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세계일까? 그럼 말을 잃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보이지 않는 세계들> 북클럽의 중동 문학 여정에서 함께 읽을 마지막 책으로는 알제리 여성작가 아시아 제바르의 「프랑스어의 실종」을 골랐다.
<보이지 않는 세계들>에서 함께 읽을 책들을 고를 때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지점이라면 나도 읽어보지 않은 책들 중에서 좋은 책을 골라내야만 한다는 심적 부담감을 들 수 있다. 심지어 후보 목록의 책들 대부분 대중의 눈길을 받지 못하는 책들인지라 후기도 적다. 제한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어물어물 책을 골라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부분을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나는 스스로를 럭키걸로 여겨 본 적이 없어서 블라인드 선택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 그래서 어물쩍 열음님께 도서 선택권을 미뤄놓고는 한다. 그래도 도서목록 리서치 중에 구미를 당기는 책들을 한 두 권은 만나기 마련인데, 아시아 제바르의 책 「프랑스어의 실종」이 그러했다. 이 책이 가진 해시태그가 마음에 들었다. 여성 작가, 언어, 식민 역사.
아시아 제바르는 1936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를 알제리에서 다녔다. 사립 기숙학교를 다녔다는데 학급의 유일한 여학생이었다고 한다. 이후 대학은 프랑스로 진학하면서 최초로 프랑스 대학에 진학한 알제리 무슬림 여성이 되었으나 이후 발발한 알제리-프랑스 전쟁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튀니지에서 다시 학업을 시작한 이후로 졸업해 라바트에서 강의를 하다가 알제리가 독립한 해에 알제대학 교수로 임명되며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알제리 정부가 아랍과 정책을 시행하면서 강의를 아랍어로 하도록 강제하자 그것을 거부하고 알제리를 떠나 다시 프랑스로 간다.
그녀의 이러한 이력에 대해서 읽고 이 책을 골랐던 탓에, 이 책에서 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이 소설의 목소리는 남성의 것이었다. 남성 주인공인 베르칸의 시선과 목소리로 이야기가 내내 진행된다. 아시아 제바르는 어째서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난 다음에도 자신이 더 익숙하고 잘 말할 수 있는 여성의 목소리 대신 '베르칸'이라는 인물을 택하였는지 잘 모르겠더라.
베르칸은 유년을 알제리에서 보낸 뒤 파리로 이민 간 남성이다. 20년 만에 이민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알제리로 그가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바로 오늘,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 기이하게도 내 마음 속에서는 홈랜드라는 영어 단어가 노래하고, 아니 춤추었는지 모르겠다.
아시아 제바르, 「프랑스어의 실종」, 을유문화사
그의 마음속에서 노래로 흐르던, 춤추듯 어른거렸던 고향이란 무엇이었는가. 그는 온전한 자기 시간과 정적, 바다가 필요했다는 말로 자신의 귀환을 설명한다. 결국 파리에서의 시간은 그에게 타인으로써의 시간이었으며, 소음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편안함이었으리라.
그에게 아랍어는 어릴 때 가족과, 친구들과 사용했던 내밀한 언어이다. 반면 그에게 프랑스어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연인과 사용했던 언어이다. 파리에서의 연인, 마리즈에게 보낸 편지글들에 그가 프랑스어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있다.
우리의 관능이 타오르는 그 순간
당신이 내 모국어로 말할 수 없어서 내가 슬퍼하던 일을 당신은 기억할 거요!
학습된 언어, 프랑스어로는 순간의 강렬한 감정을 뜨거운 그대로 전할 길이 없다. 마음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데 그에 대한 표현은 있는 그대로 흘려 뱉을 수 없는 것이다. 한 번의 정련을 거치며 한 김 식혀 전달하면서 느껴야 하는 상실감과 고립감을 언어 학습자들은 다들 겪어보지 않았을까. 베르칸은 관능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고통의 기억 또한 마리즈에게 털어놓지 못한다. 이는 마리즈와 베르칸 사이의 관계 문제뿐 아니라 베르칸에게 있어서 아랍어와 프랑스어가 분담하고 있는 역할들과 위계 차이를 보여주는 듯하다. 20년을 프랑스어를 쓰며 생활했어도, 그에게 프랑스어는 고통을 말하기에 여전히 부적절한 언어인 것이다.
반면, 그는 어부 라시드와 지방 사투리로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가 느끼는 모종의 결탁감과 편안함을 고백하기도 한다.
나는 그에게 항상 지방 사투리로, 그러니까 내가 살던 카스바 구역에서 쓰던 사투리로 말하는데, 그것이 비밀스런 공모 관계를 가능하게 해 준다오. 일종의 상호 배려에 대한 호소라 할까. 우리는 시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오.
아시아 제바르, 「프랑스어의 실종」, 을유문화사
베르칸은 '시시한 이야기'라고 했다. 모국어로 주고받는 이야기들은 원래 시시콜콜한 것들이다. 가족과, 친구들과 하던 말들이 원래 소소하지 않던가. 결정적으로 내밀한 이야기들은 원래 시덥잖단 생각을 했다. 노스탤지어는 가장 작고 익숙한 것들에서 온다.
소설 속 그는 내내 글을 쓰고 있다. 그에게 글쓰기는 온전한 자기 시간을 되찾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 글쓰기를 그는 프랑스어로 한다. 그에게 프랑스어는 기록을 위한 언어, 아랍어는 순간의 감정을 표출하기 위한 언어이다. 그에게 프랑스어는 문어, 아랍어는 구어인 셈이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프랑스어는 내 숙소의 공간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관능적 쾌락의 고백을 보존하기 위한 하나의 ‘좁은 문’이 된다.
아시아 제바르, 「프랑스어의 실종」, 을유문화사
프랑스어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언어이자 고심 끝의 빛과 같은 언어이다. 그리하여 그는 프랑스어로 계속 글을 쓴다.
표출하고자 하는 것의 온도와 무게에 따라 다른 언어에 기대어야만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욕망이 하나의 언어만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갈라진다면 난잡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질 것만 같다. 프랑스어로 나타내야 하는가, 아랍어로 나타내야 하는가. 이렇게도 앉아보고 저렇게도 앉아보지만 어떤 자세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없는 공간에 갇혀버린 것처럼, 베르칸은 알제에서 부유한다. 고향이 그리워 돌아왔지만 일전의 그 평안함은 없다. 다시 파리로 돌아가자니 파리에는 바다도, 정적도 없다.
프랑스냐, 알제리냐. 온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베르칸은 어느 날 글더미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그는 어디로 간 걸까? 무엇을 찾으러...? 묘연하기에 좋았던 결말이었다.
소설의 결말이 우리 북클럽의 마지막과 닮아있단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이러쿵저러쿵하다가 일순간 쉭하고 꺼져버린. 하지만 언제고 다시 나타날 것만 같은.
1. 아시아 제바르, 「프랑스어의 실종」, 을유문화사 https://ridibooks.com/books/9500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