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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Feb 13. 2024

[일본]시라카와고 온야도 유이노쇼에서의 1박

3편

지금까지 구경한 지역은 시라카와고 중에서도 오기마치(Ogimachi)라는 동네다. 북쪽으로 다리를 건너가면 하토타니, 이이지마라는 동네가 나온다. 우리는 이이지마에 있는 '온야도 유이노쇼(Onyado Yuinosho)'라는 료칸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사실 시라카와고는 당일치기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지만, 여유 있게 온천을 즐기면서 밤과 아침의 한적함도 느끼고 싶었다.


숙소는 시라카와고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왜 이렇게 떨어져 있나?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시라카와고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 그렇다고 한다. 실제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기존 경관을 해칠 수 있는 활동은 제한된다"라고 쓰여 있다. 유이노쇼 정도의 대형 숙박시설이 들어서면 경관이 달라질 테니 허가가 나지 않는 걸까? 반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숙박시설은 오기마치에도 몇 군데 있는 것으로 나온다.


숙소는 시라카와고 버스터미널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버스터미널의 매표소와 짐 보관소 건물 사이, 유이노쇼(結の庄) 상호가 적힌 연갈색 봉고차가 있을 것이다. '30분이면 걸어갈 만하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겨울철엔 도로 주변으로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인도 사정도 걷기에 마땅치 않다고 한다.

온야도 유이노쇼 셔틀버스 시간표 / 출처: https://dormy-hotels.com/ko/resort/hotels/shirakawago/access/

셔틀버스를 찾아가면 친절한 기사님이 짐을 차에 옮겨 실어주신다. 손님이 몰릴 시간에 가면 차를 한 번에 못 탈 가능성도 있으니 부지런을 떠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도 한 차례 밀려 오후 4시 전후쯤 숙소에 도착했다. 유이노쇼에서도 즐길거리가 많았기 때문에 적당한 타이밍에 체크인했다고 생각한다.

유이노쇼는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숙박시설이다. 건물은 거대한 갓쇼즈쿠리 방식으로 지어졌다. 건물 내부도 목재가 많이 사용돼 있다. 복도 전체엔 나무 장판이 깔렸다. 신발은 현관에서 벗어 신발장에 따로 보관해야 한다. 바닥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직원이 손님들 캐리어 바퀴를 닦아준다. 현관 한쪽엔 부츠도 마련돼 있다. 눈밭을 거닐고 싶을 때 빌려가면 좋다.


가격은 1월 말 2월 초 기준 1박에 40만원대인데, 두 번의 가이세키(석식과 조식)가 포함돼 있다. 다른 호텔과 다르게 직원들의 영어 실력이 준수하다. 아무래도 외국인 손님이 많다 보니 그런 듯하다. 나고야 시내에 있는 호텔직원들은 친절하긴 하지만 영어 구사가 좀 아쉽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내 실력도 형편없다ㅠ)


카운터 맞은편에 작은 기념품숍이 있는데 호텔치고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외부 기념품숍에선 팔지 않는 일본 전통 장난감도 구비됐다.

배정받은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눈이 휘둥그레진다. 방 안에 또 복도가 나온다. 한 객실에 방이 두 개, 침대는 총 네 개다. 딱히 업그레이드를 해준 것 같진 않고, 애초에 전 객실이 방 두 개짜리인 듯하다.


큰 방엔 양갱과 센베과자가 서비스로 비치돼 있다. 인스턴트커피와 함께  우릴 수 있 다기도 구비됐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각각 따로 있다. 사실 가이세키가 두 끼 포함된 것만 해도 가격이 나쁘지 않다 싶은데 이 정도 호화 객실이라니 썩 맘에 든다.


그리고 압권은 따로 있다.

창문을 열면 맑은 하늘 아래로 시라카와고의 설경이 펼쳐진다. 근처에 시냇물도도히 흐르고 있다. 멀리서 보면 벽에 걸어놓은 유화 같다. 창밖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와 함께 독서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충만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저녁식사까지 한 시간쯤 남아 온천욕을 하기로 했다. 객실에 비치된 유카타로 갈아입고 욕탕으로 갔다. 남탕과 여탕은 분리돼 있다. 별도 프라이빗(전세) 온천도 있는데, 두 개뿐이라 경쟁이 치열했다. 궁금했지만 나는 이용하진 않았다. 남탕에 들어가 보니 기본적으로 목욕탕과 같은 구조다. 사물함에 입고 온 옷을 넣고 샤워기로 몸을 씻은 뒤 탕을 이용하면 된다.

뜨끈한 탕 속에 몸을 담그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곤노곤해진다. 온몸의 모세혈관이 넓어지며 피가 한 차례 돌아나다. 여독에 절어 천근만근 무거워진 팔다리가 한없이 늘어진다.


(온천에서는 촬영을 할 수 없어 아쉽다. 유이노쇼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을 활용한다.)

출처: https://dormy-hotels.com/ko/resort/hotels/shirakawago/hotspring/

야외에도 탕이 있다. 뜨끈한 물속 의자에 앉아 설산을 바라볼 수 있는 도 있다. 온천에 몸을 녹이며 사람도 차도 다니지 않는 설원과 설산을 바라보고 있자니 인생무상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평소 회사에서 스트레스받고 살았나 싶다. 그런데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이런 아름다운 순간을 앞으로도 즐기려면 회사에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결심으로 끝난다.

소화가 잘 되려면 몸이 따습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야 한다. 열에 민감한 단백질인 소화효소가  타고 분비되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온천욕을 하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는 얘기다.


