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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May 14. 2022

왜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은 오스틴으로 모여드는가?

내가 텍사스 오스틴이라는 도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지구를 적도를 기준으로 반으로 쪼개 놓은 것 같은 드넓고 쾌청한 하늘과 마치 도시가 거대한 숲에 잠겨있는 듯한 모습이다. 미국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의 삶을 ‘느긋하고 평온한 라이프스타일(laid back lifestyle)’로 말하곤 했지만 하루하루 숙제와 토론 준비를 해 나가기 바쁜 유학생 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그 표현이 가깝게 와 닿지는 않았다.


2022년 기준 인구가 100만명이 조금 넘는 이 도시는 텍사스주 청사가 있는 주도(州都)이자 대학 타운으로 출발했다. 이곳에 위치한 텍사스주립대학교 오스틴 캠퍼스는 미국내에서 다섯 번째로 가장 큰 대학으로 학부생 3만7천명, 대학원생 1만3천명 정도가 공부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2005년 정책학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2년간 공부했다.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이론과 실무 과정을 배우는 이곳은 매년 100여명 가량을 선발해서 석사과정에서 200명 정도가 공부하고 있었다.


(사진출처 : 텍사스주립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페이스북)

내가 이곳 대학원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커뮤니티 문화였다. 이것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상대의 필요를 살피고 서로 돕는 것일 것이다. 이 문화에 있어서는 대학원 구성원인 학생과 교직원 모두 일치했다. 따뜻한 정서의 미국 남부 문화, 텍사스 오스틴의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정치 풍토, 그리고 접근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공공의 선을 위해 일하겠다는 커리어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결합되어 이루진 것 같은 이 독특한 커뮤니티 문화는 나 뿐만 아니라 미국내 여러 주에서 온 친구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매우 인상 깊어 했다. 내가 이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나도 내가 받은 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되돌려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마음 깊이 품게 했다(그런데 아직 실천은 못했다).  


내게 커뮤니티 문화를 가르쳐준 오스틴은 이제 미국 테크 업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가 됐다. 지난해 12월 테슬라가 본사를 실리콘밸리에서 오스틴으로의 이전을 발표했다. 그전에 오라클은 이미 오스틴으로의 이전을 완료한 상태였고, 애플은 10억 달러(한화 약 1조 2천억원)를 들여 1만5천명의 임직원 수용이 가능한 대규모 캠퍼스를 조성 중에 있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드롭박스가 큰 사무소를 두고 있고 삼성의 시스템반도체 공장이 있기도 하다. 오스틴 서부 구릉지대는 ‘실리콘 힐즈’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첨단 IT 스타트업과 대기업들이 대거 입주해 있다. 오스틴에는 6,500개의 스타트업과 테크 기업이 있고, 2019년 8월부터 2020년 7월 기준 IT 분야 일자리 수는 6만8천개에 이른다. 벤처캐피탈은 2021년 오스틴에서 412개 딜에 55억 달러(한화 약 6조6천억원)를 투자했고 이 금액은 2020년의 두배에 이른다.


이 도시의 강력한 기업가정신의 문화는 최근이 아닌 1980년대부터 시작한다. 오스틴은 델 컴퓨터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마이클 델이 1984년 텍사스주립대학교를 자퇴하고 설립, 도시에 기술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유기농 마트 홀 푸드(Whole Foods)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홀 푸드 마켓은 2019년 기준 북미와 영국에 500매의 매장이 있고 2017년 아마존에 인수되었다.


내가 대학원에서 체험했던 커뮤니티의 문화는 홀푸드의 창업 역사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오스틴에서 철학을 전공하던 존 메케이(John MacKay)가 중퇴를 하고 공동설립한 홀푸드 마켓의 1호점은 1980년 9월 20에 문을 열었다. 광고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특히 대안 문화 집단이었던 히피들이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듬해 70년 만에 일어난 큰 홍수로 상점은 침수되어 거의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이때 오스틴 커뮤니티가 발벗고 나섰다. 고객들은 와서 치우는 것을 도와주었고, 투자자들은 돈을 더 투자했다. 은행은 대출기간을 연장해주었고 직원들은 상점이 다시 문을 열때까지 무료로 일을 해 주었다. 커뮤니티의 도움으로 홍수가 난지 28일만에 상점은 다시 문을 열었다.


이러한 커뮤니티 문화는 오스틴의 테크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반영되어 있다. 오스틴은 창업자들이 경쟁하기 보다는 서로 돕는 테크 커뮤니티로 알려져 있다. 액셀러레이터인 테크스타의 오스틴 대표를 맡고 있는 아모스 슈와츠파브(Amos Schwartzfarb)는 최근 스타트업 미디어 테크크런치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은 놀랍도록 협력적인 오스틴이라는 도시에 있다고 본다.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그들 주변의 사람들이 성공하기를 원하고 돕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테크크런치는 실리콘 밸리에서라면 지루해하고 따분해 할 수도 있는 투자자 대상 피칭에서도 오스틴에서는 응원과 열정을 볼 수 있다고 전한다.


