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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무슨 공부 할 거야?"가 새해 인사인 회사

다들 공부에 진심이잖아...

by H 에이치

연말연시, 다른 회사 사람들은 직장 동료들과 어떤 수다를 떠는지 궁금하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공부 이야기만 하거든...


면담에서


연말이면 팀장 면담이 진행된다. 팀장님과 온라인으로 올 하반기 KPI 목표와 달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올해 방송대며 자격증 응시 등을 했던 터라 기술 학습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 뒤로는 힘든 점이나 고충은 없는지, 요새 회사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가볍게 오고 갔다.


스몰챗거리가 떨어지고, 드문 드문 정적이 인다. 이제 면담이 끝나려나 싶을 때, 팀장님이 질문 하나를 던졌다.


2025년에는 무슨 공부 할거야?

정확히는 내년 방송대 수강 과목은 어떤 걸 생각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셨다. 수강 신청이 2달도 더 남아있는 시점에 벌써 그런 걸 정해뒀을 리 없는 나는 오히려 팀장님께 되물었다. 학부생 때 어떤 과목을 재미있게 들으셨었나요? 그러자, 운영체제 과목을 들으면서 깊은 인상을 받으셨다며 한껏 상기된 톤으로 운영체제라는 세계의 복잡미묘함과 멋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다. 공부 이야기를 참 좋아하시네. 재밌는 사람...


본사에서


면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젝트를 끝마치고 본사에 복귀했다.


이번 본사 생활은 스터디로 시작했다. 본래 프로젝트를 하나 마치고 나면 그간 사용하지 못했던 연차를 소진하는 문화인데, 나는 아직 휴가를 쓰지 않았다. 한 책임님이 SQL 스터디를 진행하고 계신다는 말에 합류했더니 쉴 틈이 없었다. 물론 프로젝트 후에 몰아 쓰는 휴가도 즐거움이 크지만, 동료들이과 공부할 기회는 더 귀하니까. 경험 많고 지식 월등한 시니어분들의 강의를 듣거나 주관해주시는 스터디에 참여할 때면 황송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스터디는 주어진 문제를 각자 풀어오고 발표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각자 문제에 대한 해석과 튜닝 방안에 대한 발표를 하고, 어떤 부분을 놓쳤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잠시 멍해진다. 나는 왜 저런 생각을 못하나 싶고, 공부해서 느는 게 맞나 싶어서.


발표를 마치고 분위기가 느슨해지자 테이블에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2025년에는 무슨 공부 할거야?

SQL 스터디 자리에서 나온 질문이라 그런지 다들 'SQLP' 취득부터 하겠다는 답변들이 주를 이룬다. 나도 이렇게 된 거 열심히 준비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더 공부한다면 데이터 모델링이랑 파이썬 중에 어떤 게 나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모델링을 누군가는 파이썬을 고른다. 각자의 답변에 동감하면서 둘 다 필요하지.... 끄덕거리고 있는데, 내게도 질문의 화살이 꽂힌다.


"H님은 뭘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 엄...... 고심 끝에 답한다. 나는 동료들이 하는 거 같이 하겠다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게 중요한 거겠죠. 스터디 만드시면, 같이 할게요.


질문한 사람은 내 답에 실망한 눈치였다. 주관이라곤 없어보이는 답변이니까. 하지만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뭘 공부할 것인지로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같이 공부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럼 더 재밌을 것 같고, 그래서 꾸준히 오래 지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송년 모임에서


얼마전 송년 모임이 있었다. 올해 모임에서는 정년 퇴직자와 근속자 대상 시상이 있었고, 대표님을 비롯한 임원분들의 말씀사를 들었다. 조직에 여러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는 게 더 크게 체감되었다.


정식 행사가 끝나고 팀 단위로 모여 점심 식사와 티타임을 가졌다. 평소보다 훨씬 더 작은 인원이 모여 좀 더 편안한 대화자리가 되었다. 대화의 화두는 아무래도 2025년 조직 변화에 대한 예측과 컨설팅사업부서의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집단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렇겠거니, 저렇겠거니 한참을 이야기하면서 때로 우울해졌다가 때로 희망에 찼다가를 이리저리 오가며 갈팡질팡한 마음 속을 헤맸다.


새해 덕담을 주고 받다가 마찬가지로 같은 질문이 테이블 위에 오른다.


2025년에는 무슨 공부 할거야?

이 정도면 공부 집착 집단이다. 나는 SQLP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래, 그건 하는 게 좋지." 끄덕 끄덕.


이후 이어진 시니어분들의 답변이 참 흥미로웠다. 이제 공부할 게 없다며 탄식하면서도 뭐 그렇게 알고 싶고 재밌어 보이는 게 많으신지들. 다른 사람들은 바로 그걸 공부라고 해요.. 공부 이야기를 다들 참 좋아하시네. 재밌는 사람들...


한해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 무엇을 배웠고 앞으로는 뭘 배우고 싶은지를 기준점으로 삼는 게 이 사람들의 새해맞이 방식인걸까.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2024년을 보내고 2025년을 맞이하려니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조바심과 함께하면 되겠거니 하는 안도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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