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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윤 May 22. 2021

내 틀이깨어진 곳,플로리다

내 틀이깨질 때마다삶은 숨겨져 있던 즐거움을 선사한다.

미국은 수영장이 딸린 집들도 많고, 아파트나 타운하우스 빌리지 안에는 꼭 수영장이나 테니스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플로리다는 1년 365일 수영장 문이 열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겨울에도 수영은 즐기지 않더라도 태닝을 하거나 핫텁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 수영장은 큰 호수가 바로 옆에 있어 전망이 탁 트여있고, 키 큰 야자수들이 아름답게 조경되어있어 내가 참 좋아하는 곳이다. 평일 낮에는 사람도 별로 없어 혼자 아름다운 수영장을 독차지하고 여유를 부릴 수도 있다. 뜨거운 햇살, 파란 하늘, 끝없이 펼쳐진 뭉게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까지. 수영복을 입고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은 곳, 나는 플로리다에 산다. 



사실 나는 물과 별로 친하지는 않다. 어릴 적에도 목욕탕에 가는 건 좋아했어도 특별히 수영장을 가본 기억은 없다. 수영을 배우고 싶다거나, 특별히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나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단정을 짓고 물과 친해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던 해 겨울, 설을 맞이하여 놀러 간 외할머니댁에서 등대에 놀러 갔다가 방파제를 넘어 등댓길을 덮친 파도에 휩쓸려 큰 사고가 있은 후, 물에 대한 공포심까지 생겨났다. 그 날이후로 어두컴컴할 때 어렴풋이 보이는 산들이 모두 파도로 보였고, 그렇게 물과 나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한 번은 큰 맘을 먹고 동네 주민센터에서 하는 수영장에 수강을 신청했는데, 저렴하게 단체로 수강하는 거라 그런지  첫날부터 잠수도 못하는 나를, 물안에서 한 바퀴 구르기, 벽 안 잡고 물에서 뜨기, 줄지어서 수영하기 등등을 시켰다. 단체로 하니 안 할 수도 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겨우 하루를 끝내고 그날부로 가지 않은 기억도 있다. 

다시 수영을 배워보기로 결심한 것은 미국에 와서다. 미국은 한국처럼 놀거리가 풍성하지 않기 때문에 수영이나 골프, 테니스 등을 하지 않으면 너무 심심한 곳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혼자 코 막고 잠수도 해 보고, 수심이 허리 언저리 밖에 안 오는 얇은 곳에서 혼자 허우적도 대 보다가, 마침내 혼자 배영도 할 수 있게 되고, 개구리 수영, 잠수해서 수영하기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는 갈 수 없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물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으며, 물에서 노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야자수와 하늘의 콜라보는 놀랍도록 아름답다



나는 수영을 절대 하지 못할 거라 믿고 살았다. 그리고 여전히 물이 편하지는 않다.  물론 죽을 때까지 수영하지 않고 살 수도 있었을 테지만, 나의 이 작은 도전은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만약 여전히 물을 무서워했다면 이 플로리다의 라이프는 팥 없는 붕어빵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아름다운 바닷가 속을 스노클링 해 볼 수도 없었을 것이고, 물 위에 누워서 바라보는 광활한 하늘과 뭉게구름을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때론 내가 하지 못할 거라 믿었던 것들, 또는 하기 싫었던 것들에 도전함으로 인생이 조금 더 즐거워진다. 

그리고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던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내 우물이 조금씩 무너지며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지고, 우물 밖 세상을 발견하고 누리게 된다.

내 틀이 깨질 때마다, 삶은 숨겨진 즐거움을 선사한다

플로리다에 살게 된 지 9년 만에 나는 플로리디안이 되기로 했다. 늘 뜨거운 시골, 이곳 플로리다를 떠나고 싶었는데, 더 이상 도망가기보다 영 친해지지 않을 것 같던 이곳에 빠져 보기로 한 것이다.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보다 까매지도록 나의 살갗을 내어주고, 하기 싫고 못한다고 믿었던 것에 도전하면서 나는 내 우물에서 조금씩 더 벗어나고 있다.  내 틀이 깨질 때마다, 삶은 숨겨진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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