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프러스 여행과 일상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그날은 성령강림절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었다. 사이프러스는 그리스정교가 전체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국가공휴일의 많은 날들이 종교와 연관되어 있다. 특히 라르나카에서 열리는 성령강림절 축제(Kataklysmos Festival)는 사이프러스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두 개의 커다란 야외무대에서는 여러 가지 공연들이 펼쳐지는데 이목을 끄는 것은 라르나카 지역 학생들의 춤 공연이었다. 6시부터 거의 9시가 넘는 시간까지 계속된다는 공연을 잠시 감상했다. 이 행사를 진행하는 두 명의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 행사의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고등학생들까지 한 팀당 3-4분 내외의 그룹 댄스나 체조를 선보였고 수많은 학부모와 가족들이 야외 벤치에서 이들을 응원하며 박수를 보냈다. 유치원 재롱잔치나 학예회 같은 행사를 지역 잔치에서 대규모로 치르는 것이다. 정겨움이 넘친다. 엘레니 친구의 딸도 이 공연에 참여했는데 말갛게 화장을 하고 댄스복을 제대로 차려입은 아이가 엄마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안기는 그 순간이 지금도 눈부시게 재현되는 것 같다.
여느 축제와 같이 각종 전통 공예품, 특산물 등을 판매하는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 기구와 솜사탕,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푸드트럭이 즐비했다. 사이프러스의 모든 사람들이 이 축제에 온 것 마냥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 또한 생소했다.
축제가 열리는 거리 중간에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파는 마르가리타가 맛있다고 하여 찾아갔는데 그리스나 사이프러스의 일상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웨이팅을 해야 했다. 다행히 별로 기다리지 않았지만 그 또한 이곳에서는 낯선 경험이라 재미있다. 망고 마르가리타를 주문했고 퀘사디아를 곁들이며 축제의 흥겨움과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즐겼다. 알코올에 매우 취약한 나는 몇 모금에 금방 벌게진 얼굴로 거기서 나와 해질 무렵의 해변을 거쳐 석양의 하늘 아래 하나 둘 불을 밝힌 예쁜 가게들을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