈이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주몽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는 이란에서 온 친구는 한국문화에 꽤나 관심이 많다. 주몽과 장보고로 한국을 배운 사람의 열정은 어디에 있는가. 언니와 아니의 발음이 왜 똑같냐고 한참 물어보던 그는, how are you? 는 어떻게 말햐나고 물어봤다. 안녕은 아니고, 잘 지냈어도 아쉽다. "밥 먹었어?" 한국 사람한테 얘기해 봐 자지러질 듯 좋아할 거야. 이후 시도 때도 없이 밥 먹었냐고 물어본다.


밥 먹었어?


토론토에는 제법 큰 박물관이 있다. Royal Ontario Musiuem인데, 하루 종일 구경해도 부족하다. 공룡 뼈도 있고 박제된 개복치도 있다. 미라와 어느 먼 옛날 유물 사이에 조그맣게 한국관도 있다. 장신구도 검도 기왓장도 있지만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수저와 식기였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국인은 밥에 진심인가 봐? 아무래도 그렇지. 인사도 안부도 걱정도 애정도 기약없는 약속도 밥으로 통하니까.


캐나다는 역사에 근본이 없는 만큼 대표랍시고 할 만한 음식이 없다. 대신 다양성과 포용성 덕분에 온 세계 미식을 맛볼 수 있기도 하다. 코리아 타운, 차이나 타운은 기본. 리틀 이태리(왜 코리아는 타운이고 이태리는 리틀 이태리인지), 리틀 티베트, 포르투기, 인도, 레바논. 만난 친구만 해도 카자흐스탄,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이란, 시리아, 브라질, 멕시코, 뉴질랜드, 일본,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프랑스, 헝가리. 그럼에도 캐나다에서 제일 맛있게 먹은 식당이 뭐냐는 질문에는 파이브가이즈가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또간집을 굳이 꼽자면, 두 번 이상 혼자 가본 집은 술집을 제외하면 파이브가이즈 햄버거 집이 유일하다. 적당히 한국에 없고 맛있고 간편하다. 소울푸드에는 열의가 없다. 어떤 사람은 한인마트에서 김치와 고춧가루, 된장, 고추장, 동전육수를 구해다가 보쌈을 먹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된장국을 해 먹지만 나는 그 정도의 정성과 향수는 없다. 미니멀리즘은 아니지만 원 플레이트면 충분하다. 오믈렛, 양배추찜, 불닭볶음면, 파스타, 계란볶음밥. 생일에는 블록 미역국과 베이컨볶음밥. 혼자 하는 맛집 투어는 글쎄. 한국에서도 하지 않은 일을 외국이라고 달라질까. 아, 혼술은 예외다. 생맥주 맛집 지도는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다.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갈비탕과 비빔밥을 먹고, 이란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케밥을 먹고, 일본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타코야끼를 먹는다. 비건을 만나면 채식을 하고, 무슬림을 만나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밥보다는 사람에 관심이 많아서 너의 취향이 곧 나의 선호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냐는 애정과 걱정 어린 안부에 가끔 초라해지지만, 이것이 삶에 열의가 없다는 뜻은 분명 아니다. 뭐 먹고 싶어? 네가 먹고 싶은 거면 나는 좋아. 가끔 이런 대답은 상대방을 오해하게 만든다. whatever가 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 1위라나? 극과 극은 통해서 관심 없음과 관심 과잉은 때때로 같은 뜻으로 들린다.


어디에 있어도 밥은 잘 먹어야 해. 생일 선물로 보내준 월마트 기프트카드와 장 보는 김에 네가 생각났다며 건네준 계란과 양배추, 토마토, 사과주스는 어떤 선물보다도 사랑의 표시로 나는 읽었다. 끼니를 놓칠 만큼 너를 괴롭히는 일이 없고, 혼자 먹는 식사가 우울함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라고, 최소한 식사만큼은 나를 돌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는 서서히 배워간다. how are you에는 콕 집어 담을 수 없는 덩어리를 밥 챙겨 먹었냐는 안부에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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