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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May 11. 2022

첫 번째 모임_메타버스 세계에서 열린 독서 모임

게더타운에서 열린 <보이지 않는 세계들> 첫 세션

모임이 열리던 아침


내가 사랑하는 주말. 알람 없이 눈이 떠지는 때 일어날 수 있는 주말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오랜 잠 끝에 스르륵 눈 떠지고 다시 스르륵 눈 감고 늦잠 속으로 들어갈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주말 아침의 황홀함. 


이번 주말은 그런 황홀함은 없었다. 아침 아홉 시라는 꽤나 이른 시간에 <보이지 않는 세계들> 온라인 모임이 열렸기 때문이다. 고된 아침은 아니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모임이었기 때문이었는지 힘차게 이불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아침이었다. 룰루. 흥얼거리기까지 하였다.


간단하게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고, 커피를 한잔 내렸다. 약속된 시간 10분 전에 노트북을 세팅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에 포맷을 해둔 뒤라 그런지 처음 설정해야 할 것들이 많아 생각보다 지체되었다. 이때부터 약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첫 모임부터 늦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 마음은 조급했던 데다가, 이번 모임에서 처음으로 *게더타운을 써보게 되었기 때문에 헤매지는 않을까 걱정까지. 민폐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게더타운은 우리가 게임으로 익숙한 map과 영상회의 시스템이 결합된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두둥- 입장!,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몇 분 늦게 예정된 장소를 찾아 접속하였는데, 아직 어느 누구도 없었다. 텅 빈 맵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나서야 안도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다들 우왕좌왕 헤매고 있구나.


게더타운은 몇 개월 전부터 각종 웨비나나 소규모 모임에서 도입하기 시작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플랫폼이었다. 지인 중에서는 재택근무에 게더타운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고, 기사를 통해서 한 대학교의 메타버스 입학식을 보기도 했지만, 실제 사용해본 경험은 없었다. 해보고 싶지만 어쩐지 창피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는데, 그 기회를 이번 모임에서 잡게 되었다.

게더타운에서 열린 <보이지 않는 세계들> 아시아 세션#1

급하게 입장하느라 내 캐릭터 설정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모임 개최자가 열심히 꾸며둔 공간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우리가 모두 모여 말문을 열고 단어를 뱉어내기 시작한 것은 거진 30분을 지체한 뒤였다. 모이기로 한 네 명 모두가 게더타운 초심자들이어서, 각자 깨나 치열한 사투 끝에 테이블에 둘러앉아 모일 수 있었다.


착석, 열린 소개


책꽂이와 지구본이 놓여있는 작은 서재, 테이블. 참석자들이 모여 앉아 첫인사를 나누고 각자 소개말을 나누었다. 우리들은 대체로 인적사항에 대한 말들은 겅중겅중 뛰어넘고 이렇게 모이게 된 각자의 사연에 대해서 긴 말을 나누었다. 사실 사람들이 모이고, 친밀감을 느끼기까지 필요한 힘은 인적사항이라는 정보량이 아니라 시간과 스토리가 아닐까. 우리들은 서로가 어떻게 연결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배웠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준비가 되었으며, 앞으로 보이지 않았던 세계들로 함께 긴 여행을 떠날 채비가 되어감을 느꼈다.


「물결의 비밀」


책 전반에 대해서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이야기들을 남겨보려고 한다.


첫 책으로 읽게 되어 좋았다.


우리 모임의 취지와 목적에 딱 걸맞은 첫 책이었다는 평들이 많았다. 이 책은 아시아 지역의 단편 중 엄선된 작품들을 선정하여 모은 단편선이었기 때문에 아시아 다양한 지역의 작가들의 작품을 훑어보기에 알맞았다. 게다가 실려있는 단편들 모두 굵직하고 흥미로워서, 읽는 재미도 뛰어났다. 우리는 좋은 작가를 새로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지역별 문학의 차이에 대해서도 어름어름 느껴볼 수 있기도 했다.


낯설지만 가까운 아시아


여러 작품들이 실려 있는 단편선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등장인물의 성격도 다양하고 그 수 또한 상당하다. 그런데 그 이름들 모두 우리가 자주 읽고 들어 보던 이름들이 아니라 인물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데 어려웠다. 낯선 이름들이 힘들었다고, 한 분이 표현하셨다. 


그런데 낯선 이름들이 무색하게, 사람들의 생활이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문화와 닮은 점들을 끝도 없이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지 패오>는 우리나라 근현대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법하였다. 농촌마을 소작농들의 삶의 애환이란, 경계 없이 비슷한 모양이었다. 다른 이름,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감정과 가치들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돼지기름 항아리>와 같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자식에 대한 사랑은 서양권의 소설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우리만의 감성이 물씬 느껴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어디까지가 아시아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글쎄. 이러한 구분은 과연 언제 필요한 것이고, 언제 유효한가? 우리는 '읽히지 않는 세계'를 알아보겠다는 방향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로서, 아시아라는 경계선을 명확하게 긋는 것에 득 보다 실이 더 많지 않을까.


우리가 발견한 것들


우리는 두서없으면서도 일관성 있는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나누었다. 우리 모임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었다면 '발견'이었을 것이다. 알지 못했던 아시아의 발견, 아시아인으로서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공통된 감정의 발견,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였으나 주옥같은 작품들을 써낸 작가들의 발견,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발견.


첫 모임은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이야기는 많다는 사실을 다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얼른 더 많은 세계를 만나고 싶어 진다.


다음 책은, 북한 문학 '리희찬'의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를 읽는다.




책 정보


「물결의 비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5914955


리희찬,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62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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