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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빙 Dec 27. 2023

[사색] 내려놓음

231217


 나는 내려놓기로 했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들로부터. 따지고 보면 더 나은 삶을 살려고 선택했던 것들이 우습게도 오히려 나를 짓 눌러 내렸다. 우습지 않은가. 그 목표라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살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의 목소리는 무시하고 있었다. 그저 하나의 목소리에 불과한 그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 나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아우성치는 목소리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언젠가는 또 이런 다짐을 했었는데,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는 또다시 어리석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삶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우리의 노력 끝에 어쩌면 쾌적한 삶을 이룩하게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과연 우리는 더 행복해진 것일까 생각해 보면 쉽사리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행복은 우리가 노력해서 성취하는 그곳에 있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목표가 없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목표를 억지로 쥐어짜 내려고 해 보았지만 그것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했던 것을 떠올려본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목표를 지어내어 인생의 좌표로 삼아보아 봤자,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간 끝에 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최근 본 작품 속 모두들 무언가에 취하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했던 거야 라는 말이 내 가슴에 와닿았다. 그곳이 처참한 세상이었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일지 모르겠다. 살아가기 위해 무언가에 취하기를 택했지만, 그것에 너무나도 몰두한 나머지, 어쩌면 어리석은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취하더라도, 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분명 그럼에도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무언가의 노예가 아니라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자유의 노예. 모순적이지만 우리는 자유의 노예가 될 수 있다. 자유를 이루기 위한 몸부림이 나를 운명의 노예가 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제는 과거를 내려놓고 싶다. 과거에 얽매인 채, 과거가 나를 규정하고 속박하도록 두고 싶지 않다. ‘나는 원래 그래’라는 말을 싫어한다던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동의하진 못했지만, 그래 원래 그래라는 말로 어떤 가능성의 싹까지 잘라내고 있지는 않았을지 생각해 보면 분명 어떠한 부분에서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인생은 끊임없는 흔들림이고 울림이다. 그 사실만을 분명하게 믿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나를 쥐고 흔들게 된다면 언젠가는 그 사실에 대한 믿음마저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깨어있어야 하고, 언제나 경계해야 하고, 동시에 언제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언제는 쥐고 달려가야 하며, 언제는 또 그저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적절히 아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며,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무언가에 다시 몰입하고, 그로 인해 삶의 힘을 얻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또다시 무언가에 대해 감탄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만, 또 그것을 위해 나를 뭉개뜨리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지혜로운 사람에게 조언을 구할 때 그저 간결한 말로 알려주지 못하는 이유는 진리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단 하나의 진리로 살아가는 현명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고통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된다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어리석은 사람만이 진실로 현명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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