대망의 가이세키를 먹어야 할 차례다. 유이노쇼의 가이세키는 식당에서 제공된다. 체크인을 밀쿠폰을 주는데 석식과 조식에 모두 써야 하니 보관해야 한다.


일본 히다 지방의 향토 요리가 제공된다. 사진에서 보듯이 소고기초밥과 사시미, 고기구이 등이 나온다. 식사로 밥류를 고를 수 있는데, 제일 인기 많은 것을 달라하니 새우덮밥(?)을 준다. 보리새우처럼 작은 새우를 튀겨서 밥 위에 얹 것이다. 계란 푸딩 같은 것도 있는데, 반찬인지 디저트인지 가늠이 안 가는 맛이었다.


식사에 곁들일 생맥주 한 잔씩 주문했다. 땅거미 지는 어스름한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 주는 고적함이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생맥주의 부드러우면서도 까슬한 목 넘김이 묵은 체증을 싹 씻어준다. 알코올이 온천욕으로 한껏 팽창 모세혈관을 타고 몸속에 빠르게 흡수다. '스고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시라카와고에서 1박을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눈 보며 하는 온천욕이라면, 두 번째는 식사와 곁들이는 생맥주다. 이 순간만큼은 어떤 5성 호텔도 부럽지 않았다.

식후 카페인이 필요한 사람은 커피를 마시자. 오후 7시까지 이용할 수 있고 무료다. 술이 부족한 사람은 자판기에서 캔맥주를 뽑아 마시면 된다. 주변에 편의점이 없다 보니 숙소 안에 웬만한 것들은 다 갖춰놓다. 야식이 먹고 싶다? 밤 11시에 라멘을 무료로 서비스해 준다. 어떤 블로거가 그랬다. 이 숙소는 손님들을 '사육'하는 것 같다고. 공감한다.

카운터 옆 계단으로 올라면 지붕 바로 밑 다락방이 나온다. 갓쇼즈쿠리 지붕 구조를 감상하면서 TV에 나오는 시라카와고 홍보 영상을 봐도 좋겠다. 그리고 켄다마(일본 전통 장난감)도 있고, 종이학을 접을 수 있도록 색종이도 마련돼 있다. 일본엔 숙소에 종이학을 접어 놓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쪽엔 유카타를 빌려 입을 있도록 해놨다. 본인의 사이즈에 맞는 옷을 골라 객실에 가서 갈아입고 생활하된다.

잠들기 전 와이프가 방 창문을 열더니 "별 좀 봐봐"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또렷이 보인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언제던가,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스마트폰이 흔들리지 않도록 짐벌에 고정한 뒤 카메라 야간모드로 노출 시간을 최대한 길게 설정했다. 결과는 만족스럽다. 육안으로 보이는 별보다도 더 많은 숫자가 사진에 담겼다.


어린 시절엔 동네 어디에서 고개를 들어도 별을 원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별자리 책을 놓고 "저건 오리온자리, 저건 페가수스자리"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별은 멸종위기생물 마냥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다. 아니, 사실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 달라진 것은 지구다. 산업이 고도화하고 지구 곳곳이 개발되면서 대기엔 늘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끼었다.


빛공해도 문제다. 도시 빌딩숲은 전기불빛을 한정 없이 뿜어내 연막탄 마냥 별빛을 가다. 그야말로 문명의 '눈부신' 발전이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 상태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조식. 저녁 가이세키보다는 메뉴가 간소하다. 메인요리랄 것 없이 가벼운 반찬과 계란, 생선구이 한 토막, 따뜻한 국 등이 나온다. 맛이 있다 없다 가르긴 좀 애매하고, '아 이게 일본 가정식이구나' 느낌이다. 간이 좀 센 찬이 많았던 듯. 실제 메뉴가 어찌 됐든 아침 고요한 설원 풍경이 최고의 메인디쉬이자 디저트다.

우리는 부지런하게 씻고 짐을 챙긴 뒤 숙소 주변을 돌아다녔다. 시라카와고는 해발고도가 500m로 높으면서도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흰 눈으로 새하얗게 덮인 산봉우리가 장관이다. 도로 옆으로 눈을 치워놨는데, 높이가 키보다도 훌쩍 높다. 눈이 얼마나 많이 오는 건감도 온다.


숙소 주변엔 갓쇼즈쿠리보다는 양철로 지은 현대적인 집들이 많았다. 전통가옥 마을도 고풍스럽고 멋지지만 동네 주민들 일상을 둘러보는 것도 값진 일이라 생각한다. 관광명소는 여행객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단장한 곳이다 보니 어느 정도 인위적 수밖에 없다. 마치 거대한 박물관을 둘러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나고야행 버스를 예매하고 남는 시간 캐리어를 질질 끌며 시라카와고를 다시 눈에 담았다.


누군가 시라카와고 당일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나는 "숙박하세요"라고 마음을 바꾸길 권할 것이다. 시라카와고 제대로 느끼려면 당신의 마음도 여유로워야 한다. 투어 일정에, 돌아가는 차편에 얽매이는 순간 감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설경 너머로 지는 노을과 밤하늘의 달과 별을 놓칠 것인가. 온천욕을 즐긴 뒤 마시는 나마비루(생맥주) 한 잔도 대체불가 경험이다.

언젠가 생활에 지칠 때, 시라카와고를 다시 찾겠다 마음먹는다. 눈 녹은 물이 시내로 흐르고 벚꽃이 흐드러진 봄 즈음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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