도시가 테크 허브로 발전해 가면서 1987년 인디 음악 축제로 시작된 이 도시의 가장 유명한 축제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도 음악, 영화, 테크가 교차하는 세계적인 트렌드 셋터로서 발전해 갔다. 매년 3월 중순 혁신적인 음악인, 영화인, 창업자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컨퍼런스, 트레이드 쇼, 전시, 그리고 뮤직 및 영화 페스티벌로 구성되어 10일 동안 열리는 이 축제는 2016년 기준 34만명이 참여하여 이 도시에 3.25억 달러(한화 약 3900억원)의 경제효과를 가져왔다.  


SXSW 야외 뮤직 페스티벌 (사진출처 : SXSW 웹사이트)

오스틴은 오랫동안 라이브 뮤직의 천국(“Live Music Capital of the World”)으로 일컬어져 온 곳이다. 200개 이상의 라이브 뮤직 콘서트를 개최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이것이 도시의 관광산업을 성장시켜 왔다. 음악은 오스틴의 창조 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서 영화ㆍ텔레비전, 게임, 비주얼 아트 분야를 아우르는 5만개의 예술 관련 일자리를 창출해 내고 있다. 이로 인해 음악가 뿐만 아니라 작가, 아티스트, 그리고 특이한 펑키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많은 도시들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오스틴은 계속해서 인구와 일자리를 늘려왔다.


이코노미스트는 오스틴의 지역사회 리더들이 음악이 오스틴이라는 도시를 특징짓는 요소라는 것을 오랫동안 인지해 왔고, 그 결과 음악이 도시의 성장과 번영을 이루려고 하는 노력의 중심이 되어 왔음에 주목했다.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이후 테크 분야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자 2003년에 오스틴시에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경제개발국(economic development office)이 처음 생겼다. 그 전까지는 경제개발을 담당하는 부서 자체가 없었다. 당시 시장이었던 윌 와인(Will Wynn, 2003~2009년 시장 역임)은 변화를 권고하고 실행하기 위해 테스크 포스를 직접 운영했다.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인센티브 및 여러 프로그램들도 개발했지만, 테스크 포스의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오스틴의 문화적 활력에 중점을 두었다는 데 있다. 예술과 관련된 활동에 투자하고, 음악가와 예술 관련 시민들을 경제발전 계획을 논하는 자리에 포함시켰고, 문화를 도시의 방향과 정책적 의사결정의 중심에 두었다.


이러한 도시의 방향성 설정과 함께 도시 슬로건, “Keep Austin Weird(오스틴을 이상하게 유지하자)”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이 슬로건은 차량 범퍼 스티커나 티셔츠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도시의 창조성에 대한 헌신 즉 도시의 성장이 오스틴의 정체성과 매력을 형성하는 문화적 자산을 사라지지 않게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지역의 독립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의미에서도 사용되어 왔다. 오스틴은 여러 도시 중의 하나가 아닌 고유한 도시로서의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윌 와인은 자본과 테크 인재들의 유입은 새로운 비즈니스들을 유인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새로운 투자들이 도시의 창조적인 분위기를 이식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젊고, 똑똑하고, 잘 교육된 테크 인재들이 도시에 들어왔을 때 이미 창조성은 존재해 있었다. 테크 전문가들이 도시의 이미지를 창조하지는 않았다. 이미지는 이미 있어왔다”고 말하고 있다.


테크 분야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오스틴은 여전히 음악 산업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또한 스몰 비즈니스와 25~34세 인구에게 매력적인 도시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 이 도시의 리더들은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오스틴의 음악적 분위기에 매력을 느끼고 그리고 도시의 창조적 융합에 참여할 수 있는 젊고 교육받은 인구의 유입에 헌신해 왔다.




참고 

1. TechCrunch(April 6, 2022), Mary Ann Azevedo, “Austin Emerges as a City of Unicorns and Tech Giants”

2.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2015), “Future Cities: Driving Growth through the Creative Economy”

3. Forbes(May 31, 2019), Laura Begley Bloom, “Is Austin, Texas, The Best City in America?”

4. CMS WiRE(Aug 20, 2021), Dom Nicastro, “Is Austin Emerging as the New American Technology Hub?”

5. CNBC(September 20, 2018), Catherine Clifford, “Whole Foods turns 38: How a college dropout turned his grocery store into a business Amazon bought for $13.7 billion”

6. SXSW.COM, “SXSW 2016 Economic Benefit to City of Austin Totals $325.3 Mi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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