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엽은 단풍이 아니다」, 리희찬
<보이지 않는 세계들>의 첫 책은 아시아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선이었다. 국가별로 작품을 읽어보기에 앞서서 그 지역 문학의 대략적인 모습을 조망해볼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 우리가 옮겨간 곳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다가가서는 안 될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북한이었다. 우리는 북한 작가 리희찬의 「락엽은 단풍이 아니다」를 읽었다.
북한 문학에 대한 나의 편견과 몰이해는 얼마나 비약적이었는가. 나는 북한 문학을 읽어보는 것을 국가가 치안에 위협이 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을 줄로 알았다. 당연히 불법이려니 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북한 문학은 버젓이 출판되어 있었으며,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기까지 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대여해오면서도 내가 이 나라 도서관에서 북한 작가의 책을 빌려보고 있는 현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아마, 이 모임을 통해서 읽게 되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북한 문학의 존재를 지우고 살았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잃으면서 우리 남한 사람들이 잃어버린 순수와 우리가 버려버린 순수, 두 가지 순수를 발견했다.
북한말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에게 '얼음보숭이'와 같은 단어로 익히 알려진 북한의 언어. 북한은 외래어와 한자어를 거부하고, 한글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보전할 수 있는 언어 양식을 따르고 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단어를 제거함으로써 이루어낸 언어적 순수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혼란스럽다.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는 한국어는 부드럽고, 아름답다. 그러나 외국 문물에 대한 단호한 배척과 인위적인 말살을 통해 달성해낸 이 순수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포용과 수용, 다양성의 가치를 택하고 싶다. 더 근본적인 아름다움은 그런 가치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감성..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섬찟하게 될 때가 자주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 같이 악인 없이 선하며, 모든 사건들이 선한 결말로 결부되어 간다는 것을 매우 직설적으로 느낄 수 있다. 오해가 생길지언정, 그 오해의 진상은 이내 투명하게 드러나며 갈등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 소설 속 모든 발언들은 체제 순응적이며, 바르고 순수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독자들을 매우 불편하게 한다. 마치 절대 흑黑과 절대 백黑을 인간의 눈으로 감히 응시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선하기만 한 사람들이 나오는 소설이라, 어쩐지 불쾌하다.
또한, 이 책의 존재 자체가 불온을 걸러낸 순수만이 살아남는 북한 체제의 증거물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과연 이런 소설만이 북한에서 정식 유통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작가는 체제 순응적으로 길러진 엘리트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그것은 아주 쉽게 사실로 판명되었는데, 책날개의 작가 소개를 통해 리희찬이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출신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북한 사회에 품고 있던 한 가지 오해와 한 가지 진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오해하던 것은 북한이 매우 이상적인 공산주의를 엄격하게 실천하고 있는 국가일 것이라는 추측이었는데, 북한의 공산주의는 이상적이지도 엄격하지도 않았다. 소설 속에서는 자본주의적 원리들을 생활 깊은 곳에서부터 받아들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매우 통제된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듯했지만 개인이 개인 물품을 수매할 수 있었다. 게다가 북한식 공산주의는 평등과 거리가 멀었으며, 노동이 제1의 가치도 아니었다. 소설 속에서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태도나, 노동자 위에 남존여비의 가치가 떠받들여지는 가부장제적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시금 그 진실을 확인하며 공포스럽게 느껴진 지점도 있었다. 바로 북한민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사회 검열이었다. 이 책에서 사상 검열은 매우 여러 차례 등장하며, 그것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인물은 없다. 모두가 사상 검열에 순응적인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 소설 속에서는 북한 사회에서의 사상 검열을 극단적으로 미화하는 장치가 하나 등장한다. 바로 '일기장'이다.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인 기옥과 유철은 서로의 일기장을 교환해보며 서로 간의 진심을 확인하며, 등장인물들의 일기장은 사회 순응적인 자신들의 본심을 세상에 증명해 보이는 도구로써 사용된다. 우리에게 일기장이라는 공간이 감정의 쓰레기통, 배출구의 역할을 하는 사적 공간이라면, 이 북한 소설 속 일기장은 언제든지 열어 보이고 '깨끗'하게 유지해야만 하는 내적 공간을 물화해낸 공간이다. 북한 사회는 검열을 통해 마음속까지 '깨끗'할 것을 강요한다. 등장인물끼리 일기를 돌려보며 서로를 칭찬하는 장면은, 내게 이 소설 속 가장 무서운 장면 중 하나였다.
일요일 오전 9시, 우리는 게더 타운에 다시 모였다. 모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두서없게 소개해본다.
[사고 실험] 이 책을 읽는 내내 낯선 북한민들의 생활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거꾸로 북한민들이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볼까? 그들의 시선과 이해가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일기 쓰기] 북한민들의 인격 수양을 위한 활동이자 관심사로 표현되는 '일기 쓰기'. 우리들의 관심사이자 화두인 부동산, 맛집 등 세속적이고 저속한 가치와 대비되었다.
[일기 쓰기2] 일기는 검열을 위한 주요 통로로 보인다. 인간의 속마음을 공개되어 공유되어야 할 것, 사회적 가치와 맞지 않는 면은 깎고 교정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음성 지원]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곳의 소설이어서 어쩐지 음성 지원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언어 습관과 외부에서 파악되는 나의 언어적 모습들을 성찰해보았다.
[북한 언어] 북한의 언어는 5060의 언어가 고이고 그대로 보존되어서 더 순수한 발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베이징으로 유학을 갔던 한국 학생에게 당나라 시를 읽어보라고 시킨 교수가 있었다고 한다. 많이 사용되어 그만큼 크게 변화한 중국의 발음에 비해, 한국의 독음이 오히려 더 옛 발음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북한이 허락한 소설] 이 소설이 북한에 대해서 모든 면을 말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과연 북한의 실제 삶은 또 얼마나 다를지, 궁금해진다.
[북한의 사회 인프라] 소설 속 늦은 밤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에피소드를 읽으며, 남한의 사회 인프라와 북한의 사회 인프라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솔잎주, 대동강 맥주의 맛이 궁금하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마시던 량주(양주)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미국 술은 아니었을 테니, 아마도 러시아의 보드카였으려나.
[두 배로 고통받는 북한 여성] 가부장제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과 노동자로써의 여성, 그 모두를 살아내야 하는 북한 여성들의 모습이 참담해 보였다. 평등한 노동권이 양성 평등한 사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하고 나니 매우 씁쓸하다.
[산] 소설 속에서 매우 아름답고 울창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북한의 산에 대한 진실이 궁금하다. 우리는 북한의 산이 겨울철 난방을 위한 벌목으로 인하여 매우 훼손되어 벌거숭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북산의 산수는 어떤 모습일까.
[피할 수 없는 감성, 국뽕] 소설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국제 재판에서 북한을 변호하는 외국인은 매우 우스웠다. 어느 나라에서는 '외국'이 인정하는 우리나라에 대한 뽕이 만연해 있는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바른 이야기'로 쓰인 소설이었지만, 그 자체가 북한 집권자들이 원하는 사회상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 같아 흥미롭게 읽었다. 생각지도 못한 재미 요소가 가득했던 북한 소설, 「락엽은 단풍이 아니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