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영 Jun 23. 2020

부뚜막 고양이가 사라졌다.

매일매일 우리 집에 출석하던 부뚜막 고양이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본모습은 배가 터질 듯이 빵빵한 모습이었는데. 새끼를 낳으러 갔나?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있는데 원래 부뚜막 고양이가 자주 있던 자리를 흰냥이가 차지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향하는데, 화분에 하얀 털 뭉치가 있었다. 뭐야 화분 흙이 왜 저렇게 하얘 보이지? 자세히 보니 흰냥이가 화분을 침대 삼아 누워있었다.


야! 거기 내가 키우는 상추랑 바질 싹 났는데 깔아뭉개면 어떡하냐.

빤히 쳐다봤더니 뭐가 잘못됐음을 느꼈는지 흰냥이는 슬그머니 화분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50cm 정도 떨어져서 밥 달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아 그래. 한 이틀 정도 내가 출근한다고 낮시간에 와도 밥을 못 먹었겠구나. 미안 미안.


밥을 주니 기다렸다는 듯이 냠냠 먹고는 훌쩍 가버렸다.

흰냥이는 새끼를 어디에 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오랜 시간 우리 집 앞에서 기다렸다. 하루는 남자 친구와 함께 집에 돌아오는데 담장 위에 귀엽게 냥모나이트를 만들고 누워있었다. 


어 저기 고양이다.

고양이가 어딨어.

저기 방금 옆에 누워있잖아.

어 뭐야 얘 왜 여기 누워있어!


남자 친구의 놀란 반응에 흰냥이는 덩달아 놀라 벌떡 일어났다. 맨날 밥 주던 사람은 안 무서운데 밥 주던 사람 옆의 모르는 사람은 좀 무서웠는지 도망칠까 말까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었다. 나는 그게 또 귀여워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는데, 흰냥이는 그런 관심이 불편한지 조금 떨어져서 부뚜막 고양이의 자리에 앉았다.

하루는 집에 돌아왔는데 누가 우리 집 앞에 고양이 사료를 준걸 발견했다. 뭐야 굳이 이 구석까지 들어와서 밥을 주고 갔다고? 집에 들어와 남자 친구에게 저 거봐 누가 우리 집 앞에 고양이 밥 줬어. 하니 내가 줬는데? 했다.


엥. 자기가 고양이 밥을 왜 줬어.

밖에 흰냥이 있길래. 밥 달라고 왔길래 줬어.


오. 조금 감동인데. 예전엔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밥 줬다가 누가 나한테 시비 걸고 이러면 어떡할 거냐고 늘 걱정하더니. 그래도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이라 눈이 마주친 흰냥이의 시그널을 무시할 수는 없었나 보다.




부뚜막 고양이는 일주일째 보이지 않는다. 보통 일주일 정도 지나면 다시 슬그머니 나타난다는데. 8일째에도 부뚜막 고양이가 보이지 않으니 나는 마음이 불안해졌다. 남자 친구에게 부뚜막 고양이가 새끼를 낳다 죽은 거 아닐까 하면서 우는 소리를 하니, 새끼를 봐야 하는데 어떻게 예전처럼 우리 집 앞에 밥 달라고 기다리고 있냐고. 밥 놔두면 자기가 알아서 먹고 갈 거야 했다.


그런가?

혹시나 해서 자기 전에 밥그릇에 고양이 영양제를 놓아뒀더니 다음날 아침엔 사라져 있었다. 동네에 고양이가 많아서 누가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뚜막 고양이가 먹고 갔기를.


이번 주에는 다시 부뚜막 고양이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