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기고 함께 부모가 되는 전환을 겪고도,
남편과의 감정적 거리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점점 더 큰 무력감으로 다가왔다.
아이를 낳고 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지치고, 함께 견뎌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런데 변한 건 내 삶뿐이었다.
그 사람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여전히 감정이 없었다.
함께 부모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혼자였다.
육아의 피로보다, 관계 안에서 느껴지는 그 막막함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당시 남편과의 표면적인 관계는 어땠을까.
가끔 육아에 지쳐 하소연을 하면
돌아오는 건 늘 냉담한 반응이나 자기 방어뿐이었다.
그런 모습에 넌덜머리가 나기도 했고,
감정이 격해져 말다툼이라도 하게 되면
폭발적인 분노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그런 모습을 아기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울면 아기들이 다가와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부끄러웠다.
남편은 그런 나의 감정 상태를 조롱하듯 말했고,
과거 신혼 시절의 다툼을 끄집어내며
“역시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자식 보기 부끄럽지 않느냐”,
"그게 너의 본모습이지"
라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럴 때면 남편과 한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 힘들었다.
같이 있다간 어떤 나의 모습이 튀어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폭발하는 나의 모습을 아기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갔다.
그러면 아기들이 울면서 다리에 매달려
“가지 말라”고 말리곤 했지만,
그럼에도 결국 그 아이들을 떼어놓고,
두세 시간 동안 거리에서 울며 방황하거나,
지하주차장 차 안에서 울다 들어오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가면 남편은
언제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신의 일상을 이어갔다.
아기들과 큰소리로 웃고 장난치고,
아이들이 잠들면 논문을 보고, 잠을 자고,
아침이면 아이들에게만 인사를 하고는 출근을 했다.
퇴근 후에도 똑같이 아기들과 뛰어다니며 놀고 장난치고 웃고 떠들었다.
전날의 갈등과 나의 눈물은
그의 삶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듯 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남편의 방어기제였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그런 그의 태도가
너무나 폭력적이고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나아가,
그렇게 나를 지키기 위해 뛰쳐나갔던 나의 행동은
다음번 다툼에서 내가 공격받는 빌미가 되었다.
“아이들이 울면서 매달리는데도
지 기분 나쁘다고 뛰쳐나가는 엄마 자격 없는 인간”이라며
나를 몰아세웠고,
그 말은 나를 다시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왜 그런 갈등의 순간마다 집을 뛰쳐나갔을까.
그건 단순히 화가 나서 나간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더 있다가는 내가 완전히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도,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말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울거나 소리쳐도 바뀌는 게 없으니,
결국 몸이 먼저 반응했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를 지킬 방법이 그것밖에는 없었다.
그저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만이
내 감정을 추스르고,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만큼 절박하고,
외롭고,
단절된 순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